365일 한시-조사수趙師秀 온다는 손님은 안 오고約客

온다는 손님은 안 오고約客/송宋 조사수趙師秀

黃梅時節家家雨 매실이 익을 무렵 집집마다 비 내리고
青草池塘處處蛙 푸른 풀 연못에는 곳곳에 개구리 울음
有約不來過夜半 한밤 지나도록 온다는 손님 오지 않아
閑敲棋子落燈花 무료하게 바둑 두니 불똥이 떨어지네

매실이 누렇게 익을 무렵에 강남에는 비가 자주 온다. 마을의 지붕에는 비가 내리고 처마 아래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연못에는 풀이 무성한데 개구리 울음 소리가 쉴 사이 없이 들려온다. 누군가 내방하기로 약속을 했다. 술과 차도 준비했다. 그런데 손님이 한밤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무료함을 달랠 겸 바둑을 둔다. 바둑 알 놓는 진동에 등잔 심지에 맺혔던 불똥이 떨어진다.

초여름 밤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손님을 기다리다가 바둑을 둔다는 이야기가 물씬 여름의 정취와 함께 알지 못할 향수에 젖게 만든다. 두터운 바둑판에 땅땅 바둑알을 올려 놓다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둘이 두면 더 좋지만 혼자서도 이리저리 수를 생각하면서 두어보는 중이리라.

《시인옥설(詩人玉屑)》에 수록된 《유계시화(柳溪詩話)》에서는 이 시를 두고 “내용은 진부하지만 말은 참신하다.[意雖腐而語新]”라고 평했다. 평자는 이런 시를 많이 접한 모양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내용은 잘 다가오지 않지만, 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한 번 음미해 보기 바란다.

등화(燈花)는 등잔의 심지 끝에 타고 남은 찌꺼기가 꽃 모양으로 매달린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불똥과 다르지 않다. 중국인들은 불이 꺼질 무렵 이 불똥이 떨어지는 것을 길조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예전 서울역 근처 다방에서 밤을 새우며 바둑을 두고 종로에서 방내기를 하고 돈이 털려 정릉까지 걸어오기도 했는데 그 많던 기원들이 지금은 다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예전 정릉에 살 때 저녁 해거름에 쌀가게 앞으로 나오면 바둑 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이런 풍경이 있을지 모르겠다. 시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바둑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조사수(趙師秀, 1170~1219)는 송 태조 조광윤은 8세손으로 절강성 온주(溫州) 사람이다. 호가 영지(靈芝), 낙천(樂天)이고 오언시를 특히 잘 썼는데 이 시인의 대부분 시가 오언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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