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전원의 어떤 흥취四時田園雜興 夏日/송宋 범성대范成大
梅子金黃杏子肥 매실은 노란 금빛 살구는 통통
麥花雪白菜花稀 보리 꽃은 백설 유채꽃은 드무네
日長籬落無人過 긴 한낮 찾는 사람 없는 울타리
惟有蜻蜓蛺蝶飛 잠자리와 나비만이 날아다닐 뿐
범성대(范成大, 1126~1193)는 소주 출신의 문인으로 양만리(楊萬裏), 육유(陸遊), 우무(尤袤)와 더불어 남송사대중흥시인(南宋四大中興詩人)으로 평가 받고 있다. 1186년, 61세 때 지병이 약간 나아 예전에 은거하던 석호(石湖)로 가서 그날 경치를 보고 느낀 일을 시로 썼는데 한해가 마칠 무렵 총 60수가 되어, 봄, 늦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각각 12편씩 배정하고 <사계절 전원의 여러 흥취[四時田園雜興]>란 이름으로 묶었다. 이 시의 서문에 적힌 내용이다.
이 시는 여름의 처음에 수록되어 있어 60수 중에서 25번째에 해당하는데 계절을 42% 지나간 시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연재가 153회라 계산하니 우연히 일치한다. 이제 일 년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여름임을 숫자로도 실감한다.
내가 예전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회사에 심었는데 사람들이 살구나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무도 잘 구분 못하지만 열매는 도무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위에서 매실을 노란 금빛이라 하고 살구를 통통하다고 했는데 그 표현을 뒤집어 사용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이 시를 보고서 보리에 흰 눈 같은 꽃이 달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려서 보리밭을 많이 보았지만 그 때는 보리꽃 같은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버들개지가 내 눈에 들어 온 것도 객지로 고등학교를 갔다가 시골에 왔을 때였다. 사물이 주변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꼭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는 아픈 사람이 요양하며 여름의 전원 풍경을 보고 쓴 시라 그런지 힘이 실려 있지 않다. 힘을 빼고 한가로우면서도 무연하게 바라본 풍경이 이렇게 시에 담긴 것이다. 그런데 시의 전원 풍경을 바라보면 절로 사람이 보이고 두런두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365일 한시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