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았다가 흐려지는 서호 가에서 한 잔 마시며飮湖上初晴後雨/송宋 소식蘇軾
水光瀲灩晴方好 물빛 반짝이는 맑은 날이 좋거니와
山色空蒙雨亦奇 산색 몽롱한 비올 때도 특별하네
欲把西湖比西子 서호의 경치를 서시에 비교한다면
淡妝濃抹總相宜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다 어울리네
소식은1071~1074까지 항주 통판(杭州通判)을 지내고 1089~1091년 항주 지주(杭州知州)를 지냈는데 그간에 서호에 대해 지은 시가 적지 않다. 이 시는 항주 통판으로 재직하던 1073년에 지어진 시이다. 동일한 제목으로 쓴 시 2수 중에서 뒤의 시이다.
서호의 풍경은 날이 맑은 날 가볍게 일렁이는 물결에 햇빛이 반짝일 때 본래 아름답지만 날이 흐려 비가 올 때 산에 구름이 끼고 걷히는 풍경 역시 기이하다. 서시와 같은 미인은 본래 화장을 어떻게 하든지 아름답듯이 서호 역시 그렇다. 맑은 날의 짙은 화장도 좋고 흐린 날의 옅은 수채화풍의 화장도 좋다.
명나라 때 항주에 은거한 시인 막번(莫璠)은 <서호십경(西湖十景)>이란 사를 썼는데 그 첫 수 <소제춘효(蘇堤春曉)>에서 소동파가 쓴 이 시의 첫 2구에 대해 “비와도 좋고 맑아도 좋다(宜雨宜晴)”라고 압축해 표현하였다. 소동파의 시의(詩意)를 정확히 압축한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맑은 날 흐린 날이 있다. 맑은 것이야 본래 좋은 줄 알지만 비가와도 좋은 것을 알기까지는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다. 이 시는 서호를 서시에 비유하여 인격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인생에 대한 태도와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말을 걸어온다. 소식이 비오는 날 서호 가에서 한 잔 기울이며 사색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365일 한시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