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蔣興哥重會珍珠衫 5

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 5

장흥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 진주적삼은 어디서 나셨소?”

“사실은 저도 잘 몰라 찜찜해하고 있었어요.”

평씨는 장흥가에게 그녀가 이 진주적삼을 처음 발견하게 된 이후부터 진대랑과 싸운 이야기며, 진대랑이 욱하는 마음에 고향을 떠난 일까지 소상히 이야기해 주었다.

“형편이 어려울 때 몇 차례나 이 진주적삼을 전당잡힐까 하다가도 찜찜한 마음에 그만두곤 하였지요. 저는 지금까지도 이 진주적삼이 어떻게 해서 전남편 손에 들어왔는지 알지 못한답니다.”

“혹시 당신 전남편의 이름이 진대랑 아니오? 하얀 얼굴에 수염은 기르지 않고 왼손 손톱을 기르지 않았소?”

“맞습니다.”

장흥가는 놀라서 혀를 내두르고 하늘을 바라보며 합장을 하고선 한마디 하였다.

“당신 말을 듣고 보니 하늘의 이치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음을 알겠소이다. 그저 두려울 뿐이오.”

평씨가 그 연고를 묻자 장흥가가 대답하였다.

“본디 이 진주적삼은 우리 가문의 보배였다오. 그런데 부인의 전남편이 내 전처와 사통하였고, 그때 내 아내가 그대 남편에게 정표로 준 거라오. 내가 소주에서 당신 전남편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이 진주적삼을 입고 있습디다. 그래서 내가 두 사람의 부정함을 알게 되었고 고향에 돌아와 아내에게 소박을 놓았던 것이오. 한데 그 진대랑이 여기 와서 죽고 내가 또 진대랑의 부인인 당신을 아내로 맞이할 줄이야 어이 알았겠소? 아, 이게 인과응보 아닌가 싶소.”

이 말을 들은 평씨는 모골이 송연하였다. 이후로 장흥가와 평씨부부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여기까지가 바로 「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라는 이야기의 본편이다.

천리를 누가 거스를 수 있겠는가,
아내와 남편이 서로 바뀌었는데,
누가 득을 본 셈인가,
한쪽이 손해 보면 한쪽은 이익 보는 법.
백년 갈 인연이 잠시 바뀐 것일 뿐.

한편 장흥가는 집안 살림을 책임질 안주인이 생겼는지라 일 년쯤 후에 다시 광동으로 장사를 떠났다. 일이 생기려다 보니 어느 날 합포현合浦縣에서 진주를 파는데 노인 하나가 진주 흥정을 하다가 진주 하나를 슬쩍 훔쳤다. 장흥가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다그쳤으나 그 노인은 죽어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장흥가가 화를 내며 그 노인의 옷소매를 잡아당겨 찾아보려 하였다. 아뿔싸, 너무 세게 잡아당겼는지 그만 그 노인이 땅에 넘어지더니 일어나질 않는다. 황급히 부축하여 일으켰으나 노인의 숨은 이미 끊어지고 말았다. 그 노인의 자식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울며불며 난리를 치며 장흥가를 둘러싸더니 붙잡아 두었다. 장흥가는 그날 저녁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 노인의 자식들은 밤새 소장을 작성하여 날이 밝는 대로 현령이 아침 사무를 개시하자마자 제출하였다. 현령은 소장을 접수하게 하고는 오늘은 다른 공무가 있어 이 사건을 다음에 다룰 것이니 죄인을 우선 하옥하라 명령하였다.

이 재판을 맡은 재판관이 누구인고 하면 바로 삼교아가 재혼한 남편 오걸이라. 조양현에서 임기를 마친 오걸은 능력과 청렴결백함을 인정받아 이 합포현 진주 거래소로 발령 받았던 것이다. 이날 오걸은 밤늦도록 접수된 소장을 검토하였다. 옆에서 별 생각 없이 오걸이 검토하는 소장들을 바라보고 있던 삼교아의 눈에 우연히 원고 송복宋福이 고소한 살인 사건 소장이 눈에 들어왔다. 피고는 나덕羅德이란 조양현 출신 상인으로 되어 있었다. 삼교아는 이 나덕이 바로 장흥가임을 직감하였다.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장흥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리, 사실 저 나덕이란 자는 소첩의 외사촌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객지로 떠돌아다니며 장사하다가 이런험한 일을 저지른 모양인데 소첩의 얼굴을 봐서라도 나리께서 선처하여 주시어요.”

“우선 내가 천천히 심리를 하여 보겠네. 허나 이건 살인 사건인지라 나도 쉽사리 사면해 주기는 어렵다네.”

삼교아는 무릎을 꿇더니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눈물 흘리는 삼교아를 달래며 오걸이 말하였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나에게도 다 생각이 있소이다.”

다음 날 아침 관헌에 나가려는데 삼교아가 오걸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애절하게 부탁한다.

“오빠를 구하지 못 한다면 소첩도 목숨을 끊고 말 것이옵니다.”

오걸은 관헌에 나가 첫 번째로 송복이 고소한 사건부터 심리하였다. 송복 형제는 울면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하였다.

“저놈이 소인의 아버지와 진주를 흥정하다가 흑심을 품고 갑자기 소인의 아버지를 때려죽였사옵니다. 나리, 제발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현령이 목격자들을 불러 물어 보니, 나덕이 때렸다는 자, 나덕이 밀어 넘어뜨렸다는 자 등 가지각색이었다. 장흥가가 입을 열었다.

“저 자의 아비 되는 자가 소인의 진주를 훔쳤기에 소인이 일시 화가 치밀어 그자와 말다툼하였사옵니다. 한데 워낙 연로하였는지라 그만 넘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실은 죽이고자 저지른 일이 아니옵니다.”

현령이 송복에게 하문하였다.

“네 아비는 몇 살인고?”

“육십 칠 세이옵니다.”

“연로한 자들은 쉬 혼절하기도 하느니 꼭 맞아서 죽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

송복 형제는 그래도 맞아서 죽은 것이라고 우겨댄다. 현령이 말하였다.

“그럼 좋다. 과연 맞아 죽은 것인지, 넘어져서 죽은 것인지 부검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시체를 부검소로 가지고 가서 부검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저녁 집무 시간에 보고하도록 하라.”

원래 송복 집안도 행세깨나 한다는 집안으로 죽은 아버지가 이장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아버지의 시체에 칼을 댄다는 것은 차마 못 할 일이고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이에 송복 형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소인의 아버지가 죽은 과정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지켜보았나이다. 황공하오나 나리께서는 소인 집에 오시어 소인 아버지의 시체를 직접 눈으로 검사하여 주십시오. 부검은 차마 할 수 없나이다.”

“맞아 죽은 물증이 없으면 저 피고가 어찌 자기 죄를 인정하려 들겠느냐? 또 시체부검서가 없으면 어떻게 상부에 보고한단 말이냐?”

송복 형제가 말없이 머리만 조아리니 현령은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니놈들이 부검을 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심리할 수 없다.”

당황한 송복 형제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한다.

“그저 나리의 현명한 판단을 따르겠나이다.”

“내일모레가 일흔인 노인장이었으니 사실 수를 누릴 만큼은 누린 것 아니더냐? 진정 맞아 죽은 것이 아닌데 억울하게 한 젊은이에게 죄를 씌운다면 이 역시 불공평한 일이며 네놈들의 아버지도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하나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의 장수를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 어느 날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난 슬픔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맞아 죽었든지 넘어져서 죽었든지 죽은 것은 죽은 것. 저 피고를 벌주지 않으면 너희 형제의 한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즉 피고는 직접 상복을 입고 죽은 자의 명복을 빌 것이며, 죽은 자의 장례비까지도 피고가 부담하라. 그래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송복 형제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나리의 말씀을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장흥가는 이 판결을 듣고 마음속으로 너무도 기뻤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판결서를 따로 쓰지 않을 것이니 차인은 저 피고를 데리고 가서 일을 다 마치도록 하라. 그럼 이 건을 매듭짓겠노라.”

관청에서 일을 꾸미기는 너무도 쉬워,
음덕을 쌓았으니 어렵지 않았던 게지.
저 오걸, 사건 처리하는 걸 보니,
원고와 피고 둘 다 만족시키는구나.

한편 삼교아는 오걸이 관아로 나간 후로 줄곧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오걸이 관아에서 내실로 돌아오기에 오걸에게 어찌 됐는지 여쭈었다.

“내가 이리이리 해서 사건을 해결하였다오. 그대 얼굴을 봐서 피고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지.”

삼교아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린다.

“소첩이 오빠를 못 뵌 지가 오래되었으니 이 기회에 오빠를 만나 친정 소식이나 물어 보고 싶습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오빠를 한 번 만나 보게 해 주세요.”

“그게 무에 어려운가.”

아, 이 삼교아는 장흥가에게 소박을 맞았으면서도 장흥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찌 이리도 끔찍한가. 본디 부부 사이가 각별하였던 데다가 삼교아가 개가하는 날 패물 상자를 전해 준 장흥가의 그 마음 씀씀이가 삼교아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이제 권세가의 소실로 있는 몸, 전남편이 곤궁에 빠진 것을 보고서 어찌 나서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은혜를 알고 은혜로 갚는 것이리라.

장흥가가 현령이 판결 내려 준 그대로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그 노인의 장사를 지내주니 송복 형제도 감동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장사를 마치고 차인이 장흥가를 데리고 관아로 돌아가 현령에게 보고하였다. 현령이 은밀히 장흥가를 불러 말해 주었다.

“만약 그대의 사촌 여동생이 없었더라면 이번 사건은 해결되기 어려웠을 것일세.”

장흥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였다. 차를 한 잔 마신 후에 현령은 삼교아를 서재로 불러들였다. 아, 어찌 이처럼 기가 막힌 재회가 있을꼬? 그 두 사람은 서로 인사도,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였다. 잠시 후 서로 꼭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할 뿐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서럽게 울 수 있단 말인가? 옆에서 지켜보던 현령의 눈도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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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눈물을 거두게. 그리고 어서 나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게. 자네 둘은 남매가 아닐세.”

그들은 계속 울기만 할 뿐,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현령이 재차 채근하자 삼교아가무릎을 꿇고 아뢴다.

“소첩 죽어 마땅하나이다. 저 자는 바로 소첩의 전남편입니다.”

장흥가 역시 더 이상 속일 수 없는지라 무릎을 꿇고서 삼교아와 결혼하게 된 연유부터 삼교아와 이혼하고 서로 다른 사람과 재혼하게 된 과정을 일일이 말씀 올렸다. 말을 마친 후 두 사람이 다시 눈물을 흘리니 현령 역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이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를 내 어찌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 삼교아가 나하고 지냈던 삼 년 동안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았으니 자네가 삼교아를 데리고 가게나.”

두 사람은 연거푸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현령은 즉시 가마를 대령하게 하고는 삼교아를 가마에 태워 보냈다. 아울러 인부를 불러 삼교아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 열여섯 상자를 장흥가에게 갖다 주도록 하고 아전들에게는 삼교아와 장흥가가 가는 길을 살펴주도록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오걸의 후덕함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진주는 역시 합포현合浦縣에 돌아오니 더욱 광채가 나고,6
두 검이 풍성豊城에서 합쳐지니 더욱 신비하네.7
오걸은 역시 덕이 넘치는 인물,
재물을 탐내고 여자를 밝히면 어찌 그럴 수가 있었겠는가?

오걸은 여태껏 후사가 없었는데 후에 중앙관서로 승진하여 북경에서 첩을 들여 세 아들을 낳았다. 후에 오걸의 세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자 사람들은 그게 모두 아버지 오걸이 공을 쌓은 음덕이라며 칭송하였다.

한편 장흥가는 삼교아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씨를 만났다. 사실 결혼한 순서로 보자면 왕삼교아가 본부인이지만 중간에 한 번 헤어진 적도 있고 평씨 부인의 나이가 한 살 더 많기도 하여 평씨가 본부인 노릇을 하고 왕씨는 소실 노릇을 하기로 하였다. 두 여인은 마치 자매라도 되는 듯 서로 어울려 장흥가와 더불어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다.

헤어졌던 부부 다시 만났으되,
이제 본처는 소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구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단 말 하나도 그르지 않네.
하늘의 바른 이치가 어디 먼 데 있던가?

6 합포현은 본디 진주 명산지였으나 그곳의 관리들이 가렴주구하여 진주 거래가 뜸해졌는데,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여 청렴하게 관리하니 합포현이 진주 거래지로 다시 명성을 되찾았다 한다. 여기서는 오걸이 맹상과도 같은 인물임을 읊은 것이다.
7 진나라 풍성에서 검광劍光이 비치매, 당시 풍성 현령이던 뇌환雷煥이 그곳에서 검 두 자루를 파내어 한 자루는 자신이 갖고 나머지 한 자루는 장화張華에게 선물하였다. 두 사람이 죽은 후 두 검이 다시 풍성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마침내 용으로 변해서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여기서는 삼교아와 장흥가의 재결합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