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蔣興哥重會珍珠衫 4

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 4

그러나 삼교아가 아직 죽을 팔자는 아니었던지 방문을 잠그는 걸 깜빡 잊었더라. 삼교아의 친정어머니가 막 술을 데워 가지고 방에 들어오다가 이 꼴을 보고서는 화들짝 놀라 술병을 그대로 든 채로 삼교아를 잡아 안았다. 뒤뚱대다 삼교아와 친정어머니가 엉켜 넘어지고 술병은 떨어져 나뒹굴었다. 친정어머니가 먼저 일어서서는 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이 멍청한 것아! 스물 갓 넘긴 꽃다운 나이에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 그래, 장 서방이 너를 받아 줄지 누가 아니? 또 장 서방이 너를 버린다손 네 인물에 어디 재혼 못 할까 봐 걱정이냐? 좋은 인연다시 찾아 남은 인생 잘 보낼 생각을 해야지. 조그만 더 참고 기다려봐. 성급하게 굴지 말고.”

왕씨도 집에 돌아와서는 딸이 죽으려 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타이르는 한편, 마누라에게도 특별히 신경 쓰라고 단단히 일렀다. 삼교아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세월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부부란 본디 숲 속에서 같이 사는 새와도 같은 것.
때가 되면 각자 따로따로 날아가는 것.

한편, 장흥가는 난설과 청운을 묶어 놓고는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두 몸종은 처음에는 잡아떼다가 매에 못 견뎌 자초지종을 술술 부는데, 바로 설 할멈이 중간에서 수작을 부린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장흥가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설 할멈을 흠씬 두들겨 패고 혼내 주었으나 차마 그 집을 때려 부수지는 못 하였다. 설 할멈은 자기가 지은 죄가 있는지라 한 쪽에 피해 서서 고개를 숙이고 찍소리도 하지 못 하였다. 장흥가는 이런 설 할멈을 보자니 한숨만 나오고 더 이상 실랑이하기도 뭣하여 바로 집으로 돌아와 하녀를 불러 두 몸종을 팔아 버리도록 하였다. 이층에 있는 패물 상자를 세어 보니 모두 열여섯이라. 앞뒤좌우로 모두 종이를 발라 봉해 버렸다. 장흥가는 삼교아를 몹시도 사랑했던지라 삼교아를 쫓아 보내긴 하였으나 차마 마음속에서까지 지우지는 못 하여 삼교아의 패물을 잘 봉해 두고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안 그렇겠는가?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 한편, 남경에 오걸吳杰이라는 진사가 살고 있었는데 광동廣東 조양현潮陽縣의 현령으로 발령받아 임지로 부임하던 중에 양양부를 지나게 되었다. 가족과 헤어져 임지로 가는 길인지라 오걸은 이참에 첩이나 하나들일 심산이었다. 오는 도중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 보았으나 맘에 드는 여자가 없었다. 소문에 조양현 왕씨 딸이 용모가 출중하다기에 오십 금을 예물로 내고 매파를 넣어 청혼하였다. 왕씨 역시 굳이 싫다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사위가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되어 먼저 장흥가에게 알렸다. 장흥가 역시 싫다 좋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삼교아가 재혼하던 날 장흥가는 인부를 불러 패물 상자 열여섯을 열쇠 꾸러미와 함께 오걸의 배에 실어다 주도록 하였다. 이 상자를 본 삼교아의 마음은 무척이나 짠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동네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장흥가의 사람됨이 진국이라고 칭찬하였고, 어떤 이들은 배알도 없는 녀석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사람들 생각이 모두 같지 않은 때문이라.

한편, 진대랑은 소주에서 장사를 마치고 자신의 집이 있는 신안으로 돌아갔으나 마음은 오로지 삼교아에게 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진주적삼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진대랑의 아내 평씨平氏는 저놈의 진주적삼이 아무래도 찜찜한 생각이 들어 남편이 잠든 틈에 그 진주적삼을 몰래 천장에다 감추어 버렸다. 진대랑이 아침에 일어나 진주적삼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여러 차례 물어 보았으나 평씨는 시치미를 뚝 떼었다. 진대랑은 성질을 부리며 온갖 서랍이며 바구니며 다 뒤집으며 찾았으나 그게 어디 나오겠는가? 진대랑은 괜히 마누라에게만 화를 내었다. 아내 평씨는 서럽게 울다가 대들다가 하기를 이삼일이나 하였다. 마음이 답답해진 진대랑은 은자를 챙기고 종놈 하나 데리고 양양부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조양현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떼강도를 만나 돈을 홀라당 다 빼앗기고 종놈까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진대랑은 잽싸게 배 꽁지부리로 도망가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다. 고향에 돌아가기도 막막하여 예전에 지내던 숙소로 가서 삼교아를 만나 돌아갈 노자라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쉬며 배에서 내려 강 언덕으로 올라갔다.

조양현 성 밖에 있는 여씨네 객점에 도착하여 강도당한 일을 이야기하고 보석 장수 설 할멈을 통해 돈이나 빌려야겠다는 말을 하였다.

“아이구, 나리가 모르시는구먼. 그 설 할멈이 장흥가 마누라하고 외간 남자와 다리를 놔주지 않았겠소. 근데 그녀 남편이 돌아와 진주적삼을 찾는데 그걸 외간 남자에게 주어 버렸으니 있을 리가 있나. 그래, 장흥가가 그 삼교아를 내쫓았지. 삼교아는 지금 남경 오진사의 소실로 들어가 살고 있고, 그 할망구는 장흥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지금은 다른 현에서 숨어 지낸다지, 아마.”

진대랑은 이 말을 듣고 마치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러더니 그날로 오한이 들며 앓기 시작하였다. 이 병은 우울증이기도 하고 상사병이기도 하며 과로 때문이기도 하고 놀란 탓이기도 하다. 두 달이나 누워 있었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여씨 객점의 사환도 드러내 놓고 싫은 내색이다. 진대랑은 마음이 불안하여 온정신을 모아 집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 여씨에게 부탁하기를 인편에 편지를 보내어 아내에게 돈을 가지고 오도록 해야겠다고 하였다. 여씨는 그렇지 않아도 걱정되던 차라 평소 알고 지내던 관청의 차인差人에게 부탁하면 마치 파발마라도 보낸 듯 순식간에 도착할 것이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진대랑의 편지를 받아든 여씨는 자신이 대신 차인에게 은자를 쥐어주고 편지를 빨리 좀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과연 관청차인이라 빠르긴 빨라 며칠 되지 않아 신안현에 도착하여 진대랑 집을 수소문하여 평씨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다.

바로 이 편지로 말미암아,
한 쌍의 인연이 또 새롭게 맺어지는구나.
평씨가 편지를 받아 보니 바로 남편이 보낸 것이라.

아내 평씨에게 이 글을 보내오. 집에서 떠나오던 중 양양부에서 강도를 만나 노자를 털리고 종놈까지 죽고말았소. 화불단행이라, 여씨 객점에 병들어 누워 있은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소이다. 편지를 받아 보는 대로 노자를 구하여 나를 데려가 주구려. 이만 총총.

평씨는 이 편지를 받고서 반신반의하였다. ‘저번에는 은자 천 냥이나 까먹더니. 저놈의 진주적삼이 아무래도 수상쩍어. 이번에는 또 강도를 당하였다고. 이거 거짓말이 아닐까?’ 한편, 걱정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한테 한 번 와 달라고 한 걸 보면 병세가 진짜 위중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일을 누구한테 부탁한다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쉬 결론이 나지 않았다. 평씨는 친정아버지와 상의하고는 패물과 돈을 챙겨서 진왕陳旺 부부를 데리고 출발하려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친정아버지께도 청하여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러나 경구京口에 이르렀을 무렵, 친정아버지는 병을 얻어 도중에 고향으로 먼저 돌아가고 평씨와 진왕 부부만이 조양현을 향해 갔다.

조양현에 도착하여 수소문한 끝에 여씨 객점을 찾았다. 그러나 진대랑은 이미 십일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씨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 이미 염하고 입관까지 마친 상태였다. 평씨는 졸도하였다가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 상복으로 갈아입은 평씨가 여씨에게 좋은 관을 사서 다시 입관하자고 부탁하였으나 여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평씨는 하는 수 없이 덧관을 사서다시 한 번 더 씌우고 스님을 불러 독경하게 하여 명복을 빌었다. 여씨는 평씨에게서 은자 스무냥을 사례로 받은 이후로 평씨가 벌이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한 달쯤 지나 평씨는 택일하여 운구하여 돌아가고자 하였다. 여씨는 평씨가 인물도 빠지지 않고 아직 나이도 젊은데다가 수중에 가진 것도 있는지라 아직 장가들지 못 한 자기 둘째 아들생각을 하여 이런 저런 핑계로 평씨를 붙잡아 두었다. 하루는 진왕을 불러 술을 진탕 들게 하고는 그 아내 편에 평씨를 설득하면 후사하겠노라 하였다. 진왕의 마누라가 또 미련퉁이라. 앞뒤 가리지 않고 곧이곧대로 평씨에게 이야기해 버렸다. 평씨는 노발대발하며 진왕 마누라를 혼내고 연거푸 두세 차례 따귀를 올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진왕마저도 같이 거들어 마누라를 혼냈다. 여씨는 일이 틀어졌음을 알고 입맛만 다셨다.

양고기 만두는 입에도 못 대보고,
공연히 한바탕 소동만 일으켰네.

여씨는 진왕에게 도망하라고 은근히 부추겼다. 진왕이 보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없는 상황인지라 마누라와 상의하여 평씨의 돈과 패물을 모조리 훔쳐 야반도주하였다. 여씨는 전후 사정을 훤히 알면서도 저런 못 믿을 사람을 데리고 다녀서 사서 고생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한편, 그나마 주인 물건을 훔쳐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 것을 훔쳤으면 어떡할 뻔했느냐며 평씨를 힐난하였다. 게다가 객점에 관이 턱하니 버티고 있어 장사에도 방해가 된다며 어서 가지고 가라고 성화다. 더군다나 젊은 과부가 이런 객점에 머물러 좋을 거 뭐 있느냐며 어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평씨는 여씨에게 들볶이다 못하여 다른 곳에 방 한 칸을 세내어 남편의 관을 옮겨 왔다. 이 처량한 심사를 누가 알아줄 것인가?

새 거처에 이웃해 사는 장씨 아줌마는 성격이 화통하고 인정이 바른 사람인지라 평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서는 늘 찾아와서 위로해 주었다. 평씨는 장씨 아줌마 편에 옷가지도 저당 잡히고 하여 늘 고마워하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더 이상 저당 잡힐 옷가지도 남지 않게 되었다. 평씨가 그래도 바느질 솜씨 하나는 있는지라 대갓집 아낙들에게 바느질이라도 가르쳐 주어 호구할 생각을 내었다. 이 생각을 들은 장씨 아줌마가 한마디 거든다.

사진출처 青岛新闻网

“글쎄, 내가 보기엔 마땅치 않아. 원래 대갓집이라고 하는 데가 젊은 아낙이 드나들 만한 곳이 못 돼. 죽은 사람이야 죽은 거고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할 거 아냐?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네가 그저 남의 집 바느질로 평생을 썩힐 건가? 바느질일을 사람들이 얼마나 멸시하는데. 저 관을 봐. 그게 지금 자네한테 혹처럼 붙어있으니 또 어떻게 할 거야? 몇 푼 벌어서 방세는 낸다 해도 결국 해결책은 되지 못할 거야.”

“저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슨 방법이 있어야죠.”

“내가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니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천천히 들어보게. 지금 자네는 여자 몸에 머나먼 타향에서 수중에 돈은 없지 관을 옮겨가려 해도 막막한 지경이야. 당장 자네 입에 풀칠할 것도 걱정인데 운구하고 수절하는 거야 지금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몇 달 더 수절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아둔한 생각이네만,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좋은 짝 찾아서 재혼하게. 그리고 새신랑도움 받아서 저 관을 잘 묻어 준다면 죽은 자도 안심하고 눈을 감을 걸세.”

장씨의 말이 딴은 일리가 있는지라 평씨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숨을 쉬며 말한다.

“휴, 이 몸 팔아 남편 장사지내면 사람들도 뭐라고 저를 손가락질하지는 못하겠지요.”

“그래, 기왕에 마음을 굳혔으면 내가 한 사람 소개해 주지. 나이도 자네와 그만그만하고 인물도 시원시원하고 게다가 돈이 많아.”

“그런 부자가 저 같은 과부를 맘에 들어 하기나 할까요?”

“괜찮아, 그 사람도 초혼은 아냐. 그 사람이 나한테 부탁하기는 초혼 재혼 가리지 않고 그저 마음씨 착하고인물만 괜찮다면 문제없다고 했어. 자네 정도 인물이면 틀림없이 문제없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장씨 아줌마는 장흥가의 부탁을 받고 여기저기 혼처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전처 삼교아가 빼어난 미인이었던지라 재혼할 여자도 기왕이면 미인을 찾았다. 평씨가 비록 미모야 삼교아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솜씨 좋고 경우 바른 거로는 외려 삼교아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다음 날 장씨 아줌마는 성 안으로 들어가 장흥가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장흥가는평씨가 오갈 데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내켜하였다. 평씨는 예물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그저 땅 한 떼기 사서 전 남편 묻힐 곳이나 장만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장씨 아주머니가 두 사람 사이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두 사람의 재혼을 성사시켰다.

번거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평씨는 남편을 잘 묻어 주고 제사를 지내준 다음 한참을 통곡하였다. 평씨는 이제 상복을 벗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장흥가는 예복을 지어 보내고 아울러 평씨가 저당 잡혔던 옷도 다 찾아 주었다. 결혼식 날 밤 주위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였다.

혼례식이야 두 번 하는 것이니 쑥스러울 것 없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야 외려 더 깊구나.

장흥가는 평씨의 단정한 몸가짐을 보고 더욱 깊은 애정을 느꼈다. 하루는 장흥가가 외출하였다가 돌아와 보니 마침 아내 평씨가 옷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진주적삼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