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初夏 세 수 중 첫째/ [宋] 왕자王鎡
붉은 꽃 거의 져서
나비 드물고
쏴 쏴 비바람이
봄날 보내네
녹음은 우거져도
보는 이 없고
부드러운 가지 끝에
매실 열렸네
芳歇紅稀蝶懶來, 瀟瀟風雨送春回, 綠陰如許無人看, 軟玉枝頭已有梅.(2018.05.16.)
백일홍처럼 석 달 열흘 동안 꽃을 피우는 꽃나무도 있지만, 대개 봄꽃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시들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라는 말도 생겼을 터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 찾아볼 수 있는 최초의 시는 중국 송나라 조변(趙抃)의 「상천축사 석암화(上天竺寺石巖花)」이다. “곧 바로 봄날이 한 달 동안 극성할텐데,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그 누가 말하는가(直將春占三旬盛, 誰謂花無十日紅)” 그러나 “그 누가 말하는가(誰謂)”라는 이 시의 어투로 짐작해보건대 당시에 이미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란 구절은 “권력은 십년을 못 간다(權不十年)”란 말과 함께 마치 속담처럼 흔히 쓰인다. “좋은 때나 전성기는 길지 않다” 또는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기실 꽃나무의 일 년을 살펴보면 꽃은 열흘 정도일 뿐이고 봄과 여름 내내 자신의 온몸을 장식하는 건 모두가 녹색 잎이다. 나비도 찾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자기 자리에 서서 잎이 드리운 녹음 속에 꽃이 남긴 열매를 보듬어 기른다. 녹음이야말로 “열흘 붉은 꽃”에 비길 수 없는 꽃나무의 일상이자 존재 그 자체다. 『중용』에서는 이를 “드넓게 존재하면서도 감추어진 진리(費而隱)”라고 했다. 그야말로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지극하다(無聲無臭, 至矣)”는 경지다.
한시, 계절의 노래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