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의 상징적 의미 1-삼장법사

등장인물의 상징적 의미

서역으로 경전을 가지러 가기 위한 모험으로서 『서유기』의 중심인물인 삼장법사와 세 제자, 그리고 백마는 각기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역할이 안배된 개별적인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서유기』를 개인의 수행 과정을 상징한 철학적 작품으로 이해할 경우, 사실 이 주인공들은 수행하는 개인의 마음에 포함된 다양한 성격을 일반화한 상징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또한 서역으로 가는 관문에서 등장하는 각종 요괴들은 주인공들의 영웅적 자질을 시험하는 시험관이기도 하고, 정치적 방해자이기도 하고, 또 수행 과정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각종 ‘심마心魔’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의 의미는 독자들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다중성 그 자체인데, 여기서는 나의 눈에 비친 삼장법사 일행의 의미를 이런저런 측면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들 나름대로 『서유기』를 해석하는 데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요괴들을 비롯해서 일시적으로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고,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개별적으로 언급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이 요괴들을 불교나 도교의 수련에서 어떤 단계마다 부딪치는 난관에 대한 상징으로 풀이할 경우 야기될 오묘하고도 복잡한 상황에 대해 나로서는 아직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염치없지만 나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자유롭고 진지한 사유의 힘을 가진 독자들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편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 삼장법사

서역행의 중심이 되는 삼장법사는 본래 부처의 제자인 금선존자金禪尊者의 화신으로서 열 세상을 돌며 수행한 공덕을 쌓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구약 성서』의 모세처럼 어려서 강물에 버림받는 수난을 겪고 금산사金山寺의 법명화상法明和尙에게 구함을 받아 이생에서도 착실히 수행했으니, 보통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난관들을 헤치고 경전을 가지러 갈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 하겠다. 그런데 당 태종이 내려준 그의 법호法號—본래 법명화상이 지어준 법명은 ‘현장玄奘’이다—인 ‘삼장’은 곧 ‘대승삼장大乘三藏’의 준말이니 대승불교의 경전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렇게 기본 바탕이 갖춰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는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서천에 가서 부처를 뵙고 경전을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가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高山流水

삼장법사가 모험을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관음보살이 당 태종과 삼장법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앞에 현신하여 제시한 대승불교의 효능 때문이다.

“자네의 그 소승 교법으로는 죽은 자를 구제하여 승천시킬 수 없고, 그저 그럭저럭 속세와 어울려 지낼 수 있을 뿐일세. 내가 가진 대승 불법 삼장三藏은 죽은 자를 구제하여 승천시키고, 고통에 빠진 사람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무량한 수명을 누리는 몸을 만들도록 수양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여래如來가 되게 할 수 있지.”(제12회)

불교에서 ‘승乘’이란 물건을 실어 나르는 수레라는 본래 의미에서 파생되어, 중생을 구제해 현실세계인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에 도달하게 해주는 것을 비유한다. 이러한 세계의 초월은 수양을 통해 이루어진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세 종류의 ‘근기根器’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 그에 따라 세 종류의 수행 방법을 제시하는데,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앞의 두 개를 소승이라 하고, 후자를 대승이라고도 한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동한東漢 무렵부터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때부터 당나라 초기까지의 불교는 소승 불교였다. 소승 불교는 개인의 수행을 통해 까달음을 얻어 부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종종 개인주의적이고 귀족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육조 시기부터 당나라 초기까지 부와 권력을 지닌 문벌 귀족들에 의해 대규모 사원 건축이 유행하여, 불교 미술사와 건축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불상들과 석굴 사원 등이 건축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롱먼龍門 석굴이나 둔황敦煌의 모까오쿠莫高窟 등이 건립된 데에는 확실히 이런 초기 불교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당나라 때가 되면서부터 불교는 도교를 비롯한 중국 민간의 신앙들과 결합하여 복을 기원하는 성격이 점차 강해지고, 그와 더불어 불교의 여러 부처들 가운데 관음보살과 미륵불이 특히 중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세는 불교의 종파 가운데 하나인 마니교摩尼敎와 민중 도교가 결합하여 일종의 구세신앙救世信仰으로 정착한 원나라 말엽의 유명한 비밀 결사인 ‘백련교白蓮敎’의 예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이 집단은 왕조의 권력이 타락하여 민중을 억압할 때 종종 변혁을 추동하는 암중의 힘으로 작용했고, 이후 새로운 통치 집단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청나라 말엽까지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했다.

대승 불경을 얻어 전하려는 삼장법사의 여행은 그러므로 유가의 ‘교화’ 이념과 융합되면서 불교에서도 중생의 구제가 중요한 기능으로 부각되기 시작되는 기점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삼장법사는 개인주의적이고 귀족적인 불교를 개혁하여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새로운 불교를 토착화하려는 시대적 사명을 띤 선구자로 상징된다. 그리고 ‘팔십일 난’으로 상징된 그의 고난은 이러한 개혁을 방해하려는 기득권 계층 및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과 맞서 이겨낸 수없이 많은, 그리고 말할 수 없이 힘겨운 투쟁의 역정을 의미한다. ‘서방의 부처’란 결국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대승의 세계 즉, 모든 민중이 구제받은 이상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작품 안에 드러난 이상향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한 암시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화자(작자)는 고통 받는 중생에 대한 자비와 선행을 지향하고 생명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불교 승려로서 삼장법사의 관점에 입각한 보편적 사랑을 자주 강조한다. 그리고 삼장법사 일행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미신에 빠져 심지어 자식까지 공양하는 민중의 몽매함을 깨우치고(제47~49회), 부당한 폭력으로 민중을 착취하는 악의적이고 무능한 권력자와 그 하수인을 소탕하게 함으로써 화자(작자)가 생각하는 민중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계몽과 투쟁을 통해 추구되는 이상 사회의 정치 구조는 여전히 중화中華 중심적이고 봉건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16세기 중국인들의 사상과 세계관 속에서 규정된 불가피한 시대적 한계이다.

그런데 불교가 이처럼 토착화 혹은 중국화한다는 것은 결국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본래의 성격이 중국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는 단순히 불법佛法의 깨달음만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 도道를 얻음으로써 초월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인간을 대표한다. 사실 『서유기』의 화자(작자)가 제시하는 초월의 길은 딱히 어느 한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제2회에 등장하는 수보리조사의 설명에서 뚜렷이 드러나는데, 그에 따르면 넓은 의미에서 ‘도문道門’의 문하에는 삼백육십 가지의 방문傍門 즉 비정통적인 수행의 길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술문術門’은 신선을 청해 점을 쳐서 길한 일은 취하고 흉한 일은 피할 수 있는 법이고, 유문流門은 유가儒家, 석가釋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묵가墨家, 의가醫家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경서經書를 보거나 염불을 외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성인을 따르는 것들이다. 또한 정문靜門은 곡기穀氣를 끊고 깨끗하고 고요하게 자연 그대로 지내며 가부좌를 틀어 참선하고 수행하는 것이고, 동문動門은 음을 취해 양을 보충[採陰補陽]하거나 비방을 써서 단약을 만들어 먹는 따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수보리조사는 도가의 진정한 목표는 수행자가 자기 안에 늙지도 죽지도 않는 금단金丹을 키우는 것이므로 이런 비정통적인 방법으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부처나 신선의 경지로 오르는 유일한 길은 바로 정精과 기氣와 신神을 굳게 간직하여 단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불교의 수행자일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도의 수행자를 대표하는 삼장법사는 사오정과 더불어 수행의 구체적인 과정에서 오행五行 가운데 토덕土德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원칙적으로 손오공의 금덕金德과 저팔계의 목덕木德, 백마의 수덕水德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마음의 주인[心主]’인 것이다. 그러나 당 태종太宗의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제100회)에서 강조된 것처럼, 혈혈단신의 몸으로 “관음보살을 염두에 두고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워” 두려움을 이기며 용기와 신앙으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삼장법사의 존재는 이제 ‘주인’이라는 명분만 남기고 상당히 축소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소설에서 묘사된 삼장법사는 이런 원칙적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항상 고지식하게 원칙만을 고집하며 손오공을 질책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죽음과 배고픔으로 상징되는 고난 앞에서 종종 변덕스럽고 비겁하게 행동하며, 어리석은 인간의 안목으로 손오공을 판단하거나 요괴에게도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해치기 위해 불쌍한 모습으로 변장해서 접근하는 백골부인白骨夫人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고, 손오공을 시기하는 저팔계—무슨 이유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장법사는 일행 가운데 유독 저팔계를 감싸고도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의 비방을 곧이곧대로 들어 손오공을 내치기도 하는 것이다(제27회).

또한 소설에서 삼장법사의 장광설은 오래 전부터 『서유기』의 청자(독자)들이 넌더리를 낼 정도로 유명하다. 심지어 현대에 들어서 홍콩에서 만들어진 저우싱츠 주연의 영화 『서유기』에서는 그의 모습을 더욱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시도 때도 없이 주절대는 그의 수다와 주접에 심지어 관음보살까지 평정심을 잃을 정도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야기 곳곳에서 그는 이른바 “나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지겨운 노래로 청자(독자)를 자주 괴롭히는데, 그 가운데 아마도 제64회에서 시를 논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한 예이다. 이 이야기는 서역으로 가는 삼장법사 일행이 겪는 다른 모험들과는 성격이 판연히 다르며, 주인공들의 모험이나 수련 자체보다 무의미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내용을 엮어 시랍시고 읊조리며 자기들끼리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고, 위선적인 허례虛禮와 허세虛勢를 부리는 명나라 시대의 문인들에 대해 풍자하려는 의도로 끼워 넣어진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삼장법사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제자들의 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흥에 겨워 요괴들—실은 소나무, 잣나무, 대나무, 노송나무 따위의 정령精靈들인데—과 시를 주고받는 놀이에 빠져버린다. 또 제94회에서, 자신을 부마駙馬—실은 요괴가 공주로 변신해 있었지만—로 삼으려는 천축국天竺國 왕 앞에서 병풍에 적힌 사계절의 시에 대해 일일이 창화唱和하며 네 편의 시를 짓는 장면 역시 그에 못지않은 주책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 시라는 것들의 내용에는 도를 수행하는 승려의 분위기는 별로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싸구려 병풍에나 흔히 있을 법한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국왕의 어진 정치를 칭송하는 아부까지 서슴지 않는 것임에랴!

이미지 출처 Baidu

서역을 향한 모험 혹은 도를 수행하는 마음의 주체로서 삼장법사에게 나타나는 이와 같은 ‘자격 미달’의 모습은 이 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여행 도중에 산이나 강에 가로막힐 때마나 겁에 질려 안절부절 머뭇거리고, 요괴에게 붙잡힐 때마다 비굴하게 목숨에 연연하고, 사리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접어둔 채 무조건 ‘자비’와 ‘인의’를 내세움—저팔계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편애를 포함하여—으로써 곤경을 자초한다. 물론 이처럼 결점들은 이야기가 진행되어 고난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제99회의 마지막 고난을 겪을 때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결점들은 모험과 수행의 중심축으로서 그가 가진 최소한의 미덕에 의해 종종 희석되거나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그는 경전을 얻지 못하면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센 목적의식을 견지하고, 부귀공명과 색욕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계율에 충실한 엄격한 승려의 모습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즉 그는 결연한 신념도덕성이라는 최소한의 미덕을 확보함으로써 모험—수행—을 지속할 명분을 제공함과 동시에 제자들이 중도에 탈락하거나 수행의 완성을 추구하는 ‘마음’의 부조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삼장법사의 이런 결점들은 명나라 때의 고지식한 (혹은 타락한) 승려들과 사회상을 풍자하기 위한 화자(작자)의 안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이야기 전개를 더욱 재미있고 현실감 있게 만들면서 손오공의 활약상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특별한 장치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억울하게 내쫓긴 후에도 삼장법사의 안위를 걱정하며 서역행의 성공을 기원하는 손오공의 모습은 청자(독자)들로 하여금 손오공이 실제로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난폭하게 일을 처리하기도 하는 일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의 울분에 공감하며 동정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이야기의 긴장과 흥미를 유지하는 데에 훌륭한 효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삼장법사의 두 가지 미덕은 손오공의 입장에서 보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연민의 마음을 자극하는 훌륭한 촉매가 된다. 그러므로 결점 많은 평범한 인간이되 존경할 수밖에 없는 미덕을 갖춘, 그렇기 때문에 얄미우면서도 동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삼장법사는 역시 평범할 수밖에 없는 대중들에게 친근한 감동과 설득력을 줄 수 있도록 절묘하게 다듬어진 문학적 인물 형상—설령 그것이 어느 한 천재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인 것이다. 또한 각기 다른 개성과 능력을 지닌 세 제자와 용마龍馬는 신념은 있으되 그것을 실현할 물리적 힘이 부족한 삼장법사에게 추진력을 제공하고, 나약해지려는 그의 의지를 다잡아주는 조력자인 셈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처럼 나약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에 삼장법사의 시련과 승리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독자 대중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감동을 제공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