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그믐날에三月晦日偶題/송宋 진관秦觀
節物相催各自新 계절의 풍광은 저마다 새롭게 변해가건만
癡心兒女挽留春 푹 빠진 아녀자는 가는 봄을 잡으려 하네
芳菲歇去何須恨 화초들 사라진다 해도 한탄할 것 무엇인가
夏木陰陰正可人 여름 나무 무성한 그늘 마음에 쏙 들 텐데
자연 풍광은 시간이 감에 따라 모든 사물들이 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쉬지 않고 변해간다. 그런데 봄 풍경에 빠져 있는 치기어린 아녀자들은 봄이 간다며 너무들 상심해 하고 있다. 아서라! 저 화초가 다 사라진다 해도 한탄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곧 봄날의 아름다운 꽃과 풀, 나무의 새싹을 대신해 우리 앞에 나타나는, 녹음이 드리운 여름의 나무들 풍광이 마음에 아주 들 텐데 말이다.
‘절물(節物)’은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제 철의 자연 풍광이나 과일 등을 말한다. 여기서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말한다. ‘흘거(歇去)’는 ‘사라진다’, ‘다해가다’는 말인데, 여기서 거(去)는 보조 종사이다. ‘가인(可人)’은 ‘사람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可)’는 ‘가합(可合)’의 의미이다.
봄이 가는 것을 마냥 슬퍼하지 않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다가오는 여름의 경치에 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시는 봄이 가는 것을 슬퍼하며 붙잡으려는 시각과 봄은 이제 가는 것이고 또 여름을 맞을 준비를 하자는 두 가지 시각이 병존하고 있다. 물론 시인은 봄이 가는 것을 굳이 슬퍼할 것 없고 다가오는 여름을 긍정적 시선으로 맞이하자는 낙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봄이 간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어떤 상실이나 아픔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화자의 처세관으로 본다면 그 아픔에 계속 빠져 있지 말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면서 내일을 준비하자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처럼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인생의 교훈과 의미를 담아내는 시를 철리시(哲理詩)라고 한다. 철학적인 이치를 담아 시를 썼다는 말이다. 이는 시의 여러 요소 중에서 이치[理]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인데 이런 관점에 기초한 시들이 송나라 시대에 특히 많이 지어졌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시이다.
진관(秦觀, 1049~1100)은 강소성 고우(高邮) 사람이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조용히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하고 우여곡절 끝에 진사에 급제하여 태학박사 등의 벼슬도 지냈지만 일생이 대체로 불우하였다. 때문에 성격이 침중하여 의론을 펼치는데 장점이 있었고 시문에 자신의 인생을 녹여 내어 깊이가 있었다. 이 시 역시 그런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면과는 달리 그는 또 완약(婉弱)한 풍격의 사(詞)를 잘 지어 이쪽 방면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관은 특히 소식과 교유를 많이 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진관의 부인이 소식의 누이동생이라는 전설이 있었는데 나중에 허구로 밝혀졌다. 《송사배항방(宋詞排行榜)》에 진관의 시 4편이 100위 안에 들어 있는데 반해 《천가시》 등 유명한 시선집에 1 수도 없다는 것은 진관이 주로 사로 알려진 것을 말해 준다.
《고문진보》에는 진사도(陳師道)가 진관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편지는 진사도가 진관의 초청에 대해 사적으로 고관을 만날 수 없다며 거절하는 내용이다. 진관의 입장에서는 회재불우(懷才不遇)하였는지 몰라도 당시 처사 진사도가 볼 때는 혐의를 피해야 할 고관이었던 것이다.
365일 한시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