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서문敍文

푸른 하늘 서재 주인이 쓴 서문綠天館主人敍

역사기록 전통이 흩어지니 소설이 흥기하게 되었다. 소설은 주나라(B. C. 1027-256) 말기에시작되어 당나라(618-907) 때 흥성하였으며 송나라(960-1279) 때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비韓非(B. C. 280-233 경)나 열어구列禦寇(B. C. 450-375 경)와 같은 사람들이 소설의 비조라 할것이다. 비록 한나라(B. C. 206- A. D. 220) 때 《오월춘추》 같은 책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진나라(B. C. 221-206) 때 분서갱유를 겪은 이후로 소설 저작이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나라개원(713-742) 연간 이후로 문인들의 소설 작품이 널리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풀어쓴 이야기인 통속연의가 어디서 기원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남송(1127-1279) 때 궁정의 물품과 재주꾼을 담당하는 부서인 공봉국供奉局에 이야기꾼인 설화인說話人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설화인이 바로 오늘날 명나라 때의 책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인 설서인說書人과 비슷할 것 같다. 이 설화인이나 설서인이 사용한 문장은 틀림없이 통속적이었을 것이나 작가가 밝혀진 작품이 남아 있지 않으니 뭐라 말하기 어렵다.

남송 때 고종황제는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태상황의 지위로 남은 생애를 누리고 있었다.고종황제는 한가한 틈이 생길 때마다 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들을 즐겨 읽었다. 하여 환관에 명하여 하루에 한 책씩 바치게 하였으니 그 이야기가 맘에 들면 값을 후히 쳐서 보답해주었다. 이런 까닭에 환관들은 기이한 행적을 담은 옛날이야기나 동네에 떠돌아다니는 신기한 이야기를널리 찾아다녔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들을 사람을 시켜 다듬게 하고 부풀리게 한 다음 황제께바쳐 황제가 맘에 들어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렇게 바쳐진 이야기는 황제께서 한 번 보신 다음에는 그냥 팽개쳐버렸으니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그저 궁정 내부에서만 떠돌았을 뿐 민간에전파되는 것은 열에 하나 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완강루翫江樓》, 《쌍어추기雙魚墜記》같은 것들은 너무도 천박하고 비속하여 입에 올리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나관중羅貫中과 시내암施耐庵 두 사람이 원나라(1260-1368) 때 소설을 고취하였으니 《삼국지》, 《수호전》, 《평요전》 같은 작품들이 마침내 장편 대작으로 우뚝 솟았다. 이런 장편 대작은재주를 지녔으되 때를 만나지 못한 작가가 시대를 담아내려 지은 작품이지 태평성대에 한가롭게 취미 삼아 지은 작품이 아니다.

우리 왕조 명나라에 이르러 문화 통치의 기운이 흥성해지니 그 은택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여 연의만 보아도 송나라 때보다 더 빼어난 성취를 이루기도 하였다. 혹자들은 명나라연의가 당나라 때와 같은 멋진 문인 풍취가 모자란다고 섭섭해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복숭아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살구를 찾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거친 갈포, 고운 갈포, 솜털,비단은 각각 그것을 입을 때가 따로 있는 법이다. 당나라 때 것을 기준으로 송나라 때 것을 논한다면 마찬가지로 한나라 때 것을 기준으로 또 당나라 때 것을 논할 것이며, 춘추전국시대 것을 기준으로 한나라를 논할 것이니 이러다가는 복희씨의 괘의 한 효, 한 효의 기원까지를 따지고 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대저 당나라 소설의 정제된 말투는 문인들 마음에 쏙 들어오고 송나라 소설의 통속적인 말투는 장삼이사의 귀에 잘 들어온다. 세상에 문인들 수는 적고 장삼이사의 수는 많고도 많으니 소푸른 하늘 서재 주인이 쓴 서문 11설 역시 마땅히 정제된 말투는 드물게 쓰고 통속적인 말투를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어디 지금의이야기꾼들이 청중 앞에서 이야기를 구연하는 것을 볼까나. 그들은 그대를 기쁘게도, 놀라게도,슬프게도, 눈물 흘리게도, 노래하게도, 춤을 추게도 만든다. 그뿐이랴. 그대로 하여금 칼을 들게도 만들고, 고개 숙여 절하고 싶게도 만들고, 목을 베고 싶게도 만들고, 기꺼이 돈을 내게도 만든다. 겁이 많은 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음탕한 자를 정숙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얄팍한자를 도탑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우둔한 자에게 부끄러움이 뭔지를 알게 해준다. 《효경》, 《논어》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한들 어찌 이런 이야기처럼 빠르고 또 깊을 수가 있으랴. 오호라, 통속적이지 않고서 어찌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랴? 무원야사씨茂苑野史氏가 집안에 고금의 통속소설을 상당히 많이 소장하고 있다가 서적상의 요청을 받고서 그 가운데에서도 민초들의 귀에잘 들어맞을 것들을 선별하니 40편이 되었고 이에 한 질로 묶어 출판한다고 한다. 나 역시 그작품들을 읽어보니 너무도 재미있으니 이에 붓을 들어 이렇게 서문을 적노라.

綠天館主人題天許齋藏板扉頁題詞
(하늘이 허락한 서재라는 출판사 판 고금소설 속표지의 소개글)

《삼국지》, 《수호전》 같은 소설 작품은 장편 대작이라고 칭할만하다. 그런데 한 인물, 한 사건으로 이루어진 짧은 작품 역시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그런 연유로 전기가 있다고해서 잡극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천허재에서 고금의 이야기 120편을 사들이고 그 가운데 40편을 우선 출판하노라.

天許齋藏板

풍몽룡馮夢龍 사진 출처 荆州新闻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