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새벽春曉/ [唐] 맹호연
봄잠에 취해서
동트는 줄도 몰랐더니
여기저기 새 소리
들려온다
밤중에 들리던
비바람 소리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한밤 내내 봄비가 내린 새벽에는 이 시를 읽지 않을 수 없다. 한문 교과서에 빠짐없이 실려 있으므로 누구나 다 아는 한시다. 시어도 기본한자 수준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맹호연은 왕유와 함께 성당 자연시파를 대표한다. 정적인 특성을 보이는 왕유 시에 비해 맹호연의 시는 비교적 동적인 면을 보인다. 표 나지 않는 자연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만물의 기미를 드러낸다.
이 시를 읽을 때 처음 느껴지는 감각은 바로 청각이다. 이른 새벽에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가 독자의 청각을 청량하게 한다. 하지만 지난 밤 내내 들려온 비바람소리가 아직도 꿈결처럼 귓전에 남아 있다. 스산한 밤비 소리에 잠을 못 이루다가 늦게서야 얼핏 잠이 들어 날이 밝는 줄도 몰랐음에 틀림없다.
봄비는 겨우내 마른 초목을 다시 자라나게 하므로 기쁨의 상징이지만, 고운 봄꽃을 빨리 지게 하는 면에서는 근심의 표상이기도 하다. 명나라 학자 임광(林光)은 봄에 찬비가 내리자 “초록 풀 돋아나서 유유자득 생생하나/ 꽃가지의 붉은 꽃잎 줄어들까 근심이네(綠草貪生偏自得, 只愁紅紫損花枝)”(「찬비寒雨」)라고 읊었다. 이것이 바로 봄비의 이중성이다. 비바람소리 위에 겹치는 새소리도 이와 같다. 시인은 비 개인 봄날 새벽 새소리를 들으며 안도하지만, 한편으로는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봄꽃이 얼마나 떨어졌을지 근심에 젖는다. 그 근심은 이제 비바람소리, 새소리를 넘어 젖은 땅에 가득 덮인 낙화(落花)로 형상화된다.
하지만 이 시의 묘처(妙處)는 겉으로 감지되는 청각과 시각 너머에 있다. 새소리에 스며든 안도의 감정과 비바람소리에 묻어든 근심의 감정이 교차하는 곳, 그곳이 바로 이 시가 도달한 미묘한 지점이다. 귀와 눈의 감각 너머에서 마음의 감각이 움직이는 곳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런 미묘한 마음의 감각이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바이지만 미묘한 진리는 늘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다.(사진출처: 百度旅遊)
한시. 계절의 노래 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