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春風/청淸 원매袁枚
春風如貴客 봄바람은 귀한 손님 같아
一到便繁華 오기만 오면 번화해지네
來掃千山雪 천산의 눈을 녹이며 와서
歸留萬國花 만국에 꽃을 남기고 가네
청나라 항주 출신 저명 문인 원매(袁枚, 1716~1797)의 시이다.
전 시대에 수 없이 많은 시인들이 봄바람을 노래했는데도 마치 빈 종이에 처음으로 봄바람을 그리는 것처럼 시를 써 놓았다. 봄을 노래하는 시로는 스케일이 크고 담긴 의미도 자연 현상을 초월하는 언외지의가 풍부하여 이 시인의 국량을 엿보게 한다.
원매는 수원(隨園)이란 대 정원을 경영하면서 호를 수원주인(隨園主人)이라고도 했는데 물질적 풍요와 호색을 마음껏 구가한 특이한 인물이다. 수원이란 이름 자체도 지형을 그대로 따라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그는 사람의 욕망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향유해 전통문인들이 가난하게 살면서 정신적 자유와 풍요를 누린 것과는 아주 대조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비용을 글을 팔아 마련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전업 작가로 살기는 어려운 일인데 18세기에 전업 작가로 살면서 이러한 호사를 누린 것은 확실히 이색적이다.
《중국의 은자들》 (한길사)에는 이런 원매가 또 은자로 소개되어 있어 더욱 놀랍다. 그는 북경에 와서 관리 생활을 하였는데 만주어 시험에서 낙제하여 결국 정식 관리가 되지 못하고 강소성 율수현(溧樹縣)으로 방출되었다. 그는 1749년 34세부터 82세로 죽을 때까지 이 수원에서 주로 지냈다. 50년 가까이 역량 있는 문인이 벼슬을 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은자로 볼 수도 있지만 원매는 자신의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재야의 고소득 저명 문필가로 불러야 실상에 맞다.
원나라 말기 이래 많은 문인들이 강남에 모여 살면서 점점 문인들의 생활과 가치관이 사회 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변해온 여정의 한 양상으로 이런 원매와 같은 문인 유형이 등장한 것일 것이다.
누가 읽어보아도 쉽고 좋은 이 시를 보면 인기를 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시가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퍽 이상한 일이다.
365일 한시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