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湘江을 건너며渡湘江/당唐 두심언杜審言
遲日園林悲昔遊 봄날의 원림 옛날 추억에 젖게 하니
今春花鳥作邊愁 올 봄의 꽃과 새는 시름만 자아내네
獨憐京國人南竄 도성에서 남으로 유배 가는 가련한 신세
不似湘江水北流 북쪽으로 흘러가는 상강만도 못하구나
이 시는 아름다운 봄날이 아름다워서 더 슬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아름다움이란 때로 자살의 충동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이처럼 슬픈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두심언(杜審言, 645~708)은 두보의 조부로 2월 17일 48번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시는 두심언이 705년에 유배를 가다가 상강을 건너며 지은 시이다. 당나라 태종을 이어받은 고종의 아들 중종은 즉위하던 해에 바로 자신의 어머니인 칙천무후(則天武后)에게 폐위되었는데 칙천무후가 나중에 병들었을 때 신하들이 중종 복위를 추진하였다. 이 때가 바로 두심언이 61세 되는 705년이 된다.
칙천무후 총신 중에 장역지(張易之)가 있었는데 두심언이 이 사람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반정 세력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이 때 두심언의 유배지는 하내(河內), 즉 지금의 하노이인데 당시엔 봉주(峰州)로 부르던 곳이다. 오늘날도 장안에서 하노이까지는 먼 거리인데 당시로서는 아주 멀 뿐만 아니라 생활환경도 안 좋은 곳이었다.
상강이라는 곳은 <소상팔경도>의 무대가 되는 바로 그 곳이다. 상강은 광서성과 광동성에서 발원하여 형양(衡陽)과 장사(長沙)를 거쳐 동정호를 향해 북류하는 물이다. 동정호의 물은 바로 장강 대하로 합류한다. 두심언이 월남을 가려면 장사(長沙)를 거쳐 오령을 넘어야 하는데 오령을 넘기 전에 이 물을 건너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를 짓기 오래 전부터 상강 물과는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걸어 온 상태이다.
봄날 날은 길고 수목의 새싹과 꽃이 청홍으로 어울린 원림은 아름답기만 하다. 좋은 날씨에 아름다운 경치를 만났으니 당연히 같이 즐길 사람이 떠오른다. 예전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마음에 그리운 마음은 슬픔을 낳고 아름다운 경치는 그런 슬픈 감정을 더욱 자극한다. 고운 꽃들도 노래하는 새들도 오히려 더 큰 시름을 자아낼 뿐이다. 남쪽 저 하늘 끝으로 유배를 가는 나의 신세, 북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상강이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봄날이 더디 가는데 흰 쑥을 많이도 캐네.[春日遲遲, 采蘩祁祁]” 이런 시가 《시경》 <빈풍(豳風)>편 <칠월(七月)>에 나온다. ‘봄날이 더디 간다.’에서 ‘더디 간다.’의 ‘지(遲)’와 ‘일(日)’을 합친 ‘지일(遲日)’을 봄날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거저(居諸)’이다. 이 말은 《시경》 <패풍(邶風)>편 <백주(柏舟)> 시에 “해와 달이여 어찌 뒤바뀌어 이지러지는가[日居月諸. 胡迭而微]”에서 온 말이다. ‘일거월저(日居月諸)’에서 거(居)와 저(諸)는 어조사에 불과한데도 나중에 ‘거저(居諸)’를 떼어 ‘일월(日月)’이라는 의미로 쓰면서 ‘세월’이라는 뜻을 담게 된 것이다. 한문을 볼 때 글자나 글을 보고 추정하거나 넘겨짚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례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변수(邊愁)는 변방의 고통 때문에 발생하는 걱정을 말한다. 지금 자신이 당나라 변경에 와 있기 때문에 이 말을 쓴 것이다. 불사(不似)는 ‘~와 같지 않다’ 라는 뜻이지만 이 시에서는 불여(不如), 즉 ‘~만 못하다.’라는 의미로 쓴 말이다. 시에서는 2, 4, 6 번째 글자의 평측이 중요한데 지금 ‘사(似)’의 자리에 측성 자가 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如)를 쓰면 평성이 되어 평측이 맞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한시에 쓰인 불사는 단순히 ‘다르다’의 의미로 쓰인 것도 있지만 ‘못하다’의 의미로 쓴 것도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시에서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강물을 거슬러 가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한다는 점과 강물이 자신이 온 곳을 향해 자신이 가는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구조로 이 시가 설정되어 있다. 두보 시가 상당히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은 이런 조부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봄날 불어난 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 거리며 흘러가는 광경을 보면서 유유히 걸어보고 싶은 주말 아침이다.
365일 한시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