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지李適之- 罷相作재상을 사임하고
현자를 피해 처음 재상을 사임하고
성현을 즐기며 잠시 잔을 머금었지.
물어보자, 대문 앞에 손님들이
오늘은 몇 명이나 찾아왔더냐?
避賢初罷相, 樂聖且銜杯.爲問門前客, 今朝幾個來.
이적지(李適之: 694~747)가 지은 〈재상을 사임하고[罷相作]〉이다. 그는 본명이 이창(李昌)이고 자가 적지지만 주로 자로 불렸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증손자인 그는 우위랑장(右衛郞將)과 통주자사(通州刺史), 섬주자사(陝州刺史), 어사대부(御史大夫),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형부상서 등을 역임하고 현종(玄宗)의 천보(天寶) 1년(742)에 우선객(牛仙客: 675~742)을 대신하여 좌상(左相)이 되면서 병부상서를 겸했고, 위원현개국공(渭源縣開國公)에 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천보 5년(746)에 이임보(李林甫: 683~753)의 모함으로 재상에서 파직되고 태사소보(太子少保)로 강등되었다가 같은 해 7월에는 다시 의춘태수(宜春太守)로 폄적되었고, 결국 이듬해에 음독자살했다.
대충 보더라도 염량세태에 대한 조소가 뚜렷이 나타난다. 사연이 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현량한 인재를 위해 자리를 양보한다는 명분으로 재상 직위를 내놓고, ‘성현을 즐기며’ 잠시 술잔을 기울인다. 표면적으로 보면 여기서 말하는 ‘성현’은 성현의 뜻을 담은 책 내지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독서하는 사이사이 또는 훌륭한 황제의 다스림을 즐기는 사이사이 느긋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상으로 있을 때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던 손님들이 뚝 끊어져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민망할 지경이 되었다는 뒤쪽의 서술을 생각하면 그 독서와 음주를 ‘느긋하다’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 수기도 한다. 더욱이 간신의 모함에 빠져 파직된 마당에 ‘훌륭한 황제의 다스림을 즐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이 작품에는 사실 반전의 묘미까지 느끼게 하는 절묘한 풍자가 숨겨져 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수록된 서막(徐邈: 171~249, 자는 景山)의 전기에 수록된 도료작군(度遼將軍) 선어보(鮮於輔: ?~?)의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즉, “평소 취객(醉客)들이 말하기를 맑은 술은 성인(聖人)이고 흐린 술은 현인(賢人)이라고 한다.”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세에는 ‘낙성(樂聖)’이라는 말이 술을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시의 제2구를 다시 해석하자면, “술을 좋아하니 장차 마시려 하네.”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성인과 현인이 청주와 탁주를 비유하는 말임을 떠올리면 ‘피현(避賢)’과 ‘낙성’은 탁주를 피해 청주를 즐긴다는 뜻이 될 터이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가 피하는 탁주는 모함을 일삼는 간신 이임보이고, 즐기는 청주는 사실 어리석은 판단으로 나라를 그르치는 전혀 맑지 못한 황제를 반어적으로 풍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작품 때문에 그는 위현(韋堅: ?~746, 자는 子金) 등과 결탁했다는 오해를 받게 되어 자살로 이어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성(詩聖)’ 두보(杜甫)도 이 작품의 이런 절묘한 풍자를 이해하고 감탄했으니, 유명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이적지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좌상 이적지는 날마다 흥이 올라 만금을 쓰면서
수많은 개청 빨아들이는 고래처럼 술을 마시고
잔 머금고 술을 즐기며 현자를 피한다고 했지.
左相日興費萬錢, 飮如長鯨吸百川, 銜杯樂聖稱避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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