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宋] 범치중范致中 일관봉日觀峰

일관봉日觀峰/ [宋] 범치중范致中

태산은 동남쪽
첫째 가는 경관이라

창공에 높이 솟은
벽옥 봉이 가파르네

이 몸을 날게 하여
정상에 세워주면

깃털도 덜 마른
삼족오를 볼 수 있으리
岱嶽東南第一觀, 靑天高聳碧㠝岏. 若教飛上峰頭立, 應見陽烏浴未乾.

—일관봉(日觀峰)은 중국 태산 정상인 옥황정(玉皇頂) 동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일출을 관망하는 명소다. 태산은 대악(岱嶽), 대종(岱宗)으로도 불렸다. 태산 산신을 모시는 태안시(泰安市)의 사당 이름이 대묘(岱廟)인 것도 대악(岱嶽)에서 유래했다. 양오(陽烏)는 태양 속에 산다는 삼족오(三足烏)다. 『산해경(山海經)』 「대황남경(大荒南經)」에 의하면 태양의 모친 희화(羲和)가 감연(甘淵)에 아들 10명을 목욕시켜 매일 하나씩 하늘로 올려보낸다고 한다.

태산은 중국의 오악(五嶽) 중 동악(東嶽)으로 옛날부터 황제들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례(封禪禮)의 장소이기도 했다. 태양이 동쪽에서 뜨므로 오악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 중국인의 성산으로 추앙받아왔다. 지금도 옥황정 동남쪽 기슭에 “오악독존(五嶽獨尊)”이란 각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논어』에 공자가 태산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고, 진시황도 태산에서 봉선례를 올렸으므로 완전한 오악 신앙은 아니더라도 태산을 숭배하는 의식은 매우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두산, 백악, 태백산, 함백산, 한밝산 등 밝고 높은 산을 숭배하는 경향과 유사한 셈이다.

나는 1997년 늦가을이나 초겨울 쯤 태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마침 가던 날이 장날이라 케이블카가 수리 중이어서 끝도 없는 계단을 직접 밟고 태산에 올랐다. 높이가 1545미터여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계단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가 저절로 떠올랐다. 정상에는 옥황전(玉皇殿)이란 도교 사원이 있었고, 정상부 주위에 각족 숙박 시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또 요소요소마다 공자가 올랐던 지점, 역대 황제나 명인들의 각석 등이 즐비했고, 심지어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현대 정치인들의 각자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태산을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태산에 실망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정상부의 여러 가지 인공 시설물 때문에 자연미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내가 느낀 태산은 좀 달랐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서기(瑞氣)가 과연 태산다웠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유구한 경관이 태산의 특징을 잘 드러내 보였다. 중국인답게 태산을 숭배하고 가까이하는 방식이 자연과 인간을 혼연일체로 만드는 듯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났으므로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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