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구에 들러過鴻溝/ [唐] 한유韓愈
용과 범이 지친 끝에
강과 들을 분할하니
억조창생 목숨이
살아나려 했는데
그 누가 군왕에게
말머리 돌리라 하여
참으로 건곤일척
도박 벌이게 했는가
龍疲虎困割川原, 億萬蒼生性命存. 誰勸君王回馬首, 眞成一擲賭乾坤.
‘하노이회담’이 결렬됐다. 『초한지』에 나오는 ‘홍구강화(鴻溝講話)’가 연상된다. 홍구는 황하, 수수(睢水), 영수(潁水), 회수(淮水)를 남북으로 잇는 고대 운하다. 이 정전회담이 ‘홍구강화’로 불리는 이유는 ‘홍구’라는 곳에서 회담이 열렸기 때문이 아니다. 회담 결과 ‘홍구’를 경계로 땅을 나누자는 합의에 이르렀기에 ‘홍구강화’로 불린다. 요즘처럼 ‘센토사회담’이니 ‘하노이회담’이니 하며 회담 장소에 따라 명칭을 붙이는 관례와는 다른 명명법이다.
형양(滎陽), 성고(成皐), 광무(廣武) 등지에서 총력전을 벌이던 초·한 양 진영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정전회담을 벌인다. 한나라 대장군 한신(韓信)이 이미 위(魏)·대(代)·조(趙)·연(燕)·제(齊) 땅을 모두 점령한데다, 양(梁)의 팽월(彭越), 강남의 영포(英布)까지 유방의 진영에 가담한 형세에서 항우는 더 이상 전쟁을 치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항우는 모든 형세가 불리했지만 다행이 유방의 부친 태공과 그의 부인 여치(呂雉) 및 그 일가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유방은 항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부친과 부인을 석방시켜야 했다. 유방은 후공(侯公)을 보내 항우에게 유세하여 부친과 부인을 석방시키고, 홍구를 경계로 동쪽은 초나라가 차지하고, 서쪽은 한나라가 차지하기로 했다.
강화문서를 교환하고 유방의 부친과 부인을 석방한 항우는 마침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꿈에 젖어 갑옷을 벗고 귀로에 올랐다. 그 때 유방의 모사 장량과 진평 등이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수세에 몰린 항우를 공격하라고 권했다. 즉 강화문서에 먹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합의 파기를 종용한 것이다. 유방은 주저하다가 마침내 모사들의 말에 따라 항우를 추격하여 해하(垓下)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항우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결국 오강(烏江)에서 자결했다.
양자가 강화회담을 하면 흔히 강자가 합의를 파기하기 마련이다. 약자는 ‘홍구회담’의 결과처럼 강자가 다시 공격에 나설까봐 늘 두려움과 의구심을 갖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약자는 합의 이후의 안전장치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라와 국민의 생사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누가 ‘홍구강화’로 패망한 항우가 되려 하겠는가?(그림출처: 搜狐旅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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