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그레 윤기 나는 손에
황등주 들었구나.
성 안에 봄빛 가득하고 궁궐 담장엔 버들가지 휘영청.
봄바람은 고약하여
기쁜 감정 희박하게 만들었구나.
가슴 가득한 시름
몇 년이나 쓸쓸히 지냈던가?
잘못이었구나, 잘못, 잘못이었어!
봄날은 예전과 같은데
사람만 공연히 수척해졌구나.
연지에 묻은 눈물 손수건에 스며든다.
복사꽃 떨어져
쓸쓸한 연못과 누각.
사랑의 맹서는 남아 있지만
비단에 쓴 편지는 부치기 어렵구나.
아서라, 아서, 아서!
紅酥手, 黃縢酒. 滿城春色宮墻柳. 東風惡, 歡情薄. 一懷愁緖, 幾年離索. 錯, 錯, 錯!
春如舊, 人空瘦. 淚痕紅浥鮫綃透. 桃花落, 閑池閣. 山盟雖在, 錦書難托. 莫, 莫, 莫!
이것은 남송(南宋) 육유(陸游: 1125~1210, 자는 務觀, 호는 放翁)가 쓴 사(詞) 〈채두봉(釵頭鳳)〉이다. 〈채두봉〉은 사의 곡조[詞牌] 이름으로서 원래 명칭은 〈힐방사(擷芳詞)〉이고, 〈절홍영(折紅英)〉이라고도 불린다. 이 곡조로 고대와 현대의 많은 문인들이 뛰어난 걸작을 남겼지만, 개중에 육유의 이 작품이 그 뒤에 담긴 일화로 인해 더욱 유명하다. ‘이색(離索)’은 가족을 떠나 홀로 쓸쓸히 지낸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아내와 헤어져 소슬한 나날들을 가리킨다. 황봉주(黃縢酒)는 황봉주(黃封酒)라고도 하며 송나라 때 궁중에서 특별히 빚어 황제와 황족에게 제공하던 술이다. 발효시킨 후 노란색 비단이나 종이를 덮은 후 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보관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이것은 당완(唐琬)의 새 남편이 황족이었기 때문에 보내줄 수 있었던 귀한 술이었지만, 육유에게는 쓸개즙보다 씁쓸하고 삼키기 어려운 무엇이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잘못이었다.’라고 번역한 ‘착(錯)’에는 둘을 갈라놓은 모친과 그것을 말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錯誤]’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운명의 ‘엇갈림[錯綜]’에 대한 한탄을 비롯한 갖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사랑의 맹서[山盟]’는 남아 있건만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그녀에게는 이제 마음을 전할 편지조차 쓸 수 없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莫]’ 하는 예법의 장벽과 도저히 가눌 수 없는 ‘쓸쓸하고[寞]’ ‘아득한[漠]’ 심정이라니!
육유와 당완(唐琬)의 애달픈 사랑에 대해서는 《기구속문(耆舊續聞)》(권10)과 《역대시여(歷代詩餘)》(권118), 그리고 송(宋)나라 때 주밀(周密: 1232~1298, 자는 公謹, 호는 草窗)이 편찬한 《제동야어(齊東野語)》(권1)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제동야어》의 기록이 가장 상세하다. 이 기록들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육유는 처음에 당굉(唐閎)의 딸이자 모친의 조카인 당완과 결혼하여 사이가 좋았으나 모친이 며느리를 싫어하여 내쫓았다. 그러나 둘은 따로 방을 마련해놓고 자주 만났으며, 당완의 모친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덮어주었다. 하지만 결국 일이 누설되어 완전히 사이가 끊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훗날 당완은 황실 종친인 조사정(趙士程)에게 재가했다. 그 후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우적사(禹迹寺) 남쪽에 있는 심(沈) 아무개의 정원에 나들이를 갔다가 마침 그곳에 와 있던 육유를 발견하고 남편에게 부탁해서 술과 안주를 보내주었다. 이에 육유는 한참 동안 슬퍼하다가 〈채봉두〉를 지어 그 정원의 벽에 적어두었으니, 그때가 육유의 나이 31살인 소흥(紹興) 25년(1155)이었다. 이로부터 얼마 후 당완이 죽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그녀는 육유의 사와 같은 제목으로 화답을 남겼다고 했는데, (비록 이 작품은 훗날의 어느 호사가가 지어 이야기에 끼워 넣은 혐의가 있지만) 그 내용은 이러하다.
세상의 정 각박하고
인정은 고약하구나.
빗속에 황혼 보내니 꽃은 쉬이 떨어진다.
새벽바람에 말라도
눈물자국은 남아 있다.
편지로 심사 전하고 싶지만
난간에 기대어 혼잣말만 할 뿐.
어렵구나, 어려워, 어려워!
사람은 각기 남이 되었고
이제는 예전과 다르지.
병든 영혼은 언제나 그네 줄처럼 흔들리지.
뿔피리 소리 차갑고
밤도 끝나가다.
누군가 물어볼까봐
눈물 삼키고 즐거운 표정 짓나니
거짓이야, 거짓, 거짓!
世情薄, 人情惡. 雨送黃昏花易落. 曉風乾, 淚痕殘. 欲箋心事, 獨語斜欄. 難, 難, 難!
人成各, 今非昨. 病魂常似鞦韆索. 角聲寒, 夜闌珊. 怕人尋問, 咽淚裝歡. 瞞, 瞞, 瞞!
다시 소희(紹熙) 3년(1192)에 68살의 육유는 심씨 정원을 찾아갔다가 〈우적사 남쪽의 심씨 정원[禹迹寺南有沈氏小園]〉이라는, 서문이 붙은 시를 썼다.
우적사 남쪽에 심 아무개의 작은 정원이 있다. 40년 전에 짧은 사를 한 편 지어 이곳 벽 사이에 적어두었다. 우연히 다시 와서 보니 그 사이에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그 사를 읽으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禹迹寺南, 有沈氏小園. 四十年前, 嘗題小詞一闋壁間. 偶復一到, 而園已三易主, 讀之悵然.
단풍이 붉어질 무렵 떡갈나무 잎 누렇게 변하니
반악의 시름겨운 살쩍에는 새로이 서리 앉을까 두렵구나.
숲속 정자에서 옛날의 감회에 젖어 공연히 고개 돌리지만
샘으로 이어진 길에서 누구에서 애끓는 이 마음 얘기할까?
무너진 벽에는 취해 쓴 노래가 먼지에 덮여 있고
옛 사랑은 꿈속에서나 보일 뿐 이미 아득해져버렸구나.
근래에는 부질없는 생각 모두 사라져
돌아서서 불당 바라보니 향 한 자루 타고 있구나.
楓葉初丹槲葉黃, 河陽愁鬢怯新霜.
林亭感舊空回首, 泉路憑誰說斷腸.
壞壁醉題塵漠漠, 斷雲幽夢事茫茫.
하양령(河陽令)을 지낸 반악(潘岳: 247~300, 자는 安仁)은 죽은 아내를 기리는 〈도망시(悼亡詩)〉의 작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데 노년의 육유는 자신을 반악에 비유함으로써 자기 마음속의 진정한 아내인 당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68살의 나이에 세속의 부귀공명에 대한 ‘부질없는 생각[妄念]’들은 다 없애버렸지만, 돌아서서 불당을 향하는 그의 마음에는 어쩐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향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듯하다.
이 외에도 그는 이 무렵에 〈심씨 정원[沈園]〉이라는 2수의 연작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성 위에 석양 드리울 때 뿔피리 소리 구슬픈데
심씨 정원에는 못가의 옛 누대 이제 없구나.
가슴 아파 거니는 다리 아래엔 봄 물결 푸르나니
일찍이 놀란 기러기 찾아와 그림자 비친 적 있지.
城上斜陽畵角哀, 沈園非復舊池臺.
傷心橋下春波綠, 曾是驚鴻照影來.
꿈에서도 보지 못하고 향기 사라진 지 마흔 해
심씨 정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 솜도 날지 않는구나.
이 몸이 떠나가 산속의 흙이 된다 해도
남겨진 자취 떠올리면 한없이 눈물 나겠지.
夢斷香銷四十年, 沈園柳老不吹綿.
此身行作稽山土, 猶弔遺蹤一泫然.
제1수의 마지막 구절에 담긴 ‘놀란 기러기(驚鴻)’라는 표현은 가히 압권이다. 이 짧은 단어 하나로 그 옛날 뜻밖의 조우에 놀랐던 그녀와 나, 혹은 과거의 춘정(春情)을 떠올리게 하는 연못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지금의 나를 함께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개희(開禧) 1년(1205) 세모(歲暮)에 꿈에서 심씨의 정원을 본 81살의 그는 다시 〈12월 2일 꿈에 심씨 정원에 나들이를 다녀오다[十二月二日夜夢遊沈氏園亭]〉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절구를 썼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길이 성 남쪽에 가까워지자 벌써 걷기가 두려우니
심씨의 정원에 들어가면 더욱 가슴 아프기 때문이지.
나그네의 소매 파고드는 향기 풍기는 매화는 여전하고
푸른 물속에 비친 절의 다리 아래 봄물이 흐르는구나.
路近城南已怕行, 沈家園裏更傷情.
香穿客袖梅花在, 綠蘸寺橋春水生.
성 남쪽 작은 길에서 또 봄을 만났는데
매화는 보이건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구나.
아름다운 몸은 오래 전에 황천 아래의 흙이 되었지만
노래의 글씨는 여전히 벽 사이에서 먼지에 덮여 있구나.
城南小陌又逢春, 只見梅花不見人.
무려 5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살아남은 이의 애절한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것을 불륜이라고 매도할 모진 인정은 당시에도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중원의 통일’이라는 소망보다 더 깊이 육유의 가슴에 박혀 있었을 이 끝나지 않을 한과 슬픔을 어쩌란 말인가!
by 백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