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츠카 히데다카大塚秀高 교수와의 대담

백지운(白池雲 延世大 中文科 博士課程) 진행/정리

오츠카 히데다카 교수, 사진 ⓒ 조관희, 2001

1. 토쿄대학 지나학과의 역사

백지운 : 먼저 선생님의 개인사에 대한 질문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처음 대학에 들어가신 때가 대략 언제입니까?

오츠카 : 소화(昭和) 43년이니까 1968년이 됩니다.

백지운 : 당시부터 토쿄대학학에 중국문학과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오츠카 : 아니죠. 중국문학과라는 이름은 전후(戰後)에 생긴 것이고 당시 명칭은 지나학과였어요. 당초에는 중국문학과와 중국철학과가 합쳐져 있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두 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백지운 : 그럼 역사가 꽤 긴 편이군요.

오츠카 : 그렇습니다. 제국대학이니까 명치시대부터 있었습니다.

백지운 : 선생님 전공이 고전 소설이라고 들었는데요, 고전문학 안에서도 고전시나 소설 등 몇 개의 분야가 있지 않습니까? 당시 토쿄대학 지나학과에서는 주로 어떤 부문을 중심으로 가르쳤는지 듣고 싶습니다.

오츠카 : 처음에는 중국어중국문학과라고 해서 어학과 문학이 합쳐져 있었습니다. 원래는 선생이 네 분이었는데, 제가 다닐 당시에는 두 분밖에 안 계셨어요. 그 중 한 분은 작년 돌아가셨는데, 제 지도교수였기도 한 마에노 선생님이었습니다.

백지운 : 마에노 선생님이라면 마에노 나오아끼(前野直彬) 선생님 말씀이지요?

오츠카 : 맞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아직 강사였지만 히라야마(平山)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교수가 두 분밖에 없으니 중문과 수업을 전부 들어도 학점이 모자라죠. 그러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할 때쯤에는 선생님이 늘었습니다. 대학원생이 되면 벌써 반은 전문가로 취급되니까 거의 전공과 관련된 수업만 들었는데, 주로 마에노 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외에는, 그러니까 토쿄대학에는 중국문학과 말고도 ‘동양문화연구소’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도 대학원 수업이 있었죠. 거기서는 오노우에(尾上) 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제 지도교수인 마에노 선생님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분은 시(詩)든 소설이든 문학사 일반 어떤 분야에서도 모두 유명한 분이셨기 때문에 반드시 고전 소설만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노우에 선생님도 고전뿐 아니라 현대문학 작가인 노신에 관해서도 깊은 이해를 하고 계셨습니다. 주로 시문(詩文)은 마에노 선생님께, 소설은 오노우에 선생님께 배웠고 그 외 희곡이나 기타는 타나까(田仲一成) 선생님께도 배웠습니다.

백지운 : 선생님의 주된 전문영역이 『수호전』이라고 들었는데요.

오츠카 :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성격상 하나만 파지 못하고 여러 가지를 적당히, 많이 하는 편이라서요. 학부 졸업논문에서는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대한 연구를 했었습니다. 원래는 『서유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 고베 대학의 어떤 선생님이 이미 『서유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분 연구를 보니까 제가 할 것은 더 없겠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비슷한 영역인 『봉신연의』를 했던 겁니다.

백지운 : 그럼 석사논문은 무엇에 관해 쓰셨습니까?

오츠카 : 석사 때는 완전히 주제가 바뀌어서 명대 시문(詩文), 종성(鐘惺)에 대해 썼습니다. 그 뒤로 다시 소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박사논문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 대학에 박사학위라는 것은 제도로서는 있었지만 실제로 아무도 박사논문은 쓰려 하지 않습니다.

백지운 : 저도 그 점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해 왔었는데요, 일본의 교수들은 대부분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왜 그런 건가요? 학위를 받기가 너무 어려워서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오츠카 : 우선 지도 선생에게 박사학위가 없는데, 학생이 학위를 따기가 곤란하니까, 그래서 박사논문을 쓰지 않는 거죠.(웃음) 일본에서의 박사 과정은 원래 3년이지만 실제로는 더 오래 걸립니다. 저는 5년간 과정을 밟은 뒤 겨우 토쿄대학 조수를 하게 됐습니다. 조수를 4년 했죠. 그리고 나서 대학에 취직을 했습니다.

2. 일본대학 연구 방법론의 과거와 현재

백지운 : 화제를 조금 돌려서, 이번에는 일본의 학문연구 방법론이랄까, 연구 경향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흔히 일본의 연구방법론을 이야기할 때, ‘실증적’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의 연구자들은 학생 시절부터 자료를 찾고 이용하는 방법을 지도선생에게 철저히 훈련받아서 실증적 학문연구의 기초능력을 키운다고 들었는데,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오츠카 :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선생으로부터 ‘방법론’이라는 것을 조금도 전수받기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국 연구자들이 보기에는 일본연구방식이 대체로 어떠어떠한 경향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일본 내부에서도 방법론이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차별성을 띠고 있어요. 이를 테면 교토(京都)대학과 도쿄(東京)대학은 연구자를 훈련시키는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쿄토대학은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책을 읽는 방법을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자료를 어떻게 찾을까, 사전은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어떤 경우에 반드시 원문을 대조해야 하는가 등등 진절머리날 정도로 지적을 당하죠. 그런 데 반해 토쿄대학에서는 선생이 학생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원래부터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따라가지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과정 중에 낙오됩니다. 냉정하죠. 쿄토대학에서는 능력이 좀 떨어져도 어느 정도까지는 끌어주는데 토쿄대학은 그런 것이 없어요. 동대에서는 나중에 토쿄대학 교수가 될 몇 명만 키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백지운 :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습니까?

오츠카 : 지금도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죠. 교토대학 선생은 자기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배운 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도쿄대학 선생은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학자겠지만, 교수방법으로서는 교토대보다 떨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만 최근에 와서는 달라졌습니다. 그 뒤로 도쿄대에는 현대문학을 하는 노신 연구자, 마루야마 노보루(丸山昇) 선생과 고전문학의 다나까 선생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계셨죠. 마에노 선생님은 도중에 몸이 아파서 56세 정도 이후엔 거의 가르칠 수 없었고 오노우에 선생은 가르치는 방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로 다나까 선생님에게 배웠죠.

백지운 : 그럼 선생님께서는 지금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오츠카 : 제가 있는 사이타마 대학에는 중문과가 아니라 동아시아학과입니다. 거기에는 한국에서 와서 토쿄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저와 같은 곳에서 중국 철학을 가르치는 분이 한 분 있고, 또 중국에서 오신 분이 있습니다. 중국문학은 제가 가르치죠. 그렇지만 제가 있는 곳이 중문과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요구는 다양하죠. 중국 철학, 민속, 역사 등. 그래서 문학을 하겠다는 학생은 몇 년 중 한 명꼴입니다.

백지운 : 그러니까 일본에서도 순수하게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군요.

오츠카 : 그래요. 전반적으로 ‘프랑스 문학과’든 ‘독일 문학과’든 문학을 하는 경향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영문학은 다르지만.

백지운 : 선생님이 고전문학에 대해 연구하고 계시니까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최근 일본 중문학계에서 비교문학 연구경향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일본의 에도 문학과 중국 고전, 근세 문학 사이의 비교 연구 같은 것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오츠카 : 비교문학연구라고 하면 이전에는 주로 영향관계 연구였지요. 중국의 어떤 작가나 문학사조가 일본의 작가 혹은 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거요. 그런데 지금은 경향이 바뀐 것 같습니다. 영향관계가 없는 두 개의 대상을 뽑아서 서로 비슷한 경향을 찾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이런 방법을 일본문학이나 중국문학을 한 사람은 거의 채택하지 않습니다. 주로 유럽 문학을 한 사람이 하죠.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웃음), 예를 들어 불문학을 해서 책을 써도 지금 일본에서는 팔리지 않죠. 그렇지만 프랑스 문학사 중의 몰리에르나 라신느 등과 일본문학 중 비슷한 경향의 사람을 잡아서 같이 쓰면 주목을 받게 되요. 물론 일본 문학 연구자도 비교문학은 거의 하지 않죠.

학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오츠카 교수, 사진 ⓒ 조관희, 2006

백지운 : 혹시 김문경(金文京) 선생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는지요. 알려지기로는 일본에서 중국, 일본, 한국의 비교문학 연구를 왕성하게 하고 있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오츠카 : 잘 알아요. 김문경씨는 원래 중국 희곡 전공자였습니다. 희곡은 쿄토대학에 전통이 깊죠. 토쿄대학도 원래는 고전 소설을 중심으로 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연구 중심이 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옮겨 왔어요. 쿄토대는 줄곧 시문과 희곡이 중심이었죠. 김선생의 지도선생은 다나까 켄지(田中謙二)라는 분으로, 그 분 역시 희곡 연구자였습니다. 그리고 다나까 선생 전에 요시카와(吉川幸次郞) 선생도, 뭐 여러 분야를 했으나, 박사 논문은 원곡(元曲)으로 썼었죠. 김문경 선생은 그러니까 희곡을 읽는 방법으로 소설을 읽는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특히 그는 언어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모두 잘 하고 홍콩이나 타이완 등 시야가 넓죠.

3. 일본대학의 학회활동

백지운 : 이번에는 일본 학회 상황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중국문학 안에서도 소설학회, 현대문학학회, 산문학회, 희곡학회, 등 여러 분야로 나뉘어져 학회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경우 중국문학과 관련한 학회 상황은 어떻습니까?

오츠카 : 중국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크게 역사학회와 문학학회로 나뉩니다. 역사학회 안에서도 다시 여러 분야로 나뉘어져 서양사 동양사가 있고, 동양사 중에서도 명대사, 청대사 등으로 다시 잘게 나뉩니다. 문학 관계 학회로는 가장 큰 것이 ‘일본중국학회’이고 그 외에 ‘동양학회’라는 것이 있어요. 그렇지만 동양학회에는 아랍, 티벳, 시베리아, 인도까지 포함되니까 범위가 꽤 크지요. 일본에서는 젊은 연구자가 일본중국학회에서 논문을 하나 발표하고 그 다음에 동양학회에서 발표하면, 그걸로 대체로 취직이 보장됩니다. 그러니까 한국처럼 학회처럼 친교성같은 것은 거의 없고, 주목적이 연구자의 경력을 제공해 주는 것인 거죠. 그런데 이 학회들은 1년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아요. 그 외에는 각 대학별로 소규모의 대학학회 혹은 선생 개인연구실 단위의 학회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소설, 희곡 등 그룹별로 학회가 열리지요. 예를 들면 토쿄대학의 마루야마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는 ‘30년대 문학연구회’ 같은 것이 그런 겁니다. 그러나 그런 모임은 정식 학회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학회로 등록되려면 정기적으로 학회지가 나와야 하고 회비 수합도 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로 보면 큰 학회의 입장에서 보면 작은 단위의 정식 학회가 생기는 것을 크게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소단위의 모임은 연구회의 성격을 띠지요.

일본인 학자 스즈키 교수(왼쪽)와 함께 한 오츠카 교수, 사진 ⓒ 조관희,

백지운 : 그러면 중국문학 관련의 권위있는 학회지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오츠카 :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는 『일본중국학회보(日本中國學會報)』, 『동방학보(東方學報)』 정도입니다. 그 외에 각 대학에서 나오는 잡지에는 실려봤자, 심사위원이 대체로 지원자의 지도교수일 것이고 그러면 자기 학생이니까 실어 주었겠지 하는 인식이 있으므로 많이 실려도 그다지 경력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두 개 잡지에만 실리면 인정을 받게 되죠.

백지운 : 『청말소설(淸末小說)』같은 잡지도 국내에서는 관심있게 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요.

오츠카 : 그 잡지도 유명해요. 그런데 그 잡지는 어떤 기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개인이 내는 것입니다. 학술지로서는 독특한 성격을 띠는 잡지이죠. 역사도 길어요. 혼자서 22호 정도까지 했으니까요. 경비도 순전히 개인 자산으로 대는 겁니다. 오사카대학의 경제학부 선생인데, 자기가 주장하는 연구경향이나 학문의 방향이 큰 단위 학회나 학회지에서는 잘 반영이 안 되니까, 자비로 잡지를 내게 된 거죠. 매 년 네 번 나옵니다. 거기에는 중국 연구자들도 자주 투고를 하지요.

4. 한일 학술 교류의 전망

백지운 : 대략 시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만, 한 두 가지 선생님의 견해를 더 듣고 싶군요. 제 경우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이전에 저도 일 년 남짓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문학을 하면서 일본에는 왜 왔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저는 그것이 아주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일본이라는 제 3의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되었을 때, 중국이나 한국이 더 잘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리적인 면에서나 역사, 문화적인 면에서 볼 때, 중국과 일본,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에서는, 이번 소설학회에서도 그랬듯이. 최근에 국제학회가 자주 열리면서 중국학자뿐 아니라 일본 학자까지 초빙해서 학문 교류의 범위를 넓히려는 분위기가 일어나는 것 같은데, 이런 분위기의 변화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오츠카 : 개인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에서 중국문학을 하는 사람 중에 한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이죠. 물론 말은 중국말로 하더라도 한국과 교류는 할 수 있죠. 저도 개인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싶긴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어서요. 앞으로는 일본에서도 중국문학을 하는 사람도 중국어 외의 다른 외국어 하나쯤은 필수적 요건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영어야 읽는 정도면 되겠고 그 외 하나 정도의 외국어가 필요하죠. 저의 세대는 어렵지만 제 다음의 세대에는 이런 일이 실현되리라 생각됩니다.

백지운 :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셔서 받은 인상이나 이번 소설학회에 참석하시면서 느끼신 소감 같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오츠카 : 우선 처음 받게 된 느낌은 한국 학회가 살아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토론을 하는 방식 면에서도 한국의 학회는 일본과 다릅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발표자와 지정 토론자를 같이 두고 토론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일본의 학회에는 토론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먼저 발표자가 발표를 하고 나서 청중 중에 질문할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말죠. 최근에는 지정 토론자를 두는 학회가 생겼습니다만 그렇게 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그리고 최근 소규모의 학회에서는 비교적 토론을 활발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단위 학회는 좀처럼 바뀌지 않죠. 큰 학회에 중심이 되는 선생님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작은 단위의 연구회에서 아무리 바꿔 보려 해도 전반적으로 잘 안 되는 것이 지금의 실상입니다.

백지운 :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은 국내의 중국문학 연구자들에게 일본의 학계에 대한 소중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록] 오츠카 히데다카(大冢秀高) 교수의 연구성과

저술(單著)

1. 『中國通俗小說書目改訂稿(初稿)』 汲古書院 19 84. 8

2. 『中國小說史的視點』 廣播大學敎育振興會, 19 87. 3

3. 『增補中國通俗小說書目』 汲古書院 1987. 5

4. 『照世杯(佐伯文庫叢刊第一期)』(整理) 汲古書院 1988. 10

논문

1. 「鐘惺硏究」(碩士論文) 未發表

2. 「話本和通俗類書―宋代話本小說的探究和硏究」, 『日本中國學會報』 第28輯 1976. 10

3. 「張生煮海說話的淵源再考―從傳奇到話本」 『東方學』 第56輯 1978. 7

4. 「『綠窗新話』和『新話摭粹』–萬曆時代的『綠窗新話』」 『日本中國學會報』 第30集 1978. 10

5. 「洪邁和『夷堅志』―歷史和現實的狹縫間」『中哲文學會報』第5號 1980. 6

6. 「明代後期文言小說刊行槪況」 『東洋文化』 第61號 1981.3; 謝碧霞 譯 『明代後期文言小說刊行槪況』(上下); 『中國書目季刊』 第19卷 第2/3期 1985.9.1

7. 「鬼國續記(夷堅志)―史家和奇見異聞」 伊藤漱平編 『中國古典文學作品選讀』(東京大學出版會) 1981.4

8. 「從公案話本到公案小說集―『丙部小說之末流』在話本硏究中所占的位置」 『集刊東洋學』 第47號 1982.5

9. 「『史記』和『漢書』」 『中國的歷史書(漢文硏究系列12)』(尙學圖書) 1982.5

10.「關於『油印本明淸善本小說叢書』―舊大連圖書館藏書的去向」 『中哲文學會報』 第7號 1982.5

11. 「關於絶纓三笑」 『中哲文學會報』 第8號 19 83.6

12. 「“公說話”和“周新說話”―公案小說生成史的一個側面」 『東方學』 第66輯 1983.7 ; 張鏞,張永芳譯 「“包公說話”和“周新說話”―公案小說生成史的一個側面」 『電大法學』 1987年 第12期 1987.12

13. 「三遂平妖傳和張榮起」 『東方』第58號 1986.1

14. 「“十二笑”和李漁」 『伊藤漱平敎授退官紀念中國學論集』(汲古書院) 1986.3

15. 「關於『警世通言』的板本―以左伯文庫本和都立中央圖書館爲中心」 『中國社會/文化』 第1號 1986.6 ;「關於『警世通言』的板本(補)」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創刊號 1987.10 ; 黃霖驛 「關於『警世通言』的板本―以左伯文庫本和都立中央圖書館爲中心」 『明淸小說硏究』 19 89 第1期

16. 「從無聲戱到連城璧―李漁硏究的現況介紹爲開場白」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創刊號 1987.10

17. 「公案小說硏究二則」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創刊號 1987.10

18. 「『然我七人․只是對鬼說話』―鬼國說話和西遊記物語」 『集刊東洋學』 第60號 1988.10

19. 「從二刻到三刻―圍繞幻影展開」 『漢學硏究』 第6卷 第1期 1988.6.; 「從二刻到三刻―圍繞幻影展開」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2號 198 8.10

20. 「關於水滸說話―以『宣和遺事』爲線索」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2號 1988.10 ; 東炎驛 「關於水滸說話―以『宣和遺事』爲線索」 『寧夏敎育學院/銀川師專學報』(社會科學) 1991年 第3期

21. 「中國通俗小說的書目和提要―言及所爲靈怪小說的槪念,及講史章回小說的舊本和新本」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2號 1988.10

22. 「1985-1987年(附1988年前期)日文明淸小說關係論文目錄」(稿) 與伊藤漱平合編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2號 1988.10

23. 「1988年10月-1989年2月戱曲/小說硏究之我見」 『氣紛硏究動態』 第1號 1989.2

24. 「蕭湘迷津渡者和他的小說」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24卷 1989.3

25. 「圍繞古川/佐藤/黃霖/德田的論文」 『氣紛硏究動態』 第2號 1989.5

*關於黃霖/德田的論文部分附有補注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3號 轉載

26. 「圍繞武田/大室/成瀨的論文」 『氣紛硏究動態』第4號 1989.11

27. 「講史章回小說的出版和改變―圍繞『三國志』展開」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3號 1989. 12

28. 「1989年11月-1990年1月的新刊書」 『氣紛硏究動態』 第5號 1990.2

29. 「惧內文學的發展過程―論小靑傳及李漁」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25卷 1990.3

30. 書評,神奈川大學硏究叢書(6) 「現在/回顧日本和中國―日中比較文化論」 『神奈川大學人文學硏究所報』 第23號 1990.3

31. 「小說和物語―以劍神說話爲線索」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4號 1990.10

32. 「白蛇傳和禪宗―關於杭州寧波之間的交流」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26卷 1991.3

33. 「孫楷第的提要」 『氣紛硏究動態』 第8號 199 1.5

34. 書評「中國開封的生活和歲時―宋代都市生活的描寫」 『氣紛硏究動態』 第8號 1991.5

35. 「關於『幽怪詩譚』」 『集刊東洋學』 第65卷 1991.5

36. 「小說和物語(補)」 『竹田晃先生退官紀念東亞洲論叢』(汲古書院) 1991.6

37. 「小說和物語(續)―物語的構造和面貌的改變」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第5號 1991.10

38. 「無情的故事―拙論的訂正及新刊的介紹」 『氣紛硏究動態』 第9號 1991.11

39. 「圍繞丁耀亢的小說和戱曲―有關明末淸初的文學的作用」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27卷 1992.3

40. 「小說故事和歷史故事―以『史記』、『漢書』爲中心」 『軍記和說唱文學』 第28號 1992.3

41. 「『西遊記』的構思―善神和治水神話的再生」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28卷 1993.3

42. 「讀『中國的影戱』」 『中國藝能通信』 17 1993. 11

43. 「王府和原小說―從江流和尙的物語來看『西遊記』」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29卷 1994.3

44. 「從嘉靖定本到萬曆新本―以熊大木與英烈/忠義爲線索」 『東洋文化硏究所紀要』 第124冊 1994.3

45. 書評「三國演義的世界」 『東方』 156 1994. 3

46. 「關羽的物語―暴神和『三國志』物語」 『しにか』 1994.4 1994.3

47. 「從物語到小說―中國小說史生成序說」 『文學遺産』 1994年 第2期 1994.3 ; 「93中國古代小說國際硏討會論文集」(開明出版社) 1996.7

48. 「關於歷史語言硏究所所藏的曲本」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最終號, 1994.6

49. 「關於佐伯文庫舊藏的『金甁梅』」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最終號, 1994.6

50. 「關於『型世言』的硏究」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最終號 1994.6

51. 「胡從經和『東瀛訪稗錄―中國小說史資料的新發現』」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最終號 1994.6

52. 「朴在淵和中國小說資料叢書」 『中國古典小說硏究動態』 最終號, 1994.6

53. 「關於關羽的物語」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30卷 1995.3 ; 王保祥譯/黃仕忠校「關羽的物語(部分)」 ; 周兆新主編 『三國演義叢考』(北京大學出版社) 1995.7

54. 「關於『新選解學士全傳詩話』」 『中國古典小說硏究』 第1號 1995.6

55. 「硏究前後」 『中國古典小說硏究』 第1號 199 5.6

56. 「瘟神的物語―宋江的字緣何稱公明」 『宋代史硏究會報告集』 第5集 『宋代的規範和習俗』(汲古書院) 1995.10 ; 白冰譯 『瘟神的物語―宋江的字緣何稱公明』 寧夏敎育學院/銀川師專學報 1997年增刊, 1997

57. 書評「東京大學綜合圖書館漢籍目錄」 『東方』 第175號 1995.10

58. 「宋代社會和物語」 『東洋文化硏究所紀要』 第129冊 1996.2

59. 「斬首龍的物語」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31卷 1996.3

60. 「續硏究前後」 『中國古典小說硏究』 第2號 1996.7

61. 「1991-1995日本明淸小說硏究槪況」 『稗海新航―第三屆大連明淸小說國際會議論文集』(春風文藝出版社) 1996.7

62. 「劍神的物語―以關羽爲中心(上)」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32卷 第1號 1996.9

63. 「劍神的物語―以關羽爲中心(下)」 『琦玉大學紀要敎養學部』 第32卷 第2號 1997. 3

64. 「關羽和劉淵―關羽像的成立過程」 『東洋文化硏究所紀要』 第134冊 1997.3

65. 「『金甁梅』的構思―『金甁梅』與『封神演義』,『三國志演義』的關係」 『東方學會創立六十周年紀念東方學論集』(東方學會) 1997.3 ; 胡德友譯 「『金甁梅』的構思―『金甁梅』與『封神演義』,『三國志演義』的關係」 『明淸小說硏究』 1996年 第4期 1996.12

66. 「二續硏究前後」 『中國古典小說硏究』 第3號 1997.12

67. 「不登大雅文庫戱劇小說目(補編)」 『中國古典小說硏究』 第3號 1997.12

68. 「從漢的物語到唐的物語―圍繞『三國志平話』展開」 『神奈川大學中國語學科論文集/文學篇』 1998.3

69. 「三續硏究前後」 『中國古典小說硏究』 第4號 1998.12

70. 「『六十家小說』和宋元話本―以中里見氏的『中國小說物語論的硏究』爲契機」 『中國古典小說硏究』 第4號 1998.12

71. 「從玉皇廟到永福寺―續『金甁梅』的構造」 『東洋文化硏究所紀要』 第137冊 1999.3

72. 「關於バ―チヤル文庫的構思」 『東洋文化』 第79號 1999.3

(이상의 논저 목록은 『明淸小說硏究』 第53號에 실린 것을 轉載한 것임)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