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 ‘삼합회’,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는 어디로 가는가?

요즘에야 <적벽대전> 같은 블록버스터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오우삼(吳宇森)을 세상에 알린 영화는 뭐니 해도 <영웅본색>이었다. 1980년대 중반 홍콩 영화계는 반복되는 스타일의 무협과 쿵푸, 강시 코미디가 점령하고 있었다. <영웅본색>은 그런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꾸면서 새로운 활력을 몰고 왔다. 그리고 오우삼은 ‘홍콩 누아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인 ‘누아르’(noir)는 원래 1940~50년대 어두운 분위기의 할리우드 갱스터영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말이 홍콩으로 수입되면서 사람들은 홍콩식 ‘갱스터 영화’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영웅본색>은 주윤발과 장국영이라는 우리 시대의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 뿐만 아니라 선글라스와 버버리코트, 입에 걸친 시가는 일종의 집단적 페티시즘 증상까지 불러왔다. 영화는 ‘조직’의 일원인 형 송자호(적룡 분)와 동생 아걸(장국영 분), 그리고 친구 소마(주윤발 분) 사이의 의리와 사랑을 그린다. 음모에 걸려들어 감옥에 갔던 자호와 한쪽 다리를 다친 소마는 ‘조직’을 되찾기 위해 복수를 감행하고, 거기에 경찰인 동생 아걸까지 엮여 들어가며 세 남자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영웅본색> 이후 <첩혈쌍웅>, <첩혈가두>, <지존무상> 등과 같은 많은 홍콩 영화들이 누아르를 표방하면서 등장했다. 이런 영화들이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아무래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남자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를 멋진 장면으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우정과 의리가 만들어진 공간은 바로 ‘조직’이었다. 자호와 소마가 속해 있던 홍콩의 ‘조직’이 바로 유명한 삼합회(三合會)다.

삼합회는 이탈리아 마피아나 일본 야쿠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사실 삼합회의 역사는 꽤 오래 돼서 청 왕조 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은 만주족이 세운 왕조였기 때문에 한족의 저항이 늘 잠재돼 있었다. 한족은 이른바 ‘반청복명’(反淸復明)을 꿈꾸며 살았다. 심지어 중국의 근대를 열어젖힌 신해혁명을 두고 한족과 만주족의 갈등이 폭발한 사건으로 보는 입장마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신해혁명의 지도자였던 쑨중산(孫中山)과 여성 혁명가 치우진(秋瑾)이 모두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고도 한다.

‘반청복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장 조직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천지회’(天地會)였고, 삼합회는 광둥(廣東) 일대를 담당하는 그 하부조직 가운데 하나였다. 광둥을 흐르는 세 강물을 합했다는 의미로 ‘삼합’이 됐다는 설도 있고 천․지․인의 ‘삼합’이라는 설도 있다. 나중에 홍콩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 정부가 ‘Triad’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성격이 다소 강했던 삼합회가 ‘흑사회’(黑社會: 암흑가 범죄조직을 일컫는 중국어. ‘흑’을 뜻하는 영어 단어 ‘Black’의 머리글자를 따서 ‘B社會’라는 말도 자주 쓴다.)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주의 중국 이후 강력한 통치 권력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전통적으로 광둥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삼합회는 현재 대략 60여 개의 군소조직으로 재편됐는데,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인원은 수천에서 수만 명까지로 추산된다.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 당국도 삼합회를 소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결국 공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찰과 끈끈한 유대로 연결돼 있던 삼합회는 심지어 경찰을 돕는 파트너로까지 인식되기도 했다. 예컨대 유괴나 살인 등 강력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은 각 파벌의 우두머리를 불러 모아 이를 해결하기도 했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조직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삼합회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 홍콩의 영화산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홍콩 영화계에서 <영웅본색>을 비롯한 누아르가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고, 또 ‘흑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다수 제작될 수 있었던 까닭도 이들이 영화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 투자는 물론이고 감독 및 스타 배우들과의 유착, 상영 수입의 분배 등을 모두 관리하면서 한때 홍콩 영화계는 이들의 명암 아래 놓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대륙이 개방 정책을 취한 뒤에는 점차 그 활동 범위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민족적, 정치적 색채는 이미 사라지고, 이제는 ‘경제적’ 노선으로 선회한지 오래다. 자금 세탁이나 도박, 밀수 같은 전통적인 ‘산업’은 물론이고 불법 소프트웨어, DVD 등까지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산업’ 영역까지 닥치는 대로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

중국의 ‘조직’들은 전통적으로 강호의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지면 언제나 무사와 협사들이 홀연히 등장하여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 무사와 협사들이 더 힘을 쓰기 어려운 세상이 되자 ‘총사’(銃士)들이 등장했다. 현실의 논리로만 보면 분명 범법자들이지만, 그 내면을 관통하고 있는 논리는 결국 ‘협의’(俠義)의 정신이다. <영웅본색>의 자호와 소마, 아걸처럼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자기를 믿어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일들을 그들이 이어받았다. 그러나 사회주의마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자본을 숭배하기 시작한 세상에서 ‘의리’라는 가치 역시 더 이상 자본의 가치를 뛰어넘지는 못하게 됐다. 우리에게 <영웅본색>이 영원한 향수로 남을 것만 같은 느낌은 어쩌면 결코 틀릴 수 없는 예감일지도 모른다.

오우삼은…

우위썬吴宇森, 출처 movie.8864.com

정식으로 영화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독립적으로 영화의 길을 개척해 왔다. 19살 때 만든 실험영화를 시작으로 영화 인생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쇼브라더스를 시작으로 골든하베스트에서 꽤 이름을 날리면서 많은 영화를 찍었다. <영웅본색> 이후 연이은 성공은 그에게 할리우드 진출의 기회를 열어주었고, 1992년 <하드 타켓>으로 할리우드에서 첫 감독을 맡았다. 철저한 상업영화 감독일 뿐만 아니라 영화에 따라 찬사와 혹평의 낙차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떤 영화라도 늘 흰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영웅본색>을 비롯한 홍콩 누아르로 인해 진한 향수를 자극하는 감독으로 기억된다. 대표작 <충렬도>, <영웅본색>, <첩혈쌍웅>, <첩혈가두>, <종횡사해>, <브로큰 애로우>, <페이스오프>, <미션임파서블2>, <페이첵>, <적벽대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