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산終南山/왕유王維
太乙近天都 태을산은 높아 하늘에 가깝고
連山到海隅 이어진 산은 바닷가에 닿았네
白雲回望合 돌아보니 산은 흰 구름으로 덮였고
靑靄入看無 들어가니 푸른 이내는 보이지 않네
分野中峯變 하늘의 별자리는 중봉에서 나뉘고
陰晴眾壑殊 골짜기에 따라 날씨마저 다르네
欲投人處宿 인가를 찾아들어 묵어가려고
隔水問樵夫 물 건너편 나무꾼에게 물어보네
왕유는 종남산에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살면서 시서화를 잘하여 문학에서도 유명하지만 동기창이 남종화의 원류를 왕유로 잡았기 때문에 회화사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일례로 전에 누가 망천 20경이라 해서 내가 잘 모른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매우 의아해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보니 그 시는 맹성요(孟城坳) 이하의 연작시 20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회화사에서는 확실히 개념을 명확히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가끔 책을 보다 보면 어떤 충신을 말하면서 왕유하고는 다르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왕유가 안록산에게 벼슬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이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서안에 가서 왕유의 망천을 찾아갔는데 택시 기사가 아는 것 같더니 결국 두어 시간 헤매다가 서안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종남산은 서안 남쪽에 있는 산인데 가서 보니 이게 산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백두 대간 같은 큰 산맥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서울에서 택시 타고 태백산맥을 가리키면서 봉정암 가자는 것과 같은 셈이다. 백담사도 더러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텐데 거기서 한 참 더 가는 숨어 있는 봉정암을 누가 알겠는가. 혹 그곳 고적을 잘 아는 사람과 같이 가면 그 흔적을 찾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 때 모습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얼핏 들었다.
이 시에서 왕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자기가 은거하는 종남산은 높기도 높고 크기도 크다는 말이다. 태을산은 종남산의 주봉으로 별칭이다. 이 산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중간에 구름과 이내를 말한 것은 자신의 등산 체험을 언급한 것이다. 산을 향해 가다가 고개를 돌아보면 온통 흰 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산기운이 자욱한 곳에 막상 가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깊은 산 특유의 자연 현상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두 구는 독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인용하거나 화제로 쓰는 경우가 많다.
3구의 白雲回望合은 ‘백운은 고개를 돌려 보면 합쳐진 것이 바라보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짧은 시에 이렇게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시라 해도 우선 논리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구인 靑靄入看無도 똑 같은 구조이다. 이런 게 흔히 대구하고 하는데 여기서 白雲과 青靄는 주어라기보다는 일종의 제시어이다. 그래서 현토를 하면 ‘白雲이라 回望合이요 靑靄라 入看無라’가 된다. 즉 백운과 청애를 제시한 다음 나머지 3글자로 그 상황을 서술하는 방식인데 이런 구문이 한시에서는 매우 많다. 전에 우연히 인터넷을 보니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인용해 놓고 이와 유사한 구문을 빨갛게 표시한 다음 한문의 기본도 모른다며 마구 화를 내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한문이 어떻게 뒤에 나오는 것을 먼저 해석하느냐.’ ‘ 아직 실력도 없는 놈이 허명을 바라고 이런 글을 썼느냐!’ 며 마구 욕을 하고 있었다.
기초 한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주어 다음에 술어가 나오고 술어 뒤에 목적어가 나오는 것으로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한문에는 술어 뒤에 주어가 나오거나 술어 앞에 목적어가 나오는 것이 흔하다. 그리고 형용사나 동사를 뒤에서 수식하는 것도 많다. 특히 한시에서는 그런 구문이 많기 때문에 작은 한시 한편이라도 우선 구문적으로 잘 파악하자면 오랜 공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저나 종남산의 망천은 지금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365일 한시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