먀오좡苗壯 교수와의 대담

조관희(趙寬熙 상명대 중문과 교수) 진행
송지현(宋之賢 北京大 東方學部 博士生: 현재 안양대 교수) 진행
김효민(金曉民 北京大 中文系 博士生: 현재 고려대 교수) 정리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먀오좡 교수와 송지현 교수(왼쪽), 사진 ⓒ 조관희, 2001

송지현 : 다롄의 중국문학 연구의 장점과 특징, 그리고 다롄 도서관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오좡 : 전체적으로 본다면 예로부터 지역적으로 변방에 속했던 다롄은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의 도시에 비해 처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롄의 중국 고대소설 연구는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두 번째 질문인 다롄 도서관 문제와 연결됩니다. 다롄 도서관의 장서 중 두드러진 특징은 소설 방면에 있어서 많은 고본들이 소장돼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후수호전(後水滸傳)』과 같은 명말청초의 소설들은 다롄에만 있습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 사이에 랴오닝(遼寧)의 춘풍문예출판사(春風文藝出版社)는 『명말청초 소설 선간(明末淸初小說選刊)』을 출판한 바 있는데, 이는 주로 다롄 도서관의 판본들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먀오좡 교수, 사진 ⓒ 조관희, 2001

중국의 명청소설 연구는 20세기 내내 부단히 발전해 오긴 했지만, 사실상 큰 발전은 역시 마지막 20년의 시간 동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중국의 소설사를 언급할 때 주로 루쉰의 『중국소설사략』만을 언급하였고, 소설 연구도 주로 몇몇 명작들에 국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병매』 같은 작품은 원서를 접하는 것이 어려워 연구에 한계가 있었고, 『금병매』와 『홍루몽』 사이에 출현한 소설들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그래서 소설사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결여되어 있었지요. 이런 점에 있어서 랴오닝성과 다롄의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방면의 연구에 있어서 8,90년대에 랴오닝성과 다롄의 연구는 춘풍문예출판사의 출판과 함께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전에는 중국의 대학 교재나 문학사에 있어서 이 시기(명말청초) 작품에 대한 평가가 낮았으나, 랴오닝과 다롄의 연구가 이 방면에 있어서 새로운 돌파와 심화로 그러한 관점을 쇄신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롄도서관의 장서 중에는 중국의 희귀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금오신화』와 같은 책도 소장돼 있습니다. 한국 고려대학교의 최용철 교수는 이 책을 보기 위해 대련에 3번이나 왔었지요. 저는 이전에는 한국 한문소설에 대해 별로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소설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돤청스(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방이설화(흥부놀부설화)가 한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96년 다롄에서 개최한 명청소설 국제학회에 최용철, 오순방, 함은선 등 8,9명의 한국 학자가 참석해 그들을 통해 한국의 한문소설의 상황에 대해 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려대학교 장효현 교수도 참석했는데 그분은 중국어는 전혀 못하지만 역시 한문소설을 연구하는 분이라 그때 「한국한문소설간사」라는 논문을 제출했었습니다. 저는 이런 접촉들을 통해 한중 양국의 문화 교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국 소설이 한국 소설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한국 소설도 중국 소설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양국의 소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2001년) 10월에 한국의 한문소설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련의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한국 한문소설은 중국 소설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제대로 연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신장(新疆)에서 열린 ‘신세기 고전문학 연구 방향 학술 대회(新世紀古典文學硏究走向 硏討會)’에서도 이런 문제를 언급했었습니다. 고대소설 연구, 고대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의 상호 영향에 대한 연구는 중국 고대 문학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가 섭렵한 자료는 많지 않고 게다가 한글소설은 아직 한 글자도 읽지 못합니다. 아무튼 제가 보기에 한국의 한문소설과 국문소설 상호간의 관련성 문제도 좋은 연구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

[참고] 마오좡(苗壯, 1941~ ) 교수 소전(小傳)

명청소설 연구가. 산둥성(山東省) 황현(黃縣)(지금의 龍口市) 사람으로 1960년에 랴오닝사범대학(遼寧師範大學) 중문과(中文系)에 입학하였고 1964년 졸업 후에는 둥베이사범대학(東北師範大學) 중문과(中文系) 연구생으로 입학하여 중국문학사(지도교수: 楊公驥)를 전공하였다.

1968년 5월에는 랴오닝사대(遼寧師大) 중문과로 돌아와 근무하였으며 1969년 10월부터 랴오닝성 중소학시용교재편사조(遼寧省中小學試用敎材編寫組)로 배속되어 『학생자전(學生字典)』과 중소학(中小學) 교재의 편찬에 참여한 바 있다. 1972년 4월에는 다시 랴오닝사대(遼寧師大)로 돌아왔는데 1987년 9월에 부교수, 1993년 3월에 교수로 승급하였다. 지금은 랴오닝사대(遼寧師大) 고적정리연구실(古籍整理硏究室) 주임, 중문과(中文系) 고대문학교연실(古代文學敎硏室) 주임, 다롄명청소설연구중심(大連明淸小說硏究中心) 상무비서장, 다롄시사회과학계련합회(大連市社會科學界聯合會)와 화시아문화촉진회(華夏文化促進會) 이사, 중국금병매학회(中國金甁梅學會) 이사 등직을 겸임하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중국고대소설인물사전(中國古代小說人物辭典)』(주편, 齊魯書社, 1991), 『재자가인소설사화(才子佳人小說史話)』(遼寧敎育出版社, 1992), 『중국력대소설사전(中國歷代小說辭典)』(淸代部分, 雲南人民出版社, 1993), 『중국필기소설사(中國筆記小說史)』(浙江古籍出版社, 근간) 등이 있고 『정정인(定情人)』(春風文藝出版社, 1983), 『고장절진(鼓掌絶塵)』(春風文藝出版社, 1985), 『생초전(生綃剪)』(春風文藝出版社, 1987), 『료해단충록(遼海丹忠錄)』(遼沈書社, 1989), 『별본이각박안경기(別本二刻拍案驚奇)』(廣西人民出版社, 1992), 『형세언型世言』(齊魯書社, 1995) 등을 교점(校點) · 정리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談『水滸』的“替天行道」(『遼寧師範學報』 1979년 제4기), 「試論『儒林外史』的諷刺藝術」(『遼寧師院學報』 1980년 제6기), 「『定情人』試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