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호는 팔각형 모양이며, 굽을 파내어 네 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높은 목에는 구름 모양의 어깨선雲肩線과 차호 입구 선口線이 있다. 팔각형의 함몰 뚜껑嵌蓋으로, 방형의 뚜껑 꼭지 위 공기 구멍이 있다. 뚜껑 꼭대기는 평평하며 팔각의 뚜껑 면과 잇닿아 있고. 네모난 물대는 직각으로 꺾여 있으며, 사각의 손잡이는 차호의 몸체와 사개 맞춤한 듯 맞물려 있다. 차호 바닥의 명문은 유약으로 덮여 있어 식별할 수 없다. 자사를 태토로 하여 정교하게 제작하였는데 곡선이 풍만하고 기세가 웅장하며, 입과 뚜껑이 어느 방향으로 닫아도 완벽하게 맞물린다. 이 기물의 표면에는 코발트 블루색의 점이 흩뿌려진 노균유爐鈞釉를 시유하였다.
청나라 당영唐英의 《도성기사陶成纪事》에는 ‘청나라 순치, 강희 연간에는 노균유로 만든 기물이 보이지 않았는데, 옹정, 건륭 연간에 이르러 동요東窯[1]와 이싱에 노균유를 바른 기물이 있었다’고 하였다. 목탄으로 둘러싸고 소성한 균유均釉를 ‘노균爐鈞’이라 하며, 저온 납유鉛釉에 속하는데 약 800도에서 구워진다. 먼저 자사호를 소성하여 완성품을 만든 후 유약을 바르는데, 색이 풍부한 유약을 뿌리고, 납백유鉛白釉와 구리, 코발트로 색을 내어 꽃무늬가 흘러내리듯 변화하는 무늬를 만들어 낸다. 이는 이중 시유로, 수려하고 단아하다. 노균유의 주요 원료는 납 분말과 유리이며, 유약을 배합해서 제조할 때 초석과 비소를 용제로 사용하므로 독성이 있어 장식용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자사 노균유는 이싱의 균요와 강서 경덕진景德镇의 채색 유약彩釉이 결합된 산물로, 이러한 기법을 가르쳐준 장인은 강서성에서 온 도예가이다. No.71
[1] 동요董窯를 가리킨다. 카이펑開封 동쪽에 있던 민요民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