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라는 것을 반구班固는 다음과 같이 여겼다. “패관稗官에서 나왔으며”, “마을에서 어줍잖은 지식을 가진 이가 한 말이라도 가능한 수집 보존하여 잊히지 않도록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쩌다 한 마디라도 취할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꼴 베는 사람이나 나무꾼 또는 정신 나간 이의 의견일 따름이다.[1]” 그런즉 패관이라는 직책의 의미는 옛날에 “시를 채집하던 관리가 왕이 풍속을 살피고 그 득실을 알고자 했던 것”과 거의 같다.
다만 반구는 제자諸子를 조목별로 모아 10가家로 나누어 배열하고, 다시 “볼 만한 것은 9가이다”라고 하여 소설은 그 속에 넣지 않았다. [그가] 수록한 소설 15가는 지금은 산일散逸되어 버렸고, 오직 『대대례大戴禮』에 [『청사자靑史子』의 지은이인] 청사씨靑史氏의 기록이 인용되어 있고, 『장자莊子』에서 [『송자宋子』의 지은이인] 쑹졘宋銒의 말을 들고 있는데, 고립된 문장과 단편적인 문구文句라 그 의미를 미루어 볼 수 없다. 옛날로부터 이미 멀어지고 나서는 그 후예라 할 것들이 더욱 번성하였으되, 논자는 여전히 [반구가] 예전에 한 말을 묵수하였으니, 이는 [비유하자면 나무의] 싹을 가지고 줄기와 잎을 헤아리는 것이리라! 나는 어려서부터 옛날이야기를 펼쳐보기 좋아하였는데, 간혹 거짓되고 빠진 부분을 보게 되면 유서類書와 대조하여 고증하였고, 우연히 일문逸文을 만나면 그 역시 문득 베껴두었다. 비록 자질구레하고 많은 부분 두서가 없지만, 대략적인 것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저 쇄어瑣語와 지엽적인 이야기는 사관史官의 말학末學이고, 귀신과 정령은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의] 술수와 그 물결이며, 진인眞人과 복지福地는 신선가神仙家의 중등中等이고, 저승세계의 징험徵驗은 불가佛家의 하품이다. 인간세상의 작은 이야기들은 “너무 멀리 나아가면 거기에 빠져들어 헤어나오기 어렵게 될까 두렵다致遠恐泥.” 나중에 위대한 작품이 나오는 것도 [결국은] 이와 같은 [하찮은 것들이] 그 시초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마을 골목에서 채록한 것은 나라 백성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의식적으로 창작한 것은 생각 있는 선비들의 구상이 응결된 것임에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퍼져나가다 보면 스스로 그런 품격이 생겨난다. 그것은 문단에서 아리따운 미인의 얼굴과 같은 바가 있어 문명을 미쁘게 하고 어둡고 외로운 것을 돋보일 수 있으니, 대개 견문을 넓히는 도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논자는 여전히 [반구가] 예전에 한 말을 묵수하였다. 이러한 옛 전적典籍들이 갈수록 쇠퇴하는 것이 애석하고, 또 이후에 한가한 시간이 적어질 것이 염려되어, 이에 다시 비교하며 집록하는 한편 옛사람의 집본集本을 교정하여 몇 종을 합쳐 얻으니 『고소설구침』이라 이름 했다. 고서에 혼을 되돌려 줌으로써 [글의 내용이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풀이함을 구하였다. 아울러 대도大道를 말하는 자들에게 패관이라는 직책의 의미가 옛날에 “시를 채집하던 관리가 왕이 풍속을 살피고 그 득실을 알고자 했던 것”과 거의 같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겠다.
小說者, 班固以為“出於稗官”, “閭里小知者之所及,亦使綴而不忘,如或一言可采, 此亦芻蕘狂夫之議”是則稗官職志,將同古“采詩之官, 王者所以觀風俗知得失”矣. 顧其條最諸子, 判列十家, 復以爲“可觀者九”, 而小說不與; 所錄十五 家, 今又散失, 惟『大戴禮』引有靑史氏之記, 『莊子』擧宋銒之言, 孤文斷句, 更不能推見其旨. 去古旣遠, 流裔彌繁, 然論者尙墨守故言, 此其持萌芽以度柯葉乎! 余少喜披覽古說, 或見僞敓, 則取證類書, 偶會逸文, 輒亦寫出, 雖叢殘多失次第, 而涯略故在. 大共瑣語支言, 史官末學; 神鬼精物, 數術波流; 眞人福地, 神仙之中駟; 幽驗冥徵, 釋氏之下乘, 人間小書, 致遠恐泥, 而洪筆晚起, 此其權輿, 况乃錄自里巷, 為國人所白心; 出於造作, 則思士之結想, 心行曼衍, 自生此品, 其在文林, 有如舜華, 足以麗爾文明, 點綴幽獨, 蓋不第爲廣視聽之具而止, 然論者尙墨守故言, 惜此舊籍彌益零落, 又慮後此閒暇者, 爰更比輯, 並校定昔人集本, 合得如干種, 名曰『古小說鉤沈』. 歸魂故書, 則以自求說釋; 而為談大道者言, 乃曰:稗官職志, 將同古“采詩之官, 王者所以觀風俗知得失”矣.
[1] 이하의 내용은 루쉰 저(조관희 역), 『중국소설사』(소명출판, 2004년)의 해당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 대목의 번역은 특히 주의를 요한다. 전통적으로 이 대목은 다음의 두 가지로 번역되어 왔다. 그 하나는 “취할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의견일 따름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취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꼴 베는 사람이나 나무꾼 또는 미친 이의 의견이기 때문이다”로 번역하는 것이다. 양자의 차이는 소설의 가치를 부정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긍정하느냐 하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등연은 『시경․대아․판(詩經․大雅․板)』의 “…옛사람 말씀에 나무꾼에게 일을 물으라 하였네(…先民有言, 詢于芻蕘)”라고 한 대목과, 『사기․회음후전(史記․淮陰侯傳)』에서의 “광무군이 말했다. 미치광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현명한 사람은 가려서 듣는다(廣武君曰: 狂夫之言, 賢人擇焉.)”라는 대목으로 볼 때, “…의견이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등연, 「중국소설의 개념과 기원」『중국소설사의 이해』(서울; 학고방, 1994) 5쪽 참조.)
문성재는 “항간에서 조금 안다고 행세하는 자가 언급한 바를 기록으로 남겨 잊지 않도록 한 것뿐이니 어쩌다 한마디 취할 만한 말이 있다 하더라도 별 수 없는 꼴 베는 치 얼빠진 놈들의 객담일 뿐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전체적인 맥락을 따져 볼 때, 반고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소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의견일 따름이다”라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