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일에立春日/송宋 양만리楊萬里
何處新春好 새 봄 좋은 풍경은 어디일까
深山處士家 깊은 산골 처사의 집이구나
風光先著柳 풍광은 버들에 먼저 찾아왔고
日色款催花 햇볕은 은근히 꽃을 재촉하네
오늘이 입춘이다. 이 글을 아침에 썼으면 더 좋겠지만 오늘이 마침 섣달그믐이라 한 밤이 되어서야 조용한 시간이 생긴다.
예전에 입춘첩에 관심이 있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을 여행할 때도 가게나 대문의 춘첩을 눈여겨보고 사진도 찍곤 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나라에는 여러 곳을 다녀도 입춘첩의 글귀가 입춘대길과 건양다경,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 등 비교적 단조로웠다. 진주 남사에는 재물과 관련된 입춘첩이 많았고 안동 하회는 충효와 관련된 입춘첩이 많았던 것 같다. 가끔 우연히 어떤 고가에서 다양한 춘첩을 만나면 매우 반가웠다. 이는 우리나라 사찰의 주련도 마찬가지여서 좀 관심 가지고 보면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보니 곡부의 부자동(夫子洞)에 갔더니 시골 마을인데도 매우 다양한 춘첩이 있었고, 하남 맹진(孟津)의 왕탁 고거(王鐸故居)가 있는 마을에 가니 상당히 문향이 있는 춘첩이 많았다.최근 대만 사람들이 주축이 된 서법이나 만년필 글씨 모임에 가입해서 그들이 쓰는 춘첩을 보니 상당히 좋은 것들이 많아 역시 내가 적극적으로 못 찾아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일반 가정집이나 가게에 붙이는 춘첩은 여러 좋은 글자를 조합해 만든 글자와 부귀복락을 희구하는 내용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 시의 첫 두 구는 공교롭게도 하나의 춘첩으로 써도 하등 손색이 없는 좋은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는 춘첩 준에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화기자생군자댁(和氣自生君子宅)-봄빛은 착한 사람의 집에 먼저 찾아오고 화락한 기운은 군자의 댁에 절로 생긴다.-”이 있는데 이와 거의 유사한 말이다.
깊은 산골 외딴 처사의 양지 바른 집에 봄이 찾아 왔다. 그 봄 풍경은 가장 먼저 버드나무의 파란 새싹에서부터 왔다. 그리고 꽃도 머지않아 필 것 같다.
著은 발음이 ‘착’과 ‘저’ 2개가 있는데 이 경우 ‘봄빛이 버들에 드러났다.’고 해도 말이 될 듯하고 ‘봄빛이 버들에 붙었다.’고 해도 말이 될 듯하다. 그런데 역시 착(着)으로 쓴 곳을 보면 ‘착’으로 보는 게 옳다. 여기서는 ‘봄이 버들에 왔다.’는 의미로 ‘착’을 쓴 것이다. 비근한 예로 선착순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이 3번째 구절이 좋아 후대에 많이 시작에 애용되지만 마지막 구절은 더 좋다. 꽃이 핀다고 진술하지 않고 햇볕이 꽃을 빨리 피우려고 은근히, 혹은 정성껏 노력한다는 말을 통해 꽃이 피기 직전의 풍광과 함께 햇볕이 따스해진 느낌까지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양만리(楊萬里, 1127~1206)는 북송이 망하고 남송이 개국하던 해에 태어나 얼핏 호처럼 보이는 독특한 이름처럼 80세까지 오래 살고 남아 있는 시도 대략 4,000수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작품은 육유 이상으로 많이 쓴 다작의 시인이다. 이 사람의 시풍은 내가 읽은 것이 많지 않아 말할 만한 능력이 안 되지만 대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이 시처럼 아주 참신하고 묘한 것이 많다고 한다.
365일 한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