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民家紀行 – 19 윈난성 사시 객잔의 꿈

윈난성 사시 객잔의 꿈 – 적게 벌고 적게 쓰며 느리게 살아가는 그녀

조용한 시골에 예쁜 카페나 객잔을 열고는 객지를 찾는 몇몇 손님을 맞아 그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마음씨 좋은 동네 아낙네와 정겨운 인사를 나누며 사는 것,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보는 ‘그림’이다. 급할 것도 없고, 싸울 것도 없고,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느리게 살아가는 생활,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숨가쁜 대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한 편의 로망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꿈을 꾸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사는 것이 보통이다. 대부분은 현실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막상 실행한다고 해도 예쁜 카페나 객잔의 현실이 종종 기대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중국 곳곳을 다니다가 정말 예쁜 객잔에서 평화롭게 사는 매력적인 여인네를 만난 적이 있다. 객잔의 일상과 주인장이 한데 잘 어울려 한 편의 그림이란 느낌을 받는다. 한 번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4년 동안 매년 한두 번씩 찾아가면서 든 생각이다.

“객잔을 열고 윈난에 기대어 살다開家客棧 賴在雲南”

그녀와 그녀의 객잔을 보도한 중국의 한 지방지 기사의 제목이다. 중국 윈난성,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 그림처럼 걸려 있는 그녀의 예쁜 집, 작은 객잔과 그곳에 담긴 그녀의 일상을 보려고 한다. 외양은 전통의 민가지만 보는 이에게는 로망의 민가다.

구름의 남쪽이라는 윈난은 이름에서부터 묘한 매력이 있다. 위도가 낮아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상춘常春이고, 지형으로는 해발 100∼6740m를 넘나드는 터라 다양한 자연경관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시골로 들어가면 그들의 느리게 살아가는 품새가 도시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소수민족의 향기가 마을마다 풍겨 나와 여행객을 취하게 하는 곳이다. 마음속의 이상향이나 한 편의 그림을 꿈꿀 때, 중국에서라면 윈난에서 찾을 만하다.

다리大理에서 리장丽江과 샹그리라香格里拉로 가는 길에 젠촨剑川을 지나가는데, 젠촨에서 30km 정도 서남쪽으로 빠지면 사시沙溪라는 옛 마을이 있다. 중국 지도에는 사시고진沙溪古镇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사시는 옛날에는 차마고도가 지나가던 길목이라 상업으로 번성했지만 신작로가 비켜간 탓에 쇠락했다. 그러나 쇠락한 탓에 다행스럽게도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되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옛날 정기시장이 열리던 사방가四方街 광장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마방들이 쉬어가던 마점馬店 자리에 새로운 객잔이 두어 개 들어서 있다. 주변의 집들은 흙벽이나 문짝이 낡았어도 조금씩 수리해서 옛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마을 사람 누구 하나 뛰지도 않을 것 같다. 낯선 이들에게도 맑게 웃어주는 곳이다. 골목을 벗어나면 바로 논밭이고, 논밭 위로는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다. 파란 하늘 아래로는 바이족白族 마을의 흰색 담벼락이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이 너무나 정겹다.

이 사시의 사방가 옆에 ‘58호 소원小院’이라는 객잔이 하나 있다(위 좌측 사진). 문 앞의 우체통과 작은 간판, 고풍스런 격자 창살이 눈에 띈다. 벽면의 옅은 갈색 칠은 조금은 낡았어도 세련된 맛이 돈다. 문 앞에는 대충 만든 듯한 돌 탁자와 낮은 의자가 행인을 말없이 부르고, 문으로 들어서면 프런트를 겸하는 작고 예쁘장한 카페가 손님을 맞는다.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면 둥근 자갈이 깔린 작은 흙 마당이 있고, 마당 구석구석 작은 꽃들이 피어 있다. 볼품없이 휘어진 나뭇가지를 난간으로 이용한 계단도 멋지다.

객실은 1, 2층에 네 개씩이 전부다. 2층의 한쪽 넓은 테라스에는 하늘을 향해 환하게 열린 의자가 한가롭다. 반대쪽 테라스에 서면 옆집 아이가 마당에서 놀다가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객실에 들어서면 천장을 가리면서 크게 늘어뜨린 넓은 천이 독특하다. 침대를 가린 장막도, 창틀을 장식한 소품들도 은근히 눈길을 끌어당긴다. 주인장이 손수 작은 그림을 그려 넣은 자갈돌 장식도 마치 미소 짓는 것 같다(아래 사진).

리장이나 다리의 고성에서 보는 객잔들도 매력적이다. 그곳의 객잔들이 여행객을 흥분과 낭만에 들뜨게 하는 페로몬이라면, 사시의 객잔은 먼 길 끝에 당도한 친구의 집처럼 편안한 산사차山査茶라고나 할까.

주인장은 여자다. 프런트의 테이블에 앉아 손님이 오면 가벼운 웃음으로 맞는다. 손님이 없을 땐 책 속에 빠져 있거나 손으로 뭔가를 만들기도 한다. 긴 머리에 윤기가 나고 피부도 고운 탓에 그녀가 이 지방 태생의 시골 아낙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말을 걸어보면 약간은 낮고 느린 톤으로 답을 한다. 중국 어디서나 들려오던 시끄러운 중국어가 아니라서 오히려 솔깃하게 된다.

이런 객잔에 이런 주인장이 앉아 있으니 남정네가 묵게 되면 여주인만 쳐다볼지도 모른다. 혹시 여인네가 찾아가면 자신도 언젠가 이렇게 예쁜 객잔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소녀 같은 꿈에 젖어들지도 모른다. 대도시에 포박된 채 전원이나 귀촌을 꿈꾸면서 그리는 그림 그대로다.

주인장 이름은 저우샤오펀周曉芬, 새벽曉의 향기芬다.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대도시의 삶을 스스로 털어버리고, 그녀가 살던 곳으로부터 아주 먼 이곳 시골로 찾아온 여인네다. 타이완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 유능한 영업맨으로 정말 바쁘게 일했고 수입도 좋았었단다.

결혼을 하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어찌어찌 하다가 아이는 없이 결혼을 파하는 등 번잡한 일들이 연속되다가 텔레비전에서 윈난의 샹그리라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눈에는 샹그리라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고, 곧 트렁크 하나를 챙겨 길을 나섰다. 타이베이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다시 쿤밍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쿤밍에서 버스를 타고 다리大理를 거쳐 열댓 시간이나 걸려 샹그리라까지 갔다. 참으로 먼 길이었다. 쿤밍에서 샹그리라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의 풍경에 취해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단다. 이것이 2007년 여름의 일이다.

샹그리라에 도착해서 노마점老馬店이라는 객잔에 머물렀다. 거기에서 그때 까지의 자신의 인생이 너무 번잡스럽고 복잡하고 급하기만 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대로 멈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 샤오펀이 머물던 객잔의 주인은 샹그리라뿐 아니라 사시에도 같은 이름의 객잔을 준비하고 있었다. 객잔 주인은 멀리 타이완에서 찾아온 여인네를 사시에 데려갔고, 샤오펀은 샹그리라와는 또 다른 조용한 시골 마을에 매료당한 것이다. 샹그리라는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이었지만 사시는 배낭여행객들이 간간이 찾아올 뿐이었다. 도시에서 꽤 멀고, 사람들이 순박하고, 마을 전체가 조용하다는 것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타이베이로 돌아갔던 샤오펀은 그해 9월 다시 사시를 찾아와 15일간 머무르면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는 낡은 집 하나를 찾아 계약했다. 두 달 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뼈대만 남기고 다 헐어낸 다음 다시 지은 셈이다. 샤오펀은 인테리어나 건축에 경험은 없었지만 6개월에 걸쳐 객잔으로 개조했다. 현지 공사업체에게 맡기기는 했지만 개조공사 내내 함께했다. 허물어진 옆집에서 창틀 몇 개를 공짜로 주워다 쓰기도 했다. 화장실 안내판이나 객실 번호판과 같은 소품 하나하나 모두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 야산에서 죽은 나무를 잘라 와 낮은 의자도 만들었다.

윈난을 처음 찾았던 그다음 해인 2008년 5월, 그녀는 객잔 영업을 시작했다. 윈난 시골 마을에 타이완의 미녀가 정착한 것 자체가 특이한 경우라서 지역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과 타이완의 여행객들도 소문을 듣고 오거나, 아니면 사시를 찾아왔다가 객잔의 자태에 이끌려 들어오기도 했다.

필자는 2009년 가을 사시를 처음 찾아갔다가 객잔에 시선이 끌려 투숙하게 되었고, 매년 윈난 답사여행 길에 샤오펀의 객잔에 들르곤 했다. 사시의 그녀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겼더니,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인 여행객들도 꽤 찾아왔다.

그녀의 객잔을 네 번 방문하면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 그녀의 생활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생활이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행복할까.

노트북 하나, 작은 개 두 마리, 침실 한구석에 놓인 세 개의 트렁크가 전부인 그녀의 삶. 그녀는 자신이 꿈꾸던 느리게 살아가는 일상을 사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해가 창문을 두드리면 일어나고,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나 손님들을 조용히 웃으면서 맞이한다. 책과 음악에 빠지기도 하고, 가끔 작은 개 두 마리와 함께 동네 아낙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근처의 산으로 등산을 가서 하루 이틀 묵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이웃의 아낙네나 사시로 흘러들어 온 또 다른 외지인들이 간간이 들러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여행객이 보는 그녀와 그녀의 일상은 다를 수 있다. 지난겨울 손에 동상이 걸린 게 그런 것이다. 샤오펀의 생각으로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으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 객잔은 일상의 생활비를 버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손님을 받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는데, 스스로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은 어디서 나 마찬가지라고 알려준다.

사시에 갔다가 그녀를 보고는 그녀를 동경하게 된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전해 들은 바 있다. 여자는 예쁜 객잔을 꿈꾸고 남자는 그 여인네를 꿈꾸는 것 같은데, 아마도 그녀의 집에 담긴 그녀의 삶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게 아닐까.

그녀의 집 ‘58호 소원’이란 객잔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매력이 깔려 있다. 대도시 생활에서 반면교사로 체득한 여유로움이 배어 있고, 객실장사를 하지만 장사티를 내지 않는 절제가 받쳐져 있다. 낮은 톤의 짧은 말로 사람을 편하게 하거나, 가끔 얼굴이 발개지면서 웃는 모습도 도시 사람을 진정시키는 듯하다. 투숙객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 같지만 그런 속에서 그녀 스스로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은 건축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향기와 손때가 묻어야 살아 있는 집이 되는 것 같다. 윈난 저 멀리, 그것도 먼 시골 마을에서 자족의 향기가 조용히 피어나는 객잔을 한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상처가 쌓인 한국인의 마음은 치유가 필요하다. 이런 객잔에 며칠 묵으면서 아침에는 작은 광장의 햇살을 느껴보고, 낮이면 마을 바깥까지 두어 시간 산보를 해볼 만하다. 저녁에는 몇몇의 배낭여행객들이 모인 카페에서 맥주 한잔으로 덤덤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밤이 깊어지면 밤하늘에 별이 참 많다는 걸 확인하면서 잠들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이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필자는 주변 사람들이 중국 여행에 대해 물으면 윈난을 제일 먼저 가되, 사시를 꼭 찾아보라고 권하곤 한다. 사시를 가자면 다리나 리장에서 젠촨을 가야 한다. 젠촨 버스터미널에서 사시를 오가는 작은 버스가 있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사시 버스종점에 내려서 사방가로 가는 길에 이 객잔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샤오펀이나 샤오위안을 물으면 누구나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그곳에 가서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숨 쉬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