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일언一字一言22-처處

곳, 때, 장소, 거주, 처리 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글자인 處(곳 처)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가 이런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 글자의 기본적인 뜻은, 곳, 장소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멈추다, 움직이지 않는다, 정지하다 등 상대 부정의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뜻은 원래의 그것에서 확장된 의미라는 것이다. 글자의 구성요소와 결합 방식을 살펴보자.

處는 虎(범 호), 夊(천천히 걸을 쇠), 几(안석 궤)의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는 글자인데, 갑골문(甲骨文), 진시황 시대에 만들어진 소전(小篆) 등에 보이는 초기의 모양은 処(곳 처)로 되어 있다. 処에 虎가 더해져 있는 모양은 서주(西周) 시대의 금문(金文)과 한나라 때에 소전의 자획을 좀 더 간략하게 하여 만든 예서(隸書) 등에서 보이는데, 그 뒤로 이것이 굳어져서 쓰이다가 현재의 중국이 간체자를 사용하면서 다시 処로 되었다. 処에 虎가 더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한 유래를 알기는 어려우나 사람이 호랑이 머리, 혹은 그런 모양을 한 가죽 모자를 쓰고 안석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양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는 용맹함, 지혜로움, 민첩함 등을 갖추고 있는 영험한 동물로 인식되었는 데다 머리 부분에 王자 비슷한 무늬가 있어서 오래전부터 우두머리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금문이 사용되던 西周 시대에서부터 한나라에 이르는 때는 군왕 통치의 체계를 갖추어 가던 시기였는데, 処에 虎가 더해진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虎는 상형자로 호랑이 몸과 그 몸에 나 있는 무늬를 본뜬 것, 혹은 머리 모양을 본뜬 것이다. 갑골문의 글자 모양은 호랑이 전체 모양이 아니라 머리 부분을 그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여기에서는 호랑이의 머리 모양만을 그려놓고 있어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갑골문에서 보이는 虎는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머리의 모양을 그린 것으로 날카롭게 나와 있는 송곳니를 부각하여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용맹함과 날카로운 공격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바로 송곳니였으니 이렇게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지나면서 점자 변화되어 호랑이 머리에 그려져 있는 무늬를 중심으로 글자가 구성되었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다고 보면 된다.

글자의 아랫부분을 이루는 処는 사람의 발 모양을 본떠서 만든 止(그칠 지)를 거꾸로 해서 정강이, 혹은 신발을 끌면서 천천히 걷는다는 뜻을 나타내도록 한 夊(천천히 걸을 쇠)와 사람이 기대거나 앉을 수 있도록 만든 탁자로 기대거나 걸터앉는다는 뜻을 几가 합쳐진 글자이다. 그래서 処는 사람이 탁자 같은 것에 앉아서 정강이를 아래로 하고 있다는 뜻을 가져서 멈추다, 중지, 휴식, 잠깐 머물다 등의 의미를 기본으로 하였고, 점차 확대되어 일정한 곳에 머무르다, 거주하다, 곳, 살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虎가 더해지면서 處로 되었는데, 글자의 기본적인 뜻은 호랑이 머리 모양의 관을 쓴 사람이 탁자에 걸터앉아 있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거처, 장소, 공간 등으로 많이 쓰지만, 멈추다, 움직이지 않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많았고, 현재에도 그 용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 표현들이 많다. 처서(處暑-더위가 멈춘다), 처녀(處女-혼인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는 여자,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 처사(處士-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 벼슬하지 않은 사람) 등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