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3 한무제漢武帝 6

한무제漢武帝

14. 장탕(張湯)이 오피(伍被)를 처형한 것은 잔혹한 처사가 아니었다

장탕(張湯)은 옥사(獄事)를 담당하며 혹리(酷吏)의 으뜸으로 평가되었지만, 그가 오피(伍被)를 처형하라고 판결한 것은 잔혹한 처사가 아니라 법에 따른 것이었다. 오피는 나라를 뒤집어 위험에 빠뜨린 간사한 자로서 양다리를 걸치고 재앙을 거래했다. 그를 처형하지 않으면 또 장차 한나라 조정에서 속임수로 사리사욕을 챙길 테니, 주보언과 강충(江充)이 행한 간사한 행위보다 더한 짓을 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에 유안에게 간언한 것은 정말 유안이 반란을 꾀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한나라의 덕을 칭송한 것은 훗날 자신의 면죄부를 얻기 위한 계책이었을 따름이다. 얼마 후에 유안이 모반을 꾀하자 그는 또 금방 그 사실을 고발했다. “궁중형극(宮中荊棘)”에 대한 간언이나 “제후(회남왕)는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백성들도 원망하는 분위기가 없다.”라는 말도 아마 일이 터진 뒤에 그가 죽음을 피하려고 스스로 지어낸 말인 텐데, 누가 귀를 기울여 주었겠는가! 다른 이들과 반란을 모의하고 또 맨 먼저 고발한 그를 처형하지 않고 사면해 준다면 참소(讒訴)를 일삼는 악한 자들이 줄줄이 나타날 테니 혼란을 종식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장탕이 법에 따라 판결한 것은 결코 지나친 행위가 아니었으며, 오피를 처형한 것은 합당했다.

아! 오피와 같은 자는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군자는 불행하게 반란을 꾀하는 자의 조정에 빠졌더라도 떠날 수 있을 속히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친 척하거나 병을 핑계로 피하거나, 또는 직언으로 그런 뜻을 꺾도록 설득해야 한다.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멀리 밖으로 피해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러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면 죽는 일이 없을 것이고, 설령 죽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의로움을 지켜야 할 운명 때문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따름이다. 이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다급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할수록 더 심한 재앙을 당하게 되고,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한쪽 길마저도 의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어 평안하면 지혜를 발휘하고, 나라에 도가 없어 어지러우면 어리석은 체했다.

(寧武子)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論語》 〈公冶長〉)

정말 어리석은 사람은 목숨을 보전한 경우라도 살려고 술수를 쓸 필요가 없고, 의롭게 죽는 사람은 반란에 관여하지 않았어도 함께 죽는다.

15. 무제가 먼 변방을 개척한 것은 하늘이 유도한 것이다

머나먼 변방은 거두어서 문명을 열고 예법을 가르치면 천지의 덕을 넓히고 사회의 기강을 세울 수 있다. 도를 폐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잠시 억제함으로써 변방 백성이 약탈당하는 재앙을 완화하여 그들이 편히 지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뜻이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열고자 하면 성인이 그것을 이루는데, 성인이 나오지 않으면 당시의 군주 및 지혜와 힘을 갖춘 인사의 손을 빌려 점진적으로 시작한다. 한때의 이해관계로 말하자면 천하를 수고롭게 하는 일이지만, 고금을 아울러 계산하면 이로움이 크고 성인의 도가 그것을 통해 확장된다. 하늘은 고금과 미래를 합쳐서 순수함을 이루는 존재이다. 우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동쪽으로는 섬에 사는 오랑캐, 서쪽으로는 환수(桓水)를 통해 건너온 오랑캐들, 남쪽으로는 교지(交趾)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갈석산(碣石山)까지 다했으니 요·순이 드리운 문명의 은덕이 먼 변방까지 퍼질 수 있었다. 우임금은 치수의 공적 덕분에 천하 사람들이 움직이려는 마음을 이용해서 그들을 부렸고, 이를 통해 그의 명성과 교화가 사해(四海)에 두루 퍼졌다. 이것은 성인이 사람을 이용해 하늘의 뜻을 이루는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한나라 무제는 이미 평정된 천하를 안무(按撫)했는데 백성들도 쉬고 싶어 했다. 그런데 북으로 흉노를 토벌하고 남으로 구(甌)와 월(越)을 멸망시켰으며 또 서쪽 오랑캐를 정벌하고 대완(大宛)과 대하(大夏), 신독(身毒), 월지(月氏) 등 지극히 멀리 떨어진 나라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천하는 조용히 멈추어 있으려 하는데 무제가 움직이려 했으니 잠시의 재앙이 백성에게 미쳐서 원망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어찌 하늘이 유도한 것이 아니겠는가? 옥문관(玉門關)에서부터 서쪽은 강물이 서쪽을 향해 흘러서 중국의 강물과 합쳐질 수 없으니, 하늘과 땅의 형세는 바로 하늘과 땅의 감정인 것이다. 장건(張騫)이 자시느이 재능을 믿고 억지로 서역과 소통시킨 것은 본래 천지의 기강을 어지럽힌 행위였다. 그런데 하서주랑(河西走廊)은 중국 옹주(雍州)와 양주(涼州)의 영향을 받은 변방이다. 염방이(冉駹夷)와 공도이(邛都夷), 북이(僰夷), 월휴(越巂), 전국(滇國) 등은 중국 변방 백성들과 경계선이 개의 이빨처럼 들쑥날쑥 뒤엉켜서 말투가 서로 통하고, 물산(物産)을 서로 의지하니, 무지하고 야만스러워서 가까이할 수 없는 이들이 아니다. 무제 초기에는 훌륭한 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먼 곳까지 사람을 보내 구하려 했을 따름인데, 장건이 이를 계기로 황제의 환심을 사려는 개인적인 욕심을 가졌으나 그 역시 장가(牂柯) 지역을 내지(內地)로 편입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귀축(貴筑)과 곤명(昆明)이 지금까지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 포함되었으니, 무제와 장건이 어찌 이런 것까지 생각했겠는가? 그래서 하늘이 유도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의 윤리, 《시경》과 《서경》 및 예악의 교화를 성인이 어찌 천하의 모든 땅에 전파해 은혜를 입히고 싶어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면 미리 행할 수 없다. 그 기운이 움직이게 되면 무도한 군주와 신하가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백성을 부리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성공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죄를 공적으로 여기게 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늘이 열어주면 인간이 모방하니,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성인이 근면히 행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 죄는 사람에게 있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강소(江蘇)와 절강(浙江), 복건, 사천의 문명 교화가 나날이 흥성하여 남해 바닷가와 귀주 및 운남 지역까지 그 영향이 미쳐서 이학(理學)과 절의(節義), 문장(文章), 일의 공적 등으로 선발된 이들이 연이어 나와 서로 우러르게 되니, 이는 하늘이 보우해 준 덕분이며,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석경당(石敬瑭)이 거란에게 영토를 할양(割讓)하고, 송나라가 많은 영토를 여진에게 버림으로써 기주(冀州, 허베이성 일대)에 살고 있던 요·순이 남긴 백성들이 오랑캐의 풍속에 물들어 버렸다. 그러니 설사 문명을 가진 정권이 중원을 통일할 때 다시 귀속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간사한 무리와 당파를 이루어 정인군자를 미워하면서 궁중의 환관과 모의하여 천하를 어지럽히게 되니, 이는 하늘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이 그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차 누가 모래바람과 음산한 진눈깨비 몰아치는 북방에 울타리를 둘러 남방처럼 청명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16. 무제는 김일제(金日磾)를 잘 알았다

무제가 후궁(後宮)에서 잔치를 열고 말들을 살필 때 비빈(妃嬪)과 궁녀들이 주위에 가득했는데, 여러 사람 가운데 김일제(金日磾)만이 감히 여인들을 훔쳐보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무제는 김일제를 알아보고 중용하여 어린 태자를 보필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김일제의 이런 행동은 자잘한 것이 아니었다. 김일제는 군자의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규범에 맞게 행동하면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외관을 단정히 했고, 경외심을 돈독하게 가졌으며, ‘비례물시(非禮勿視)’의 규범을 지켰으니 자잘한 행위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심의 중심을 굳게 지키면 이목이 밖으로 옮겨가도 마음은 알지 못한다. 천승(千乘)의 제후국을 주어도 밥 한 소쿠리와 국 한 그릇 때문에 안색이 변하기도 하고,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벽옥(璧玉)을 거절하면서도 시루[甑] 하나가 깨진 것 때문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놀라기도 한다. 분란을 해결할 재능과 적을 물리칠 용기를 가지고도 마음이 불안한 짧은 순간에 자신의 이목을 통제하지 못하기도 하니, 이 어찌 자잘한 이유 때문이겠는가? 군자는 면류관에 노란 면(綿)으로 만든 공[黈纊]을 매달아 시력을 기르고, 밝은 옥돌을 귀에 걸어 청력을 기르며, 난패옥(鸞佩玉)을 허리에 차서 팔다리를 보양(保養)하는데도 전전긍긍 어려워하며 한순간에 자제력을 잃을까 염려한다. 오직 이런 사람만이 생사를 걸고 절조를 지키며 중요한 임무를 맡더라도 염려하거나 의혹을 품지 않는다. 무제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구나!

제갈량이 27살 때 유비는 그를 심복으로 의지했는데, 이는 관우와 장비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무제가 투항한 오랑캐 가운데 김일제를 발탁한 것도 조정 대신과 황실 친척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무제가 인재를 알아보는 명철함은 다른 이들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제갈량이 유비를 감동시킨 것이 어찌 단지 천하를 셋으로 나누자는 계책과 같은 몇 마디 말뿐이었겠는가! 신령한 기운 사이에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말로 설명하자 제갈량에 대한 유비의 이해가 더욱 깊어졌고, 관우와 장비의 의혹도 더욱 심해졌다. 김일제가 무제의 눈에 들게 된 것은 말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제가 그를 알아보는 것이 무척 심도가 깊었다고 하겠다. 위청(衛靑)과 곽거병이 무제의 눈에 든 것은 다른 이들이 무제의 눈에 들게 된 경위와 같았다. 작은 것에도 관심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지를 감동시킬 수 있었으니 무제는 당연히 떠도는 말을 듣고 경솔하게 실행에 옮기는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어찌 말을 들어보고 나서야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