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을 ‘여행객’이라고 부른다. 일곱 권의 책을 내고 십수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으니,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일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행은 재미를 만끽해야 하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하는 것인데, 혼자 튀어 보이는 ‘작가’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내가 글을 전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하나”라고 묻자 그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냥 필자. ‘변방의 인문학 필자 윤태옥’이라고 하면 좋겠다.” 윤태옥 필자. 그는 중앙SUNDAY에 지난 3년여간 꼬박 ‘중국기행-변방의 인문학’을 연재했다. 지난달 28일 자를 끝으로 37번째 원고를 보낸 뒤 그는 대한민국을 누비고 있다. 그의 누리길 사이사이, 그를 만났다. ‘변방’은 대체 어디인가. 변방이라면, 중심
은 어디인가. ‘인문학’에서 ‘학(學)’은 대체 어떻게 길어 올린 것인가. 윤 필자에게 물어봤다.
-왜 중국인가. 그리고 ‘변방’은 어디를 말하는 건가.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를 보자.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도 중원이 중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중원 바깥의 서역, 북방초원, 동북(만주), 동남해안, 서남내륙, 티베트 등이 변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변방은 잠재적인, 미래의 힘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변방이 중앙 진출과 지배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변방은 출생지이고 중앙은 변방이 장성해서 성공한 무대이다.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은 문무백관과 환관, 궁녀가 성공한 황제를 받드는 좌표이다. 흉노(匈奴)제국은 중원의 한
나라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조공을 받았다. 흉노가 약해진 틈에 독립한 선비(鮮卑)족은 내몽고 후룬베이얼 초원에서 남하해 중원을 장악했다. 몽골초원에서 태어난 칭기즈칸과 그 후예는 중원은 물론 유라시아까지 정복했다. 청 제국은 만주에서 내려와 자금성뿐만 아니라 서역과 티베트까지 취했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역시 변방에서 힘을 키워 중원의 장제스에 역전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변방이 아닌 순수 중원 국가는 송, 명나라 정도인데 송은 북방의 힘에 눌렸고 명은 쇄국하다가 동아시아 전체를 기울게 했다.”
-현재의 한국, 그 이전의 한국도 변방인가.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이다.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국은 한자문화권의 변방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린 한자를 2000년 가까이 쓰고 있다. 간체자를 쓰는 중국과 다르다. 그렇다면 그건 우리만의 문자는 아니지만 명백히 우리 문자의 하나다.”
자주국방의 기치를 드높이는 국군의 날,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천절과 한글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한국은 중국의 변방이요, 한자도 한국의 문자다’라는 말이 썩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윤 필자는 “이런 말을 주변에 하면 나를 친중(親中), 혹은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리즈 제목(변방의 인문학)에 학(學)을 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학’을 붙이는 게 겸연쩍다. 기행(紀行)을 통한 역사적 상상력과 소감을 섞은, 독특한 여행기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공공역사(Public History)로 봐주는 학자도 있다. 3년 반이 쌓였으니, 기행의 깊이와 너비로 보면 ‘학’을 붙여도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산물(産物)의 조건은 동력이다. ‘변방의 인문학’을 만들어 내기 위한 근원적인 행위, 즉 발걸음을 살펴봐야 했다. 윤 필자의 블로그 ‘왕초일기’는 ‘왕초보의 골프 일기’를 줄인 말이다. 8300여 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블로그를 시작한 게 2000년 6월이니, 오늘까지 그간의 날보다 많은 숫자다. 그는 “골프에서 시작했지만, 여행으로 넓어졌고, 생각나는 대로 일단 쓰고 본다. 아니, 끄적거린다”고 말했다.
-블로그에 중국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2006년 베이징으로 1년 동안 ‘휴가’를 갔다. 2009년부터는 아예 여행객으로 나서면서 중국 일기로 이어져 왔다. 햇수로 14년이 되었다.”
- 14년 동안 중국 곳곳을 누볐을 텐데.
“내가 가보지 못해 글로 쓸 수 없었던 곳들도 있다. 티베트는 단체여행에 실려 다니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 10년 넘게 튕기다가, 이제는 영영 못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과 마카오는 ‘화려한 변방’으로 탐구하고 싶었으나 홍콩 민주화 시위로 포기했다. 동남아시아는 ‘바다의 역사’라는 주제로 지도에 동선과 날짜까지 세세히 적어놓고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기한 미룬 상태다.”
-지도를 꼼꼼히 챙긴다.
“스마트폰 앱 지도가 아닌 종이 지도다. 지도는 여행의 준비와 현장에서 필수적인 도구이다. 지도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끌어 당기는 마력이 있다. 사진은 기록 매체로서 훌륭한 도구다. 감동은 눈을 통해 마음으로, 기억을 담는 기록은 주로 사진으로 한다. 전문가용 카메라도 있지만, 아마추어 하이엔드급으로 만족한다. 스마트폰 사진도 유용하다. 무겁고 비싼 카메라를 ‘모시고 다니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이 아니라 여행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글은 언제 쓰나?
“매일 새벽, 그 전날의 여행일기를 블로그에 쓴다. 블로그는 메모장이고 일기장이고 내 여행과 일상의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여행 중이 아닐 때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니 전체의 맥을 잇는 것은 여행이다. 여행을 계속해가는, 내 뱃속에서 작동하는 동력은 아마도 호기심인 것 같다. 가장 좋은 놀이는 공부이고,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공부한 것으로 하는 여행이 아닐까 한다. 호기심이 공부이고 그것이 여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변방의 인문학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중국은 이웃이다. 어쩔 수 없는 이웃이다. 지리적으로 붙어사니까 교류와 융합도 있고 갈등도 있다. 말로 하는 (싸우거나 교류하거나) 것은 외교장관의 일이고 총 들고 하는(역시 싸우거나 교류하거나) 것은 국방장관의 몫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친교로 교류하는 것이 아닐까. 굳이 24시간 긴장하며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외교장관도 하고, 국방장관도 하고, 저널리스트가 되어 천하대세를 논하며 주야장천 거품 무는 것은 개인적으로 권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의 운명은 친중·반중, 친미·반미, 친일·반일, 친러·반러를 한꺼번에 다 해야 하는, 지정학적 신공을 펼치며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북의 중원’과 ‘동남의 해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정학적 운명을 갖고 있다. 그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변방은 변방이고, 변방에서 내일의 주도권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중국 길이 막히자 윤 필자는 국내 여행이 더 애틋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윤 필자는 최근 ‘해바라기길’을 다녀왔다. 순천만~여수~낭도~고흥~벌교~순천만의 일주 코스다. 이름은 윤 필자가 붙였다. “해가 뜨면 해를 따라간다. 그리고 해질 때까지 해와 어깨동무하듯 함께 간다.” 그는 이렇게 알려줬다. 여행 전에 배우고, 여행 뒤 새로운 배움을 이렇게 나눈다. 그래서 그의 시리즈에 ‘학’이 붙었음을, 이제 알겠다. “학교는 책 속으로 가는 여행이고, 여행은 길 위에서 읽는 책이다.” 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