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선생 전기五柳先生傳] 도연명陶淵明 씀
그는 어디 사람인지 모른다. 성도 자(字)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집 주변에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있기에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호를 붙였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고, 영예와 이익을 탐내지 않았다. 책 읽는 걸 좋아하였으나, 너무 깊이 파고들려고 하진 않았다. 어쩌다 마음에 맞는 내용이 나오면 밥 먹는 걸 잊을 만큼 기뻐했다. 술을 좋아하는 성향이었으나 집이 가난하여 자주 마시진 못했다. 그의 이러한 사정을 친구가 알아서 간혹 술자리를 마련하여 초대하곤 했다. 가서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하고야 말리라는 듯 준비해놓은 것을 다 마시고 술에 취해 돌아왔다. 어딜 가면 가고 오면 와서, 미련을 둔 적이 없었다. 집은 온통 휑뎅그렁했고, 바람도 햇살도 가리지 못했다. 짧은 갈옷 떨어지면 꿰매 입고, 밥그릇도 표주박도 자주 텅텅 비었지만, 편안한 듯했다. 자주 글을 써서 자기 뜻을 보여주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이해와 득실을 따지는 걸 몰랐으며, 그렇게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총평을 해본다. “옛날 은자 검루(黔婁)의 아내가 ‘가난하고 비천해도 질질 짜며 슬퍼하지 않고, 부유하고 고귀한 걸 아등바등 추구하지 않았지요’라고 남편의 일생을 정리하여 말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사람을 말한 것 아닐까? 술 마시고 시를 지어 읊조리고 노래하며 즐겼다고 하니, 전설에 나오는 무회씨 때 사람인가, 갈천씨 때 사람인가?”
先生不知何許人也,亦不詳其姓字。宅邊有五柳樹,因以為號焉。閒靜少言,不慕榮利。好讀書,不求甚解;每有會意,便欣然忘食。性嗜酒,家貧不能常得。親舊知其如此,或置酒而招之。造飲輒盡,期在必醉;既醉而退,曾不吝情去留。環堵蕭然,不蔽風日,短褐穿結,簞瓢屢空,晏如也。常著文章自娛,頗示己志。忘懷得失,以此自終。
贊曰:黔婁之妻有言:“不戚戚於貧賤,不汲汲於富貴。”其言茲若人之儔乎?銜觴賦詩,以樂其志,無懷氏之民歟?葛天氏之民歟?
[팔보선생 전기八步先生傳] (홍승직이 도연명의 [오류선생전기]를 흉내냄)
그는 한국(韓國) 충남(忠南) 홍성(洪城) 사람이다. 성은 홍(洪)이고 자(字)는 없었다. 팔자걸음이 너무 심하여 팔보선생(八步先生)이라고 호를 붙였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고, 영예와 이익을 탐내긴 했으나 이루질 못했다. 한때 책 읽는 걸 좋아하였으나 오래 지속하진 않았으며, 도연명의 <오류선생 전기>에 나오는 ‘너무 깊이 파고들려고 하진 않았다’(不求甚解)는 말을 어쩌다 발견하고 너무 좋아하여 밥 먹는 걸 잊을 만큼 기뻐했고, 이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서, 유종원(柳宗元) 문집을 독파하고 번역하였으나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아 유종원 대가가 되지 못하였고, 이탁오 문집을 훑어보았으나 ≪이탁오평전≫ 번역을 딸랑 하나 내고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아 이탁오 대가도 되지 못하였다.
술을 좋아하는 성향이었으나 낯을 심하게 가려서 술친구들이 건강 문제로 점점 술을 끊으면서 자주 마시진 못했다. 그의 이러한 사정을 친구가 알아서 간혹 문자나 카톡을 통해 연락하곤 했다. 만나서 마시면 반드시 취하겠다는 듯 주점 냉장고를 다 비우고 귀가하곤 했다. 어딜 가면 가고 오면 와서, 미련을 둔 적이 없었다. 집은 온통 휑뎅그렁하였으나, 신축 아파트라 바람과 햇살은 잘 가렸다. 배가 비정상적으로 불룩 나온 체형이라 맞는 옷을 사지 못해 입던 옷이 떨어지면 꿰매 입고, 냉장고가 자주 텅텅 비었지만, 편안한 듯했다. 가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서 자기 뜻을 보여주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이해와 득실을 따지는 걸 몰랐으며, 그렇게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총평을 해본다. “팔보의 아내는 ‘가난하고 비천해도 질질 짜며 슬퍼하지 않는 것은 개뿔,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소용이 없었고, 부유하고 고귀한 걸 아등바등 추구하지 않는 것은 개뿔, 어떻게든 이루려다 못이루고 결국 이꼴 되었지요’라고 남편의 일생을 정리하여 말하였다. 술 마시고 노래방 가 노래하며 즐겼다고 하니, 전설에 나오는 요순시대 사람인가, 단군시대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