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民家紀行 – 07 쑤저우 원림

쑤저우 원림 – 인공으로 자연을 만드는 귀족의 저택

쑤저우박물관은 현대적인 감각에 중국 전통의 아름다움이 잘 결합된 건축물로, 그 안의 전시물보다 박물관 자체가 더 눈길을 끌기도 한다. 건물은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패널들을 이어붙인 것 같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원형의 문동門洞을 통해 물과 다리, 담과 담에 그려진 산, 물을 가로질러 걷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살아 있는 그림 한 폭(아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문동으로 보이는 그림의 실체를 알 수 있다. 파란 하늘아래 좌우로 길게 펼쳐진 백색 담장이 화폭이고, 그 앞의 돌이 산이고, 연못이 물이다. 간결하면서도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건축물은 중국계 미국인 아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가 2002년 설계한 것이다. 중국어로는 베이위밍貝聿銘이라고 한다. 베이위밍은 중화민국 중앙은행 총재의 아들로, 1935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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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그는 1983년 건축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다섯 번째로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홍콩의 중국은행 건물, 미국 인디애나대학 미술관, 일본 미수미술관, 베이징의 향산호텔, 워싱턴의 주미 중국대사관 등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런데 쑤저우박물관에서 동서양이 한데 잘 어우러진 동서합벽東西合璧이 실감 나는 베이위밍의 상상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쑤저우박물관에서 150m남쪽에 있는 사자림獅子林이라고 하는 원림園林이다. 바로 베이위밍이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다. 베이위밍은 어려서부터 사자림에서 건축에 대한 꿈과 상상과 영감을 쌓기 시작했고, 결국 세계적인 건축가로 명성을 날렸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본 부잣집 도련님 가운데 위대한 요리사가 나온다는데, 예술과 건축이 풍부하게 담긴 원림에서 자란 망족望族의 자제가 위대한 건축가가 된 것이다.

원림은 정원과 같은 뜻이지만 통상적으로 커다란 연못과 나무, 바위 등으로 잘 꾸며진 대저택을 말한다. 쑤저우를 여행한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 널찍한 연못과 기묘한 바위들, 나무와 화원, 각양각색의 정자와 누각, 지붕이 있는 야외 복도, 화려한 창틀과 문동 등으로 채워진 대저택을 관람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물이 많고 생활기풍이 안온한 강남 지역의 특색이 잘 살아있고 예술과 가장 근접한 건축의 하나, 바로 원림이다. 상형문자 원園은 네모난 담장 안에 산과 물과 수목이 들어 있으니 이 글자가 오래전에 가졌던 뜻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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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개인 소유의 원림들이 많다. 베이징의 이화원, 청더承德의 피서산장, 쑤저우의 졸정원과 유원을 중국의 4대 원림으로 꼽는데 두 개가 쑤저우에 있다. 쑤저우와 인근 지역에 수십 개의 원림이 있는데 졸정원과 유원, 창랑정과 사자림을 쑤저우 4대 원림으로 쳐준다.

사자림은 원나라 혜종 때인 1342년 고승 유칙惟則이 사자림보리정종사獅子林菩提正宗寺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사원의 원림이었는데, 명청시대를 거치면서 민간에 넘어갔다. 청조 말기를 지나면서 중화민국 초기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가, 1917년 쑤저우 명문가의 한 사람인 베이런위안貝仁元이 매입하여 9년에 걸쳐 재건했다. 안료사업을 해서 거부가 된 베이런위안의 친형의 손자가 바로 베이위밍이다. 베이위밍의 숙조부는 상하이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손자를 방학 때마다 이 사자림에 와서 머물도록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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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중국 정부는 사자림을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했고, 2000년 쑤저우 원림의 하나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원림은 담장이 높다. 까치발은커녕 목말을 타도 담 너머 들여다보기 어렵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도 복도를 지나 몇 개 공간을 통과해야 트인 공간으로 나설 수 있다.

사자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가산假山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기묘한 돌을 쌓아 산의 형상을 연출한 것이라 첩석가산疊石假山이라고도 한다. 사자림의 가산은 원대에 조성된 것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고 하는데, 가산의 위아래로 세 갈래 길이 이어져 있고 작은 동굴도 21개나 된다. 좁은 통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면 2∼3m 높이의 바위 위에 올라서기도 한다. 한 바퀴 돌면 제자리 같지만 다른 자리에 와 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비슷하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연못과 정자가 다른 풍경으로 보인다. 작은 천지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느껴보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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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강희제가 이 가산에서 두 시간이나 길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가산 사이의 길을 편안하게 노닐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건륭제가 이곳을 둘러보고는 “眞趣(정말 재미있었다)”라고 친필로 써서 하사한 것이 지금도 그대로 걸려 있다. 청나라 황제들도 사자림을 좋아한 탓에 베이징의 원명원과 청더의 피서산장에는 사자림을 본뜬 원림이 있다. 그러나 가산이 너무 인위적이란 느낌도 있다.

사자림에서는 수면이 가장 넓다. 연못도 있고 실개천도 있다. 물이 3이요, 화목이 2이고, 집이 1이라고 한다. 연못도 여러 개가 이어진다. 물을 향해서는 공간이 트이고 시야가 넓어 시선을 던질 곳도 다양하다. 물이 아닌 방향으로는 뭔가 보이지만 반쯤은 숨은 것 같고, 걸음을 뗄 때마다 보이는 게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자림에는 독특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위 우측 사진). 출입구 가까운 곳에 연예당燕譽堂이 있는데, 겉으로 보면 보통의 기와지붕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두 개의 방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한 쌍의 원앙과 같다고 해서 원앙청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같은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천정에 노출된 서까래의 형태,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대들보의 문양, 반은 원형이고 반은 방형으로 만들어진 중앙의 기둥, 병풍, 문, 창, 진설된 가구, 벽의 그림, 바닥, 등燈까지 모두 열 군데가 다르다. 건축 유희라고 할 만한 이와 같은 원앙청은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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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한쪽에는 태호석을 쌓아 만든 구사봉九獅{峰(위 좌측 사진)이 있는데, 총명한 사람은 아홉 마리의 사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도 각자의 시각으로 아홉 마리의 사자를 찾아보는 일종의 유희다.

원림 내부에는 외벽이 아닌 담장도 있다. 외벽이 아니기에 문짝 없이 문동만 있다. 문동은 원형, 반원형, 타원형에서 도자기와 같이 잘록한 모양도 있다. 문동을 통해 건너편 풍경을 보면 문동이 액자이고 건너편 풍경이 그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풍경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원림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담에 창을 내기도 한다. 창살로 각종 화려한 문양을 만들어 화창花窓이라 하기도 하고, 창살 이외에는 안팎이 트인 구조라서 누창漏窓이라 하기도 한다.

화조를 묘사한 화려한 창살도 있고, 기하학적 형태를 가진 것도 있다. 사자림에는 진기서화琴棋書花를 네 폭으로 그린 누창(아래 사진)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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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다. 벽체가 없는 작은 정자도 있고,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수려한 건물도 있다. 어느 것이든 당호堂號를 붙이고 있다. 단체單體 건축물에 제각각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동아시아 건축의 특색이다. 정면의 기둥에는 대부분 원림의 풍경과 정취를 노래하는 주련柱聯이 붙어 있다. 이것을 감상하는 것도 원림 감상법 가운데 하나다.

곳곳에 나무가 있다. 수목이 많지만 서양과 같은 기하학적 배열은 아니고, 자연을 모방했다고 하지만 야생과는 다른 느낌이다. 길도 많다. 오솔길도 있고, 연못을 건너는 다리의 길도 있다. 그러나 어떤 길이든 직선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좌우로 휘어지거나 꺾어진 것이 많고, 돌을 휘감아 오르내리거나 숲속으로 오르내리는 굽은 길들이다. 걸음을 뗄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그만큼씩 다르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사실 원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복잡하다거나 인공적이라는 반감이나 이질감이 있을 수 있다. 원림 내부로는 주거와 오락, 휴식 등의 복합적인 기능을 담고 있고, 높은 담장으로 바깥 세계와는 차단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 연출되니 소천지小天地 또는 호중천지壺中天地라고 한다.

이에 비교하자면, 산이 많은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을 그대로 살려내는 멋’을 추구했다. 산세가 풍부한 탓에 집터를 잘 잡으면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정원 속에 지은 것이 된다.

중국 강남의 원림들은 산수화에서처럼 산수를 인위적으로 축소복사해서 마당에 들여앉히면서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 또는 가경假景의 멋’에 탐닉하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은 유가적 생활과 도가적 휴식이 융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건축에서는 궁궐과 일반의 민가, 사찰이 엄격한 표준과 규범에 의한 유가적 맥락이라면, 원림은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도가적인 관념의 산물이다.

그러나 자연을 재현해 그 안에 산다지만, 재현 자체가 인위이니 인위의 극치에서 자연 속의 안위를 구하는 것이다. 모순이랄 수도 있고, 관념의 치환이나 반전이라 할 수도 있다. 원림은 다른 건축물보다 예술과 밀접하다. 회화와도 아주 가깝다. 유명한 화가나 문사가 원림의 설계에 참여한 경우도 많고, 원림의 풍경을 다시 회화로 남기기도 했다.

원림을 논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은 단연코 《홍루몽》이다.

《홍루몽》의 무대인 대관원大觀園이 바로 원림이기 때문이다. 《홍루몽》 주인공의 누이가 황제의 후비로 들어갔는데, 잠시 친정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나게 되자 누이의 임시거처로 원림을 새로 지었다. 그것이 바로 대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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