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4권 1

제4권 정원옥은 주막에서 대신하여 돈을 보상하고,
십일낭은 운강에서 협객을 자유롭게 논하다.
程元玉店肆代償錢 十一娘雲岡縱譚俠

홍선(紅線)이 세상에 내려오니 대단하구나! 경쾌함이여.
은낭(隱娘)이 출몰할 때는 희고 검은 위(衛) 지역의 나귀를 탔네.
향환(香丸)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향기로운 연기처럼 칼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최첩(崔妾)은 흰 비단을 입고 야밤에 홀연히 사라졌네.
협구(俠嫗)는 비단을 길게 찢어 모자를 신상의 귀 안에 머물게 하네.
상인의 아내(賈妻)는 아이를 죽여서 이별의 한을 풀었구나.
해순(解洵)은 부인을 취하여 수륙의 비용 다 구비하였네.
삼환(三鬟)은 구슬을 가졌을 때 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네.
수레 중의 여자(車中女子) 날아서 1자 남짓 구멍 안에 들어왔네.

이 한 편의 찬은 모두 이전의 협녀에 관한 사건을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세상에는 도술이 있어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 도술을 배웠다. 비록 진짜 선인의 일파는 아니더라도 그들은 오히려 오로지 악을 제거하고 선을 선양하여 그 공덕을 완연히 드러내고 이를 빌어서 신선이 되었다. 그래서 호사가들이 분류 수집하여 따로 《검협전(劍俠傳)》을 짓고 여자를 전문으로 다루어 《협녀전(俠女傳)》을 지었다. 위의 찬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가 여자들이다.

홍선(紅線)은 바로 노주(潞州) 설숭(薛嵩) 절도사(節度使)의 어린 시녀이다. 위박(魏博)의 절도사인 전승사(田承嗣)가 바깥마당에 삼천명의 장정들을 양성해서 노주를 병탄하려 하여 설숭이 밤낮없이 근심 걱정하자 홍선이 이 사실을 알고 검술을 써서 위박으로 3경에 7백리를 왕복하여 전승사의 침상 머리 맡에 있던 황금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위박에서는 금상자를 찾느라 진중이 온통 소란해졌다. 이에 홍선이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물건을 되돌려주니 전승사는 놀라 그녀가 검협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목을 베러 올까 두려워 사악한 음모를 취소하였다. 나중에 홍선이 자기는 전생에 남자였고 약을 잘못 사용하여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벌로써 여자가 되었고 지금은 이미 공을 세웠으니 신선이 되러 가겠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홍선 고사의 유래이다.

은낭(隱娘)의 성은 섭(聶)이고 위박(魏博)의 대장 섭봉(聶鋒)의 딸이다. 어려서 걸식하는 노파를 우연히 만났는데 노파가 데려다가 특이한 기술을 가르쳤다. 나중에 시집가서 부부가 서로 굼뜬 나귀 한 마리씩 타고 다녔다. 한 마리는 검고 한 마리는 흰 것이었다. 이 나귀의 산지가 위(衛) 지방이기 때문에 위라고도 한다. 필요할 때는 타고 필요하지 않을 떄는 안 보였다. 원래는 종이로 만든 것으로 이전에 위나라 장수 곁에 있었는데 위지역 장수는 허(許)지역 장수 유창예(劉昌裔)와의 반목으로 인해 은낭을 시켜서 그의 머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뜻밖에도 유 절도사는 점을 잘 쳐서 은낭 부부가 입국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먼저 위지역 장군에게 아침 일찍 성의 북쪽으로 가서 그들을 기다리게 하고서는 간단히 말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검고 흰 나귀를 타고 오면 바로 그들이다. 곧바로 나의 명을 전하고 영접하라!”

은낭이 허지역에 도착하여 이같은 일을 당하자 유공의 신명스러움에 감복하여 위를 버리고 허지역에 귀순하였다. 위지역 장군이 이 사실을 알고 먼저 정정아(精精兒)를 파견하여 유공을 죽이려 하였는데 오히려 은낭에게 죽임을 당했다. 또 묘수(妙手) 공공아(空空兒)를 파견하자 은낭이 벌레로 변하여 유 절도사의 입 속으로 숨어 들어가 유절도사에게 우전국(于闐國)의 구슬로 목을 둘러싸게 하였다. 공공아가 삼경에 와서는 비수를 목을 향해 그으니 옥이 막고 있어 그 소리만 요란하게 “쨍”하고 울리고는 목을 꿰뚫지 못하였다. 공공아는 부끄러워하며 “빗나갔구나”라고 말하고 한번에 천리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유 절도사와 은낭은 모두 재난을 면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은낭 고사의 유래이다.

향환(香丸)이 시녀와 함께 관음리(觀音里)에 있었을 적에 한 서생이 산보하다가 향환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불량배 몇 명이 그녀가 음란하고 불미스런 행동을 많이 했다고 헐뜯어 서생은 그녀를 천히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 그의 처와 이야기하니 뜻밖에도 처가와 친척이었는데 매우 고결하고 독특한 면모를 지닌 여자로 친척들이 모두 그녀를 경외한다고 하였다. 서생은 마음이 불편하여 그녀를 대신하여 불량배를 찾아가 한 번 혼내주려 하였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그때 마침 향환이 시녀를 시켜 감사하며 말하였다.

“나리께서는 그처럼 좋은 마음씨를 가지시고 비록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으셨지만 아씨께서 감동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리하여 서생을 초청하고 데리고 가서 주연을 베풀고 그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중간쯤 마시자 시녀가 가죽 주머니를 지고 와서는 서생에게 “아씨께서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열어 보니 바로 색이 아직 변하지 않은 사람 머리 서너개였는데 모두가 평소에 그녀를 모욕했던 원수들이었다. 서생은 깜짝 놀라서 사건에 연루될까 두려워 황급히 도망가려고 하였다.

“겁내지 마세요!”

가슴에 품고 있던 흰색의 광채가 나는 약을 몇 알 꺼내어 새끼손가락으로 머리가 잘린 곳으로 튕기니 머리가 점점 줄어들어 자두 크기로 변하였다. 시녀가 하나 하나씩 입에 넣어 씹고 뱉으니 역시 자두씨였다. 시녀가 다 먹은 다음에 서생에게 말하였다.

“아씨께서도 나리께서 아씨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고 깡패들을 죽여주기를 원하십니다.”

서생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제가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녀는 향기로운 환약을 주며 말했다.

“나리께서 수고롭게 손을 움직일 필요없이 서재를 깨끗이 청소하여 화로에다 이것을 태우고 연기가 가는 곳 따라가면 반드시 일이 성사될 겁니다.”

또 이전의 가죽 부대를 그에게 주며 말하였다.

“사람의 머리는 모두 이 안에 넣으세요. 연기를 따라가면 들어오게 되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서생이 말에 따라 행하니 다만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간 곳에는 빛이 있었으며 벽이 있어도 그를 막지 못했다. 매번 도달하는 곳마다 불량배를 만나면 연기가 목을 세 바퀴 두르고 머리가 이미 스스로 떨어졌고 자기 자신도 깨닫지 못하였다. 서생은 머리를 가죽 부대 속에 넣고 이처럼 몇 차례 하자 연기는 돌아왔고 서생도 따라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는데 아직 삼경이 되지 않았으니 마치 꿈을 꾼 것과 같았다. 일을 마치자 향환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시녀는 이미 머리로 된 탄약을 꺼내 아까처럼 먹어버렸다. 그리고는 서생에게 말하였다.

“아씨께서 낭군에게 말을 전하셨어요. 여기는 어려운 고비로 이번 관문을 통과하면 함께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후에 간 곳을 알지 못하고 이 여자와 서생 모두 성명을 알지 못하며 다만 《향환지(香丸誌)》가 전해져 올뿐이다.

최씨의 첩(崔妾)이라는 것은 당(唐) 정원(貞元) 연간의 일이다. 박릉(博陵) 최신사(崔愼思)가 진사과에 응시하러 서울에서 방을 세내어 살고 있었다. 집주인은 남편이 없는 부인으로 나이는 삼십 정도였고 어느 정도 미모가 빼어났다. 신사는 중매인을 보내어 뜻을 전달하고 아내로 삼고자 하였다. 부인은 응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저는 관리 집안의 딸이 아니고 문벌이 상대되지 못하니 후일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다만 첩이 될 수는 있습니다.”

마침내 신사를 따른 지 2년이 되어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녀에게 성씨를 물으니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하루는 최신사가 그녀와 자다가 한밤중이 되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최생은 무슨 간통 사건이 생긴 것이라 의심되고 분노를 참을 길 없어 안채 앞으로 걸어나가 이리저리 걸으며 방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부인이 집 위에서 걸어 내려와 흰 비단을 몸에 감고 오른 손에는 비수를 들고 왼손에는 한 사람의 머리를 들고 최생에게 말하였다.

“저의 부친은 옛날에 군수에 의해 피살되었는데 복수를 하고자 해도 수년동안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일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습니다.”

이어 저택을 최생에게 주고는 담을 넘어 가버렸다. 최생이 놀라 당황해하고 있는데 얼마 후에 다시 와서 말하였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갑니다”

잠시 후에 나와서 말하였다.

“이제 영원히 이별입니다.”

마침내 그녀는 가버렸다. 최생이 방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이미 죽어 있었다. 그녀는 마음 속의 아이 걱정을 벗어나고자 이와 같이 한 것이다. 그래서 《최첩백련(崔妾白練)》이란 말이 있다.

협구(俠嫗)의 일이라는 것은 원옹(元雍)의 첩 수용(修容)이 직접 이야기한 것이다. 어릴 적 마을에 도적이 나타났는데 어떤 노파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와서 말하였다.

“당신 집은 여태까지 음덕이 많아 비록 도적이 쳐들어와도 놀랄 필요가 없다우! 우리들이 당신네들을 숨겨줄 터이니.”

소매 속에서 두 치의 흑비단을 꺼내 긴 끈으로 만들어 매 사람의 팔 위에 한 가닥씩 묶고 말하였다.

“나를 따라 오세요.”

수용 모녀가 한 도원에 이르자 노파가 신상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당신들은 저 귀 안에 숨을 수 있어요.”

수용 모녀더러 눈을 감게 하고 그들을 업고 들어갔다. 그 작은 신상에서 그들 모녀가 귀속에 머물게 되었는데도 방 한 칸과 같이 조금도 협소하지 않았다. 노파가 밤낮으로 보러 오고 음식들도 모두 그가 보내 주었다. 이 신상의 귀 구멍은 단지 손가락 크기였으나 음식이 도착하면 귀 구멍이 커졌다. 후에 도적이 평정되자 예전처럼 업고 귀가하였다. 수용이 절을 하고 스승으로 삼자고 하여 고행을 수행할 것을 맹세하고 은덕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노파가 “신선의 골격이 아직 미미하구나.”라고 하면서 그녀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후에 어디로 간 지 모른다. 그래서 《협구신이(俠嫗神耳)》라고 한다.

상인의 처와 최신사의 첩은 이야기가 비슷하다. 여간(餘干)의 현위(縣尉) 왕립(王立)이 좌천되었을 때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는데, 그 부인이 말하길,

“원래 상인의 처였는데 지아비가 죽은지 10년이 되어 가산이 꽤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왕립이 남편이 되어 아들 하나를 낳았다. 어느 날 그 부인이 사람의 머리를 들고 돌아와서 말하였다.

“원수를 이미 갚았으니 즉시 서울을 떠나야 합니다.”

갔다가 다시 와서 말하였다.

“아이에게 젖만 한 번 먹이고 아주 헤어지겠습니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갔는데 휘장 안을 들쳐 아이를 보니 몸과 머리가 각각 다른 곳에 있었기에 《고처단영(賈妻斷嬰)》이라 말하지만 최씨의 첩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있다.

해순(解洵)은 송(宋) 때의 무관인데 정강(靖康)의 난으로 북쪽 땅에 잡혀 있었다. 외롭고 고독하여 친척들이 그를 가엾게 여겨 그에게 한 여인을 첩으로 취하게 하였다. 그 여인은 혼수가 많아 해순은 그것으로 생활하였다. 중양절(음력 9월9일)을 맞이하여 옛 처가 생각나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부인이 이유를 물어서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행 경비를 준비하여 그와 동행하였다. 여행 중에 온 힘을 다해 그를 보호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그의 형 해잠(解潛)이 군대에서 세운 공으로 인하여 이미 총수가 되었으며 서로 만나서 대단히 기뻐하고 하녀 네 명을 그에게 주었다. 해순이 그들을 대단히 사랑하여 부인에게 점점 소홀히 하였다. 부인이 하루는 술을 마신 해순을 책망하며 말하였다.

“당신은 옛날에 조(趙), 위(魏)에서 걸식하였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나요? 내가 아니면 이미 굶어 죽었을 겁니다. 오늘 이렇게 뜻을 얻어 배은망덕하는 것은 대장부가 할 바가 아닙니다!”

해순이 이미 술기운이 있어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러 계속하여 때렸다. 부인이 비웃자 해순은 다시 침을 뱉고 욕을 끊임없이 하였다. 부인이 갑자기 일어나니 등불이 어두워지고 냉기가 사람을 엄습하여 첩들이 놀라 엎드렸다. 조금 후, 등불이 다시 밝아지자 첩들이 일어나 보았을 때 해순은 이미 땅 위에 죽어 있었고 머리조차도 없었다. 부인과 방에 있는 모든 것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해잠이 그 사실을 알고 장사 삼천명을 파견하여 각처에 체포령을 내렸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을 《해순취부(解洵娶婦)》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