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호는 자홍색 자사이며 간결하고 빛이 투과하는 듯 맑다. 차호의 몸통은 선이 곧은 통형이며 큰 원형의 굽테두리가 있는 바닥, 곧은 목을 가지고 있다. 뚜껑 덮개는 넓으며 입전과 서로 잘 맞물려 있다. 뚜껑 표면은 이중의 돔 형태이며 꼭지는 젖꼭지 모양이다. 물대는 작고 꺾여있으며 출수구는 위를 향해 있다. 길게 곧은 선으로 내려오는 둥근 손잡이가 있다.
호 바닥에는 “자차정장 항씨자경 묵림煮茶亭長項氏子京墨林”이라는 명문이 있다. 차호의 기개가 대단하고 짜임새 역시 그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어졌다. 수차례 여러 사람의 품을 전전하였는데 그 때마다 소장자들은 이 차호를 무척 사랑하였고 바닥의 명문을 탁본 하여 소장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항원변項元汴의 호는 자경子京으로 호는 묵림거사墨林居士이다. 명문銘文의 자차정장煮茶亭長 역시 그의 수많은 별호 가운데 하나이다. 명 가정嘉靖 4년에서 만력萬曆 19년(1525—1591)까지 살았던 인물로 저장浙江 자싱嘉興 사람이다. 집안이 상당히 부유하였는데 명대 전체를 통털어 가장 유명한 수집가이자 감정가였다. 또한 그 자신이 원대 황공망黃公望과 예찬倪瓚의 많은 영향을 받아 그림과 글씨에 능했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글씨나 그림, 옛 청동기, 도자기 등을 사는데 몰두하였다. 당대 유명 화가이자 서법가인 문징명文徵明을 좋아하였고 그의 아들인 문팽文彭, 문가文嘉와도 교분이 깊었다. 그의 이름을 듣고 만력 4년 황제가 조서를 내려 벼슬을 주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그의 수장품은 매우 많아 강남에서 제일이었는데 감정에도 매우 능했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지금 그가 적은 제题와 발문跋文을 보면 그 자부심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한 일부 물건의 가격을 적어놓고 소장품을 정리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가 수집가가 아니라 기물을 사고 파는 일개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명대 만력 연간에는 시대빈과 그의 제자 이중방, 서우천 3대 고수 이외에도 각자 자신만의 절기를 가지고 차호를 만드는 자사 명장들이 즐비하였는데 이들은 자사 차호의 제작 기술을 향상시켰고 자사 시장의 번영을 이끌었다. 강남 지역의 관료와 사대부들은 앞다투어 기품있는 차도구를 주문하였고 이 묵림호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