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루쉰이라는 의식과 함께 나에게 떠오른 것은 결코 교훈이나 설교 등을 하는 두렵고 조심스러움을 느껴야 할 것 같은 인간이 아니다. 화기애애하게 가깝게 지낼 만 한, 게다가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그래서 탁 털어놓고 말할 수 있어, 무릇 위엄 따위로 억누르는 듯한 것은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로서는 나이가 어지간히 차이가 나고, 스승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두렵거나 경외스러운 것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신뢰하고 의지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고 그 어떤 말이라도 들어 주었던 사람이었다. 문장으로 보는 그는 약간 무서운 얼굴을 하고 그 자체로 위엄 같은 것도 갖추고 있어 두려운 존재로 남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인 듯하지만, 실제로 일상적으로 내가 접했던 그는 사람 좋은 아저씨로 유머러스한 애교마저 갖추고 있었다. 깨끗하고 맑은 눈을 하고 있으며, 걷는 모습에는 어딘가 표표한 선골仙骨마저 띠고 있었다.
그는 여름에는 하얀 색 중국옷을 입었는데, 내 눈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그의 모습(그의 실내에서 눈에 익은 모습)은 검은 색 셔츠를 바지에 넣고 가죽 벨트를 한 채 보라색 털실로 짠 쟈켓을 입고, 두발과 수염을 텁수룩하게 길렀으며, 손에는 항상 담배 파이프를 들고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는데, 그럼에도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발소에는 별로 가지 않고, 옷차림도 항상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언젠가 영국인을 방문하러 빌딩 7층에 가려했을 때 중국인 엘리베이터 보이로부터 수상쩍은 인물로 의심을 받아, ‘저쪽으로 가라’고 쫓겨나 하릴없이 7층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데도 별로 화도 내지 않고 웃어넘겼는데, 어쨌든 옷차림이나 얼굴 등에는 언제나 무심했다. 그 대신 담배는 손에서 떼지 않았다. 담배가 싸구려여서 그랬는지, 손가락 끝은 담뱃진으로 인해 붉은 찻물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그래도 가끔씩 깎기는 했지만, 깎는 게 극히 드물었는지 깎고 나면 마치 인상이 달라진 듯이 깨끗하게 보였다. 나는 ‘퍄오량漂亮’(중국어로 아름답고 스마트하다는 의미)하다며 놀리곤 했다.
그의 코는 높지 않고 약간 조금 위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관해 최근 루쉰의 조카([곧 그의 아우] 저우졘런周建人의 딸)인 저우예周曄가(내가 출입하고 있을 때 쯤 졘런 씨는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왔기 때문에 저우예 양 역시 봤을 테지만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먹었다) 백부인 루쉰에 대한 추억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백부와 아버지의 코를 비교하면서 백부의 코가 아버지의 코와 달리 낮은 것을 보고 백부와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 많이 닮았지만 코만은 닮지 않았다고 의문스레 말했다. 그러자 루쉰은 “네가 몰라서 그런 건데, 어렸을 때는 큰아버지의 코도 아버지와 똑같았지만, 큰아버지는 몇 차례 벽에 부딪혀서 낮아진 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큰아버지의 주위는 언제나 캄캄한 동굴이었어. 너무 어두워서 금방 벽에 부딪쳐 버렸던 게야” 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위가 항상 어두운 동굴이었고, 그렇게 어두운 동굴을 코를 부딪혀가며 걸었다는 것은 그대로 그의 생애를 비유적으로 잘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의 문학의 어둠을 말하는데, 그것은 그의 주위가 어두운 동굴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어두운 동굴을 어찌어찌 빠져나가 벗어나지 않고, 벽에 코를 부딪혀가며 동굴을 안쪽으로부터 두드려 깨부수고 걸어간 것이 그의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