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외사女仙外史 제10회

제10회 동가장에서 진짜 소아가 자매를 알아보고
빈안(賓雁)의 딸로 변장해서 요괴를 항복시키다
董家莊眞素娥認妹, 賓善門假端女降妖

월군이 산동 청주(靑州)의 동쪽 교외를 신유(神遊)할 때 멀리서 누군가 ‘소아낭낭(素娥娘娘)’을 부르는데 목소리가 구슬프면서도 맑았다. 이에 그 목소리를 따라 가 보니 묘령의 여자가 달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면서 한 번 절을 할 때마다 세 번씩 소아낭낭을 부르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그리워하는 듯했다. 월군은 무척 기이하게 생각하며 이 여자가 필시 인간 세상에 전생(轉生)한 한황(寒簧)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즉시 내려가 달래 주려 하다가,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자신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서 얼른 정신을 거둬들여 육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유모와 만다니에게 얘기하자 모두들 한황이 틀림없다고 했다. 이에 월군이 말했다.

“그 아이가 절을 올린 때가 보름 전후였던 것 같으니, 다음 달에 가 보도록 해요.”

그런데 여러분, 그 여자는 어느 집안의 딸일까요? 바로 산동과 하북(河北)에서 제일 유명한 의적(義賊) 동언고(董彥杲)의 딸이지요.

동언고는 만 명을 감당할 만큼 힘이 세서 한 길 여덟 자의 사모(蛇矛)를 쓰는데, 둘째동생 동언호(董彦暠)와 막내동생 동언창(董彦昶)도 모두 무예에 정통해서 ‘삼걸(三傑)’이라고 불렸다. 동원고의 아들 동저(董翥)와 동원호의 아들 동건(董騫)은 각기 방천화극(方天畵戟)을 쓰는데 확실히 소년영웅이라고 할만 해서 이곳 사람들은 그들 다섯을 아울러 ‘동씨 집안의 다섯 호랑이[董家五虎]’라고 불렀다. 그들이 사는 곳이 바로 동가장(董家莊)인데, 기마(騎馬)에 능숙한 팔백여 명의 부하들이 마을 바깥에 흩어져 포진하고 있어서 경계와 제약이 대단히 삼엄했지만 여태 그곳을 오가는 나그네나 상인들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그들이 약탈한 것은 모두 탐관오리가 사적으로 갈취한 장물(贓物)이거나 조정 귀족에게 뇌물로 바치는 금은보화였는데, 문무 관료들은 그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감히 막거나 붙잡으러 나서지 못했다. 왜냐? 그는 자객을 양성하여 가볍게는 남의 곳간을 털고, 심한 경우는 목까지 베어서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의 탐관오리들은 오히려 암암리에 그들과 왕래하면서 자신들의 죄악을 눈감아 주어 자신들이 벼슬을 이용해 챙겨 놓은 재물을 보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반을 쪼개 바쳐야만 무사히 부임지를 떠날 수 있었다. 그들 삼형제는 이런 불의한 재물을 얻으면 오로지 곤궁한 이들을 돕고 구휼하는 데에 썼기 때문에 강호에서는 그들을 ‘송강(宋江)’에 비유하게 되었다.

동언고의 딸은 칠석에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교고(巧姑)였다. 그녀는 태어난 후 백일이 되기까지 계속 울기만 했고, 서너 살이 될 때가지 말도 하지 못한 채 걸핏하면 한없이 울기만 했다. 또한 대단히 예쁜 얼굴을 타고났다. 부모는 그녀가 벙어리가 아닐까 염려했지만, 일곱 살 무렵에 ‘소아(素娥)’라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엄마 아빠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고,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도무지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홉 살이 되자 또 두 마디를 더해서 항상 ‘소아낭낭’이라고 중얼거렸는데, 집안사람들은 누구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열세 살이 되자 보름달을 보면 절을 올리면서 ‘소아낭낭’을 끝없이 불러 대는 까닭에 집안에서는 그녀를 ‘바보 아가씨[呆姑]’라고 고쳐 불렀다.

마침 삼월 보름이 되자 그녀는 또 마당에 나와 애절하게 ‘소아낭낭’을 부르며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늙은 할멈이 달래며 말했다.

“바보 같은 계집애! 삼 년 동안 헛되게 절만 올렸을 뿐 달 속의 소아 가운데 누가 너를 거들떠보기라도 했어?”

그러자 또 어떤 아낙이 말했다.

“저 달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소아낭낭 같은 게 있을 수 있겠어? 죽어라 절만 하게 내버려 둬요.”

그때 허공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면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아낭낭이 왔노라! 너의 성의를 가련히 여겨 제도해 주겠노라.”

두 아낙이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오색 난새를 탄 소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중년의 여도사 즉 유모가, 오른쪽에는 젊은 선녀 즉 묘고가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오색구름에 둘러싸여 있었다. 할멈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아낭낭이시여, 부디 자비를 베풀어 우리 딸을 구제해 주소서!”

하지만 교고는 오히려 선 채로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월군이 구름을 내리자 동씨 집안의 남녀노소가 모두 나는 듯이 달려와서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동언고가 교고를 불렀다.

“얘야, 밤낮으로 절을 올리던 소아낭낭께서 오늘 감격스럽게도 몸소 왕림해 주셨는데, 어째서 절을 올리지 않는 것이냐?”

교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동언고가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인간 세상의 평범한 놈이 간절히 청하옵나이다. 선녀님, 초당(草堂)에 오르셔서 제 딸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그래도 저 아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선녀님의 성스러운 칭호를 불렀으니, 그게 헛된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월군이 오색 난새에서 내려서 중당으로 걸어 들어가서 유모와 함께 남쪽을 향해 앉자, 묘고가 비스듬히 뒤쪽에 앉았다. 이어서 동언고 부부가 교고를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자, 월군이 교고에게 물었다.

“너는 진정과 정성으로 그리워했는데, 어째서 나를 보고는 오히려 아무 말도 없는 게냐?”

하지만 교고는 두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할 뿐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동언고가 말햇다.

“혹시 미쳐 버린 게 아닐까요? 소아낭낭이시여, 제발 구해 주시옵소서!”

월군이 유모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본래의 자신을 잊어버리고 심성의 밑바닥에 그저 ‘소아’라는 말만 남아 있는 모양이니 운영선자(雲英仙子)의 현상(玄霜)이 있어야 지혜를 활짝 열 수 있을 듯합니다. 죄송하지만 한 번 다녀와 주십시오.”

유모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태음낭낭께서 너희 딸을 구하려 하시니 내가 요지에 가서 영단을 가져오마.”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리자 유모는 곧 구름을 띄우고 떠났다. 그러자 동언고가 말했다.

“태음낭낭께서는 천상의 높은 신선이시니 당연히 인간 세상의 익힌 음식은 잡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면서 하인에게 과일을 내 오라고 하니 말린 것과 신선한 것을 포함해서 대략 십여 쟁반쯤 되었다. 동씨 집안의 세 동서가 각기 차를 한 잔씩 받들고 나란히 걸어와 무릎을 꿇고 바쳤다. 묘고가 받아서 건네자 월군이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품질 좋은 무이산(武夷山)의 차로구나. 내 너희에게 복건(福建) 땅의 신선한 여지(荔枝)를 하사하겠노라.”

그러자 동저가 물었다.

“복건 땅은 여기서 수천 리나 떨어진 곳이고, 게다가 아직 여지가 열릴 때까 아닌데, 높으신 신선께서 평범한 저희를 놀리시는 모양입니다.”

동언고가 말했다.

“무슨 헛소리냐! 당장 나와 무릎을 꿇어라!”

그러자 동건이 말했다.

“하나만 맛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일 년 동안이라도 무릎을 꿇겠습니다!”

월군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아예 저들 두 형제더러 가서 몇 개 심으라고 하면 되겠지.”

그러더니 쟁반에 담긴 말린 여지를 집어서 씨를 꺼내더니 입김을 불고, 또 잔에 담긴 무이산의 차를 향해 손가락으로 허공에 대고 신령한 부적을 그린 후, 두 형제더러 왼손으로 받아 뜰 안에 그 씨를 심고, 그 위에 찻물을 부으면서 “태음낭낭께서 분부하나니, 속히 싹을 틔워라!” 하고 중얼거리라고 했다. 두 형제는 기꺼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그들이 찻물을 다 붓자마자 흙 위에 벌써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동저가 말했다.

“신기하긴 한데 언제나 자랄 수 있을까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나무가 한 자 남짓 자라니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여지나무의 잎이 마당을 가득 덮어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곧이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는데, 가지를 살펴보니 어느새 신선한 여지가 무수히 달려 있었다. 당황한 두 형제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자, 월군이 열매를 모두 따라고 분부했다. 동언고 등이 열매를 따니 세 개의 커다란 쟁반에 가득 담겼다. 그들은 그것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월군은 묘고에게 열 알을 주고, 동씨 집안의 가족들에게도 각기 서너 개씩 주었다. 그렇게 나눠주고도 열한 개가 남았는데, 월군이 개중에 하나를 집어 공중에 던지며 호통을 쳤다.

“가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뜰에 있던 여지나무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때 유모가 홀연히 날아왔다. 월군이 일어나 맞이하며 여지를 손으로 바쳤다. 유모는 현상 두 알을 월군에게 건네며 말했다.

“운영 자매가 인사 전하라고 하더구나. 다만 현상을 복용하려면 천상에 있는 연못물을 얻어야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무이산 봉정차(峯頂茶)를 써도 된다고 하더구나.”

“무이산의 차야 여기 이미 있지요.”

그러면서 곧 현상 한 알을 찻물에 녹인 다음, 교고에게 동쪽을 향해 여덟 번 절을 올리고 나서 세 모금 만에 삼킨 후, 눈을 감고 잠시 차분하게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 사이에 유모가 어디서 여지를 구했냐고 묻자, 월군이 사연ㅇ르 설명해 주었다. 유모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신선한 용안(龍眼)을 가져와서 답례로 줘야 되겠구먼.”

사람들이 모두 절을 올렸다. 유모는 다섯 장의 부적을 그리고 마당으로 내려가더니 큰 항아리에 물을 담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 다음 먼저 부적 한 장을 태워서 물 안에 던지고, 또 두 장을 태워서 공중에 던졌다. 그러자 휭휭 소리가 울리면서 공중에서 용안나무 한 그루가 날아 내려와서 항아리 안에 반듯하게 꽂혔다. 유모가 다시 두 장의 영험한 부적을 태우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잘 익었다. 그 즉시 사람들을 시켜서 따게 하니 두 개의 쟁반에 가득 찼는데, 여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눠주었다. 그 사이에 여지나무는 점점 작아지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동씨 집안의 남녀노소는 모두 “살아 계신 부처님!”이라며 칭송했다.

그 모습을 본 묘고가 ‘나만 혼자 술법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지.’ 하는 생각에 곧 수박씨를 한 줌 손에 쥐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도 복건 땅의 신선한 과일을 맛보게 해 드릴까요?”

동언고 형제가 모두 절을 올리자, 묘고가 소매에서 많은 감람을 꺼내어 집안사람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것을 입에 무니 작고 납작하며 딱딱했는데, 뱉어내고 보니 수박씨로 변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본래 감람이었다. 그러자 동건이 말했다.

“이 선녀께서 나를 놀리시는구나!”

동언고가 무릎을 꿇고 월군에게 물었다.

“어째서 변화시키는 방법이 모두 다른지요?”

그러자 유모가 대답했다.

“우리 둘이 쓰는 것은 모두 신통력이지만, 저 아이가 쓰는 것은 술법이라서 돌을 가리키면 금으로 변하지만 결국 본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때 교고가 월군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소아낭낭이시여, 이제야 뵙게 되었사옵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말하더니 결국 대성통곡을 했다. 월군과 묘고도 모두 눈물을 흘리자, 유모가 말했다.

“네가 이제 옛 주인을 찾았으니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냐? 울지 마라!”

사람들이 모두 달래자 교고는 겨우 울음을 멈추었다. 묘고가 교고를 부축해 일으키고 자기 옆에 나란히 앉혔다. 동언고 등이 절을 하며 어찌 된 사연인지 묻자, 월군이 이렇게 읊었다.

나는 본래 달나라 광한전의 주인으로
반도회에 간 적이 있지.
남해 관음보살과 같은 자리에서 강연을 들었고
요지 서왕모와 함께 술잔을 나누었지.
다만 황금계단에서 못된 별자리를 건드려
신선 궁궐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전생했지.
지금은 구천현녀께서 친히 도를 전수하셔서
천지간의 전쟁과 재앙을 주관하게 하셨지.

我本廣寒月殿主, 曾赴蟠桃會上來.
南海大士同講席, 西池王母共傳杯.
只爲金階參惡宿, 遂辭玉殿轉凡胎.
而今玄女親傳道, 掌握乾坤兵劫災.

유모가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묘고는 소영선자이고 교고는 한황선자로서 모두 당나라 궁전의 시녀였지. 태음낭낭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때 너희 둘이 모두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아직 상제의 칙지를 받지 못했기에 함께 올 수 없었지. 소아낭낭은 너희 둘에게 천손이신 직녀낭낭에게 가서 전생하게 해 달라고 청하라고 했는데, 소영선자에게만 전생이 허락되었지. 그런데 한황선자가 주인을 그리는 마음이 깊어서 밤낮으로 슬퍼하며 보고 싶어 하는 바람에 오기(五炁)가 모두 사라져 버렸어. 그러나 달나라 궁전의 일을 담당하던 비경선자(飛瓊仙子)가 네 정성을 가련히 여겨서 근처의 인연이 있는 집안에 태어나도록 해 주었지. 그래서 너를 제도하려고 온 것이야. 다행히 예전의 근기(根基)가 아직 남아 있어 ‘소아낭낭’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평범한 인간이 전생했다면 아마 바보가 되었을 게다.”

전후 상황을 이해하게 된 교고가 월군과 유모, 묘고에게 다시 절을 올리며 시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월군이 말했다.

“네 마음이 이렇게 진지하고 절실한데 어찌 시녀로 삼겠느냐? 나도 너를 동생으로 여길 테니, 너는 묘고를 언니로 생각해라. 이후로는 다시 옛날처럼 소영과 한황이라고 부르겠다.”

동언고 등이 무릎을 꿇고 여쭈었다.

“태음낭낭이시여, 지금 계신 곳은 어디이옵니까?”

유모가 대답했다.

“포대현이지. 신선 세계에서 본래 성이 당씨였기 때문에 인간 세계로 내려올 때에도 당씨 집안에서 태어난 거지.”

사람들이 일제히 말했다.

“알고 보니 제남 태수를 제거하신 살아 계신 보살이셨군요! 온 천하가 성스러운 칭호를 부르며 칭송하고 있사옵니다. 하찮은 저희 가문에서 이렇게 보살님의 고귀한 옥용(玉容)을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옵니다!”

유모가 말했다.

“태음낭낭은 중원의 여주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황이 너희 집에서 태어났으니, 인연이 정한 바에 따라 너희들 모두가 이 분을 보좌할 운수를 타고난 것이야.”

동언고는 무척 기뻐하며 다시 아뢰었다.

“제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또한 대단한 협객입니다. 완력이 누구보다 뛰어나서 예순 근이나 나가는 큰 칼을 씁니다. 이름은 빈홍(賓鴻)이라고 합니다. 그의 형 빈안(賓雁)은 승려들과 널리 교유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빈선문(賓善門)’이라고 부릅니다. 그에게는 어려서 이름이 단고(端姑)라고 불리던 딸이 있는데, 요괴에게 미혹되어 대낮에는 의식을 잃고 있다가 밤이 되면 깨어나 요괴와 시시덕거리다가 동침하기 때문에 지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말라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승려와 도사를 모셔다가 요괴를 내쫓으려 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태음낭낭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그 아이의 목숨을 구해주시고 빈홍을 부하로 거둬들이시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따를 것이옵니다.”

월군이 말했다.

“그들 형제를 이곳으로 불러오너라. 성실한 마음이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동언고는 즉시 셋째 동언창에게 속히 다녀오라고 했다. 그러자 월군이 동언고에게 물었다.

“그대의 부하는 몇 명이나 되는가?”

“쓸 만한 이들이 백여 명이고, 고만고만한 이들이 천여 명쯤 됩니다. 빈홍의 부하도 사오백 명쯤 됩니다.”

“두목을 뽑아 책자에 이름을 적어 두었다가 때가 되면 활용할 수 있게 하라.”

잠시 후 빈안과 빈홍이 도착하여 월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자대비하신 태음낭낭이시여!”

그들이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자 월군이 요괴의 사건에 대해 물어보고 나서 말했다.

“오늘 밤에 그놈을 없앨 수 있을 게다.”

그리고 빈홍 등에게 말을 타고 앞장서게 한 다음, 월군은 난새를 타고 천천히 공중을 날아 따라갔다.

빈안의 집에 도착해 보니 그의 딸은 정신을 잃고 쓰러질 듯 취한 듯 비틀거렸다. 온 가족이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구해 달라고 간청하자, 월군이 말했다.

“그대의 딸은 이미 골수가 말아서 버렸다. 하지만 딸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영단인 현상을 한 알 주겠노라. 지금은 잠시 다른 곳에 숨겨 놓고, 내가 요괴를 항복시킨 후에 먹이도록 하라.”

월군은 단고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침실에 누워 있었다. 막 날이 저물 무렵에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창밖에서 불어 들어왔다. 그리고 하얀 얼굴의 문사가 단정하게 앞에 서서 소리쳤다.

“사랑하는 누이, 오늘 밤은 왜 침대에 누워 있지 않는 게요?”

그러면서 허리를 숙이고 다가와 껴안으려 했다. 월군이 그 틈을 이용해서 단번의 그의 귀를 잡고 땅바닥에 누르고, 왼발로 목을 밟은 채 입 안에서 푸른 단환을 뱉어냈다. 푸른 단환이 빙빙 돌며 아래로 떨어지려 하자, 그 요괴도 제법 영통한시라 그것이 신령한 검인 줄 알아보고 고함을 지르며 애원했다.

“제가 이미 팔백 년이나 수련했으니, 목숨을 살려 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본색을 드러냈는데, 알고 보니 미후(獼猴)라는 원숭이였다. 월군은 그놈이 도망칠까 염려하지 않고 놓아주며, 중당으로 따라 들어오라고 호통을 쳤다. 보검도 공중을 날아서 따라 나오니, 빈홍 등은 모두가 깜짝 놀랐다. 월군이 미후에게 호통을 쳤다.

“이 못된 짐승! 규방 처녀를 더럽혔으니 목을 쳐야 마땅하도다!”

미후가 전전긍긍 떨면서 말했다.

“한 마디만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암수 한 쌍이 아미산(峨嵋山)에서 도를 닦았는데, 암컷이 숲 밖에 나가 놀다가 당나라의 천사(天使) 고역사(高力士)에게 붙잡혀 현종(玄宗) 황제께 바쳐졌습니다. 양귀비께서 무척 아껴서 벽옥(碧玉)으로 만든 고리를 목에 채웠습니다. 나중에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이 일어나자 암컷은 도망쳐서 자은사(慈恩寺)에 숨어서 노승에게 귀의 하여 몇 년을 지나다가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 버렸습니다. 대종(代宗: 763~779 재위) 때에 손각(孫恪)이라는 벼슬아치가 영남(嶺南) 지역에 부임하려고 부인과 함께 협산사(峽山寺)를 지나는데 마침 노승이 절에 있었습니다. 노승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옥가락지 하나를 바치고 고개를 조아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옛 반려가 그립지만 이제 영원히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긴 휘파람을 불면서 숲의 나무 꼭대기로 뛰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 원숭이는 각지를 떠돌며 저를 찾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결국 원나라 말엽에 우울하게 죽었습니다. 지금의 단고 아가씨는 바로 제 원숭이 아내가 전생한 몸이라서 과거의 인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찾아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귀신도 저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월군이 그 얘기를 들어 보니 역사서와 지방지(地方志)에 모두 기록된 것인지라, 어쩌면 전생의 인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확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다그쳤다.

“못된 짐승 같으니! 네 소굴은 어디 있느냐?”

“태백산(太白山) 반괴동(盤槐洞)에 있습니다.”

“틀림없이 일당이 있으렷다! 잠시 목숨을 살려 줄 테니 어서 앞장을 서라. 내 친히 그 동굴에 가 봐야 되겠다.”

미후가 단숨에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자 월군이 빈씨 집안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 난새에게 쌀을 한 되 남짓 먹여 주기 바란다.”

그런 다음 구름을 타고 미후를 따라갔다. 미후는 벌써 멀리 가 있었지만 가볍게 따라잡았다. 동부(洞府)에 도착한 미후가 도망치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월군은 어느새 그놈 머리 위에 있었다. 미후는 그대로 미끄러지듯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동굴은 바위절벽 중간에 있어서, 동굴로 들어서자마자 두세 길 정도 아래로 떨어졌다. 동굴 입구에는 커다란 홰나무가 하나 있는데, 구불구불 맴돌 듯 무성한 가지가 동굴 입구를 가리고 있어서 예로부터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월군이 신령한 광채를 운용하여 안쪽을 비쳐 보니 수많은 원숭이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마치 누군가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이 못된 짐승이 제 집에 도착하니 간덩이가 부어서 오히려 나를 암습하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신통력을 좀 보여주마!’

그리고 곧 산꼭대기로 올라가 아래를 향해 앉으니 갑자기 돌벼랑이 쩍 갈라지면서 그대로 동굴 바닥까지 이어져 굴이 굽어지는 곳까지 이르렀다. 동굴 천정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것을 본 원숭이들은 너무 놀라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늙은 놈과 젊은 놈을 가리지 않고 삼사십 마리 원숭이들이 줄지어 무릎을 꿇었다. 월군이 호통을 쳤다.

“이 못된 짐승! 목숨을 살려 주었더니 오히려 못된 마음을 품어? 이번엔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미후가 필사적으로 둘러댔다.

“아닙니다! 저는 자손들을 이끌고 동굴 밖으로 나와 영접하려 했을 뿐, 절대 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황급히 뛰어올라 구름을 타고 내빼면서 내게 길을 인도하지도 않았으니, 분명 도망치려는 생각이었을 게다. 그러다가 다급히 동굴로 달려 들어가 원숭이 무리를 매복해서 나를 함정에 빠뜨릴 속셈이었겠지. 《춘추(春秋)》에도 군주를 시해하려는 마음을 품으면 실제 시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처벌한다고 했으니, 네 죄는 마땅히 목을 쳐야 할 것이야!”

그러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난새가 장식된 허리띠를 던지니, 그것은 순식간에 미후의 온 몸을 결박하여 점점 더 세게 조이기 시작했다. 미후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애원했다.

“보살님, 살려주십시오!”

다른 원숭이들도 모두 둥글게 줄을 지어 무릎을 뚫었다. 이에 월군이 말했다.

“내가 지금 이 원숭이에게 혼찌검을 내려 하는데 너희들이 내 대신 매질을 하겠느냐?”

“예!”

월군은 곧 동굴 밖에서 굵은 버드나무 가지 몇 개를 꺾어 오라고 하고, 미후를 향해 꾸짖었다.

“잠시 참수형은 보류해 두마. 하지만 도망친 죄만 하더라도 곤장 백 대는 맞아야 마땅해!”

이에 십여 마리 원숭이들이 교대로 매질을 하니, 미후는 양쪽 종아리에 피가 철철 흐르고 온 몸을 묶은 오라가 뼈에 땋을 듯이 조여 오는지라, 통곡하며 애원했다.

“아이고, 죽겠구나! 보살님, 자비를 베푸시어 저를 문수보살의 코끼리나 보현보살의 사자, 현성이랑신(顯聖二郞神)의 개, 현제조사(玄帝祖師)의 귀사(龜蛇)처럼 거두어 주시옵소서. 보살님 휘하에 귀의하여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행하고 또한 정과(正果)를 얻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

“이제 조금 진심이 보이는구나.”

그러면서 월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오랏줄이 풀어졌다. 미후는 온 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 그저 앞으로 기어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다. 월군은 그놈의 머리에 손을 얹고 계율을 내리면서 ‘마령(馬靈)’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후로 진정한 마음으로 귀의하여 오로지 동굴 안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도록 하라. 조만간 너희를 발탁하여 일을 맡길 것이니라!”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날아 나오자, 마령이 원숭이 무리를 이끌고 엎드려 전송했다.

월군이 곧장 빈씨 집안으로 가니 오색 난새는 아직 쌀을 쪼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난새가 왜 곡식을 쪼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사실 그놈은 수탉이 변한 존재이니 쌀알을 먹이는 것이지요. 바로 천서 제7권에 들어 있는 ‘감정이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變化有情之物]’ 오묘한 방법을 써서 변화시킨 거랍니다. 아무튼 빈안의 집안에 있던 남녀노소가 모두 절을 올리며 미후의 일에 대해 여쭙자 월군이 대답했다.

“이미 동굴 안에 가둬 두었소.”

빈홍이 또 무릎을 꿇고 작은 성의라며 은 천 냥을 바치자 월군이 말했다.

“이걸 어찌 받을 수 있겠소? 듣자하니 그대가 큰 칼을 잘 다룬다고 하던데, 백 명의 제자를 뽑아 이 기예에 정통하도록 가르쳐 주시구려. 나중에 내가 따로 그들을 쓸 데가 있소. 이것으로 이 일에 대한 보수를 치른 셈으로 칩시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이백 명도 길러 낼 수 있습니다.”

월군은 곧 난새를 타고 느긋하게 떠났다. 당시에 만다니 또한 동가장에 도착해 있어서 곧 유모와 소영, 한황과 함께 나와서 무릎을 꿇고 월군을 맞이했다.

“만 사부님, 때 맞춰 잘 오셨어요! 수고스럽지만 한황에게 술법을 좀 가르쳐 주셔요. 소영이도 이곳에 함께 남아 있으렴.”

그런 다음 동언고에게 분부했다.

“그대도 부하들에게 개들의 무예를 익히게 하여 장수와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두시오!”

“예!”

월군이 곧 유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노매 등에게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유연이 말했다.

“그렇게 영험한 원숭이라면 현녀도원의 문지기로 삼아도 되겠군요. 당나라 때의 시에도 ‘말귀 알아듣는 늙은 원숭이가 새벽에 지게문을 여네.[解語老猿開曉戶]’라고 했잖아요?”

그러자 노매가 말했다.

“도원에 단고(端姑)도 있잖아!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흰 원숭이가 오래도록 천서가 들어 있는 동굴 지키고 있구나.[白猿長守洞天書]’ 이렇게 되어야 해.”

월군이 말했다.

“그러구나! 이 동굴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으니, 이 금은보화들과 병기(兵器)들을 동굴로 옮겨 놓고 마령에게 지키라고 하면 되겠구나. 이 작은 성 안에 두기엔 너무 불편해.”

유모도 그 말에 동의했다. 이에 노매 등에게 옮길 것들을 정리해 꾸리게 하고, 신령한 병사와 역사(力士)들을 불러 공중을 날아 운반하도록 했다. 월군은 유모와 함께 동굴로 가서 원숭이들에게 물건들을 잘 정리해 놓도록 지시했다. 그 동굴의 끝에는 쟁반만 한 크기의 구멍이 있어서 햇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우물과 같아서 ‘바람구멍[風穴]’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것은 속을 알 수 없이 구불구불 굽어서 동굴 입구와 통해 있기 때문에 바깥바람이 안으로 불어 들어오는데 대단히 건조하고 깨끗했다. 월군은 또 마령에게 몇 마디 당부를 하고 유모와 함께 저번에 쪼개 놓은 구멍을 통해 동굴 꼭대기로 날아 나갔다. 그리고 산을 옮겨서 이 굴을 눌러 놓은 다음 집으로 돌아갔으니, 바로 이런 격이었다.

관청에서 구한 십만 냥의 금은을 오늘 숨겨 놓았으니
훗날 의로운 병사 삼천 명의 군량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今日安放著贓官十萬金銀, 他年好作義士三千兵饗.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