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부터 초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식초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글을 쓰려니 압박감에 시큼한 위산이 속에서 올라와서도, 그렇다고 특별히 식초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딱히 이유라면 그저 처음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느꼈던 낯선 것들의 목록 가운데 식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1997년 여름의 베이징은 매우 건조하고 덥고 먼지 가득한 대도시와 시골 장터 그 중간 어디 즈음의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이 무렵 나는 석사논문을 끝내고 칭화대학 남문 부근 선배 하숙집에 잠시 기생하고 있었다. 인심 좋았던 하숙집 아주머니는 그저 밥 한 그릇 더 담으면 된다고 끼니를 챙겨주었으나 이것도 되풀이 되니 부담스러워져 종종 아침은 새벽부터 길가에 나온 좌판에서 선배와 함께 해결하였다.
좌판에서 파는 것들은 대개 요우탸오라고 불리는 꽈배기와 덥힌 두유 그리고 훈둔이라고 하는 만둣국(완탕)이었다. 특히 훈둔의 맛은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있어 매우 즐겨 먹었다. 하지만 남이 먹던 작은 그릇을 그저 물이 담긴 큰 플라스틱 함지에 한 번 담갔다가 다시 떠주는 비위생적인 환경에 맛있게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는 내게 검은 액체가 담긴 작은 종지 하나를 건넸다.
“이걸 마시면 식도에서 위까지 있는 잡균들이 다 죽는 기라.”
“뭐에요? 간장이에요?”
“아이다. 중국식초다. 이거 건강에 좋은 기다.”
처음 맛본 식초는 시큼, 달달하며 산초향이 나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맛이었다.
‘그래 코브라의 독처럼 내 속의 세균들을 모두 쓰러버려라.’
나는 아직도 그 때 물갈이와 배탈이 나지 않았던 것이 검은 빛의 식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산둥 옌타이에서 식사를 하려고 맛집으로 소문난 초어 훠궈집을 간 적이 있다. 잉어와 비슷하게 생긴 초어는 풀만 먹고 자라서 잉어와 달리 깨끗하다는 것이 훠궈집 주인장의 이야기. 처음 먹는 생선 샤브샤브였지만 느끼하지 않고 비린내도 없는 것이 먹을 만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생선가시였다. 평소에도 대충 씹어 넘기는 습관 탓에 이 날 민물생선의 제법 큰 가시가 내 목에 박힌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주인장에게 가시가 목에 걸렸다고 하니 주인장은 검은 액체를 한 대접 가져와 한 번에 들이키라고 하였다. 그것은 식초였다. 대접 가득 식초를 두 사발 마시고는 목에서 따끔거리는 생선가시의 이물감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식초가 가시를 녹인 것인지 자못 신기했다. 훠궈집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어 대비해놓은 듯하였다.
칭다오에서 대학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작은 앰플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보건식초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식사 전 소화에 도움이 된다며 식초를 마셨다. 이후 나는 중국에 갈 때면 식초를 사들고 왔다. 한 번은 이 앰플에 담긴 보건식초를 한 박스 사와 세관에 걸린 적도 있었다. 식초 앰플 포장용기가 백두산 곰 농장에서 생산된 웅담분말의 그것과 비슷해서 생긴 일이었다.
식초는 사실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라고 하여 땔감柴, 쌀米, 차茶, 기름油, 간장醬, 소금鹽과 함께 중요하게 여겼던 생활필수품이었다. 서주西周시기부터 만들어진 중국의 전통 식초는 이후 각 지역에 생활환경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되었다.
중국의 식초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산시山西 타이위안太原 칭쉬현淸徐縣의 숙성식초老陳醋, 장수江蘇 전장鎭江의 전장식초鎭江香醋, 쓰촨四川 랑중閬中 바오닝진保寧鎭의 바오닝식초保寧醋, 푸젠 福建 취안저우泉州 융춘현永春縣의 푸젠융춘숙성식초福建永春老醋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산시성의 숙성식초로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산시성 숙성식초山西老陳醋는 수수, 보리, 완두콩 등의 곡식과 밀기울, 쌀겨 등을 찌고 발효시키고 훈연하고 적시고 햇볕에 말리는 과정으로 통해 빚는다. 산시성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 식초를 물에 타서 음료처럼 마신다. 산시성 사람들이 식초를 애용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먼저 산시성은 석탄 산지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석탄을 연료로 사용했고 석탄이 연소 중에 생긴 일산화탄소는 인체에 매우 유해하였다. 식초를 마시면 이러한 연탄가스의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산시성의 물에는 염기성 물질이 많이 녹아있는데 식초는 체내의 다량의 염기를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세 번째 산시지역은 잡곡 특히 국수를 주식으로 하는데 식초는 면요리에 다양하게 사용되어 식욕을 높일 수 있었다.
네 번째 산시숙성식초는 살균의 효능이 있다. 적갈색의 빛깔을 지니고 있는 산시숙성식초는 이밖에도 아미노산, 유기산, 탄수화물, 비타민 등이 풍부해 혈관의 경화를 방지하고 동맥 경화를 일으키는 혈중 지방 성분인 트리글리세리드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산시숙성식초에 짝퉁이 없을 리 만무하다. 양조식초에 빙초산을 섞고 여기에 색소나 방부제를 넣은 가짜 산시숙성식초가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되어 종종 뉴스에 크게 보도된다. 이러한 식초를 합성식초-勾兑醋, 配置醋, 配製醋라고 불린다-라고 하는데 사실 이 합성식초는 중국식품법에 따르면 합법적인 것이다. 양조식초 50%를 기반으로 하고 공업용 빙초산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러한 합성식초는 전통방식으로 만든 숙성식초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원가를 낮춰 대량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합성식초는 산도 6도에 도달하기 어려워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어 대개 벤조산나트륨 등의 방부제를 첨가해 품질을 유지한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판매하는 식초의 산도는 3.5~6도이고 4.5도 이상의 산도를 가진 것은 숙성식초라고 부를 수 있다. 숙성식초는 어떠한 방부제를 넣지 않지 않고 오래 두어도 변질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오래 묵을수록 품질이 좋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방부제 및 식품첨가물을 넣고 유통기한이 표기되어 있는 식초는 진정한 의미의 숙성식초라고 부르기 어렵다.
유통기간이 없는 오래 묵힌 식초는 원칙적으로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그러나 집에서 보관하는 것과 식초공장에서 보관하는 방법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개봉하지 않은 식초라고 할지라도 온도와 같은 조건의 변화에 따라 식초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초가 혼탁해졌거나 침전물이 생기고 맛이 이상해졌다면 식용으로 적당하지 않다.
산시숙성식초를 만드는 회사 가운데 유명한 곳은 둥후東湖, 수이타水塔, 즈린紫林, 닝화푸 寧化府 등의 4개 회사이다. 이 가운데 둥후는 청 순치제때 식초공방이었던 메이화쥐美和居를 비롯한 등의 21개의 식초공방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회사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둥후라는 자체 회사 이름 외에 회사의 전신인 메이화쥐美和居를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수이타는 산시성 식초 회사 가운데 가장 크고 생산량이 많은 곳이다. 즈린은 상대적으로 영세한 회사지만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회사로 알려져 있다. 닝화푸는 품질과 평판이 가장 좋고 많이 알려진 회사이다. 이위안칭益源慶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닝화푸는 본래 명대 주원장의 세 번째 아들이었던 주강朱綱이 산시 타이위안에 분봉된 후 다시 그의 아들 주지환朱濟渙 닝화왕寧化王으로 분봉되어 살던 왕부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국수를 만들고 식초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닝화푸를 회사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브랜드 이름인 이위안칭은 공방의 이름이었다.
식초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수당가화隋唐嘉话》에 나오는 당태종의 이야기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태종은 방현령房玄齡의 보좌가 고마워 그에게 미인들을 보내 첩으로 삼게 하였다. 그러나 공처가였던 방현령은 황제의 뜻을 어길지언정 부인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황제가 이를 알고 방현령의 부인을 불러 첩을 들이는 것을 권하였으나 방현령의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거부하였다. 체면이 상한 황제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질투심을 버리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하였으나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황제가 독주를 가지고 와서 그 자리에서 들이킬 것을 명하니 방현령의 처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 하지만 그것은 독주가 아니고 식초였다. 태종은 탄복하며 나도 이렇게 방현령의 부인이 두려운데 방현령 자신은 어떻겠는가 하며 명을 거두었다. 식초를 먹는다吃醋는 말이 질투하다嫉妬와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산시성 숙성식초를 구입할 때 유의해야할 점을 밝히면서 이글을 끝맺으려 한다.
1.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식초는 사지 않는다.
2.식품첨가물이 있는 식초는 구입하지 않는다.
3.산도가 6도 이상의 식초를 구입한다. (표기되어 있지 않다면 대부분은 4,5도 이하이다)
4.닝화푸나 둥후의 제품이 비교적 믿을만하다.
5.침전물이 보이는 제품은 구입하지 않는다.
6.식초를 흔들어 거품이 생기게 하고 그 거품이 금방 사라져야 한다.
7.지나치게 저렴한 식초는 구입하지 않는다.
8.공복에 식초를 마시지 않는다. 식후 최소 한 두 시간이 지난 후 물로 희석해서 마셔야 한다.
by 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