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세언型世言 제5회 1

제5회 음부는 남편을 배반하여 죽임을 당하고,협객은 성은을 입어 사면을 받다
淫婦背夫遭誅, 俠士蒙恩得宥

고기 배속의 검, 바람을 가르는 칼날
화음의 점판에 빛은 일고
상자 속 때때로 교룡의 울음소리
세상의 불의를 없애려 하네
저 박정한 여자를 겁간하였으되
청쇄향을 아끼지 않네
부끄러움도 잊고 손수건을 흔드네
은정에 차마 본 남편을 잊으랴
의롭지 못함은 양미간을 솟구치게 하고
붉은 핏방울 비처럼 떨어지네
홍안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고
단두에 백설같은 가슴은 노한다
무고하게 재난을 당함을 탄식하니
칼과 족쇄 실로 슬프도다
살인하고 남을 대신 죽게 하다니
하늘의 도리는 이제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무릎 꿇어 간절한 마음을 호소하고
목을 늘어뜨려 죽음을 기다리네
의협심은 성군의 동정을 사니
혁혁한 명성 기록할 만하다

옛날 심아지가 <풍연가>를 지었으니, 이 풍연은 당대 어양 사람이다. 그는 일찌기 어양 아장(하급군관) 장영의 처와 사통하였다. 어느날 둘이 그곳에서 정을 통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장영이 돌아와 풍연이 얼른 일어나 침대 뒤에 숨었으나 저도 모르게 두건을 침대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장영이란 사람은 술꾼이라 그때 이미 잔뜩 취해 의자 하나를 잡아당기더니 쿨쿨 잠이 들어 보지 못하였다. 풍연은 그가 깨어나 두건을 발견하게 되면 부인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두려워 소리를 내지 못하고 손짓으로 가리켜 부인으로 하여금 두건을 치우도록 하였다. 그런데 부인이 잘못 알고 침대맡의 패도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풍연이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정사로 허둥대는 모습이 붓끝마다 그림같다>

“세상에 이렇게 악독한 여자도 있는가 결발부부가 터럭 만큼의 정도 없단 말인가? 도리어 나더러 그를 죽이라 하다니? 내가 먼저 이 음부를 제거하리라!”

손이 올라가는가 싶더니 칼이 떨어지며 부인을 베어 죽이니 선혈이 낭자하다. <시원하도다> 장영은 그때까지도 취하여 알지 못하였다. 풍연은 두건을 찾아가지고 갔다.

오경이 울렸을 때 장영은 술이 깨어 차를 달래 먹으려는데 아무리 불러봐도 반응이 없었다. 날이 밝아서 보니 온통 핏자국인데, 그의 처는 이미 피살당한 뒤였다. 황급히 거리로 뛰쳐나가 소리쳤다.

“밤에 누군가가 내 처를 살해했어요!”

그러자 이웃 사람들이 말했다.

“자기 집 아내를 찾는데 자기가 모르고 누구한테 소리치는 거요?”

장영이 말했다.

“내가 간밤에 밤새 취했으니 어찌 알겠소?” <우습고도 어리석다>

이웃 사람이 말했다.

“그것도 우습군! 그래 한방에 있으면서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깨지 못했단 말이오? 분명 당신이 죽이고 잡아떼는 게지!”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포박하여 범양 가절도사에게 압송하였다. 절도사는 사람 목숨이 걸린 중대한 사안인데다 흉악범이 애매모호하므로 절도추관에게 보내 취조하게 하였다.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니 장영은 허위자백하지(불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풍연이 알고는,

“이런 멍청한 관리가 다 있나.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장영더러 목숨을 대신하란 말인가? 분명 내가 죽인 것이야!”

하고는 가절도사에게 가서 자수하였다. <도량 큰 상공이라>

가절도사가 말헀다.

“대장부로다,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장영을 놓아주는 한편으로 장계를 올렸다.

“풍연은 의분에서 사람을 죽여 매정한 음부를 제거하고, 자수하여 살인을 자백하여 억울한 장영을 구했습니다. 성은으로 사면을 내려주소서.”

아닌게 아니라 당황제는 그를 사면하였다. 당시 심아지가 가사를 지어 그의 기이한 의협심을 노래했다. 후세 사람들도 모두 범양이 옛 연나라 땅인지라 사람들의 성격이 강직하다고 말하고, 또 당대는 옛날과 멀지 않아 풍속이 순박하여 늘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조대에도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영락 년간에 경식이란 자가 있었는데 완평현 사람이었다. 나이는 많지 않아 이십여세로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다. 태어날 때부터 품성이 총혜하고 의기가 강직하며 풍류가 있고 소탈하였다. 그의 부친은 금의위 교위를 하고 있었으나 후에 아버지가 죽자 포교 직을 이어받았다. 머리가 어찌나 영리하고 눈이 밝은지 도둑을 잘 잡았다. 하루는 기반가에서 한 사내가 어린 녀석을 힘주어 때리는 것을 보았다. 그 어린 녀석은 한 산서 손님의 장화를 꼭 붙들고 놓치 않으며 “살려 주세요!”하고 소리쳤다.

이 손님도 애를 써서 사내를 말렸고, 겨우 그 사내를 뜯어말렸다. 사내가 먼저 자리를 뜨고 그 어린 녀석도 가려고 할 때 경식이 말했다.

“꼬마야 잠깐만!”

하며 한손에 붙잡아서는 소리쳤다.

“손님, 장화 속에 뭐 잃어버린 것 없습니까?”

손님이 더듬어 보더니 소리쳤다.

“장화 속에 있던 은자 스무 냥이 없어졌어요!”

경식이 말했다.

“당황하지 마시고 이 녀석에게 달라 하시오!”

수색해 보니 녀석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사내가 이 손님이 물건 사면서 은자를 장화 속에 넣는 것을 보고 이런 사기극을 꾸몄다가, 그에게 발각되어 관가로 넘겨지게 된 것이다. 또 하루는 옥하교 십왕부 앞에서 한 사람이 “밍크 모자를 도둑맞았다!”고 소리치며 그곳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경식은 누가 그랬냐고 물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경식은 멀리서 한 사람이 큰 광주리 하나를 메고 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 물었다.

“광주리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쌀입니다.”

경식이 빼앗아 보니 서너 살짜리 사내아이가 앉아 있고 그 밑에 모자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한 건달이 서기인 체하며 순성문 상방변에서 한 거지를 만났다. 쉰 살 남짓한 나이에 (거지치고는) 퉁퉁하게 살쪄 있었다. 건달은 보자 다짜고짜 그를 껴안고 통곡하였다.

“아이고 할아버지! 그렇게 찾아도 안 계시더니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그 거지는 무슨 영문인 줄 몰랐으나 마음 속으로 헤아렸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잘못된 거 가는데까지 가 보자, 편하게 차와 밥이나 얻어먹게 되면 날마다 손 벌리고 구걸할 필요도 없잖아.”

집으로 따라오니 집에서는 모두 “할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위아래 모두 새옷으로 갈아입히고 좋은 술과 좋은 음식으로 그를 대접했다. 대엿새 지나자 건달이 말했다.

“오늘은 공부 나으리께서 저더러 옷감을 삼사백 량 사오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도 함께 갔다. 재수없으려니까 문을 막 나서자마자 경식과 맞닥뜨렸다. 눈 밝은 경식이 생각했다.

“저 사람 거지가 분명한데 웬일로 말쑥하게 차려 입었을까? 틀림없이 뭔가 있을 거야!”

멀찌감치 떨어져 그를 뒤좇으니 전문의 큰 포목집으로 들어간다. 경식도 자투리 비단 두 자를 끊는 체 하며 이것도 맘에 안들고 저것도 시원찮다고 시간을 끌었다. 날카로운 눈에 그가 한번에 피륙 이삼백 자를 끊는 것이 보였다. 두 녀석중 한 놈은 멜상자를 메고 한 놈은 보석함을 꼭 움켜쥐고 있었는데 먼저 보석함에서 한 봉지에 열냥 하는 눈처럼 새하얀 은덩이를 꺼내 보이는 시늉을 하더니 계산을 약간 변경하였다.

“은자는 여기 맡길 테니 할아버지께서 보고 계세요. 옷감일랑 가지 수마다 몇 벌씩 가져다가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은과 바꾸기로 하지요.”

두 녀석은 보석함과 멜상자를 계산대에 올려 놓고 각기 이삼십필의 옷감을 안고 가려고 하자 경식이 “으흠”하며 다가갔다.

“거지야! 돈이 어디서 났지? 나한테도 좀 보여주게.” <기회를 엿보나 저도 모르게 실기하도다>

한 녀석은 벌써 옷감을 안고 가버렸다. 서기도 가려고 하자 그 거지는 다급해졌다.

“얘야! 이건 공부 나으리께서 비단을 사오라는 관은이야, 그에게 보여 주어라!”

그 서기가 말했다.

“이건 공부어른한테 가서야 열 수 있는 건데 누가 감히 건드립니까? 배짱 있으면 한번 가져가 보시지요!”

하고 옥신각신하니 녀석의 얼굴이 잿빛이 되는가 싶더니 얼른 내빼려 한다.

경식이 말했다.

“가긴 어딜 가! 너 거지를 볼모로 비단을 사기치려는 거지?” <계교를 설파하다>

점주인이 이 말을 듣고 낌새를 채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경식이 말했다.

“여기 여러 사람 있으니 내가 열어봐도 괜찮을 겁니다.”

함을 여니 안에 스무 봉지가 들었는데 봉지마다 돌덩어리였다. 모두들 놀라 웅성거렸다.

“정말 귀신같군!”

그 거지는 그제서야 할아버지로 섬긴 것이 말짱 거짓임을 알았다. 그 건달녀석에게 옷감 이십여 필을 잃긴 했지만 그 나머지는 사기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대단함을 보고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모두들 “세눈깔 경식”이라고 불렀다. 이 모두가 경식의 영리한 점이다. 그런데 그렇게 영리한 사람도 영리한 일을 저지른다.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한편 숭문문 성벽 아래 현녕관 앞에 한 동대머리가 있었는데, 이름을 동문이라 하였으며 호부 아전이었다. 그는 대머리에 누런 수염을 하고 있었으며 목은 쉬고 체구는 왜소하였다. 사람이 워낙 좋아 남의 돈을 사기치는 법이 없었다. 다만 술을 너무 좋아해 저녁마다 바깥에서 술 몇 사발을 들이켜야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곤드레만드레가 돼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는 것이었다. 등씨를 아내로 맞았는데, 미끈하게 빠진 몸매에 오이씨같이 갸름한 얼굴, 버들잎 같은 눈썹, 앵도같이 붉은 입술, 초롱초롱한 눈, 오똑한 콧날, 새순 같은 섬섬옥수, 살포시 꽃받침에 날아 앉는 듯한 앙증스러운 발, 조비연의 사뿐함, 양귀비의 풍만함만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인물이 있었다. <미인이도다> 그 동문은 그녀를 지극히 떠받들어 낮에는 집에 있게 되면 더운 물 찬물 갖다주고, 차를 끓이고 밥을 지었으며, 저녁에는 요 깔고 이불 개고 베게 벼주고 허리를 주물러 주었다. 뭐가 먹고 싶다고 그러면 돈이 없어도 전당을 잡혀서라도 그녀에게 사 먹이려 했고, 어디 가고 싶다고 한마디만 하면 발에 종기가 났어도 기를 쓰고 가려고 하며, 그저 그녀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고자 하였다. 다만 나이가 부인보다 십여 살이나 많아 서른 남짓이었는데, 술이라면 사족을 못써 술만 먹으면 풀어지는 것이었다. 평소 등씨가 그를 꼬드기라도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그만 둡시다, 여보, 오늘 나 관리들 따라다니느라 피곤해!”

그러면 등씨는 “나같으면 따라다니지 않겠네.”

라고 말하면 동문은 혹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늦잠 잘라.”

등씨가 말했다.

“날이 밝으면 내가 깨워줄께요!” <두 가지 모두 거짓이 아니다>

어쩌랴, 제 때 출근할 때가 많고 핑계대고 잠자리를 피하는 때 또한 적지 않으니 등씨가 얼마나 부아가 나겠는가.

하루는 친정집에 돌아갔다가 여자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등씨가 일러바쳤다.

“동문은 술만 퍼마시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만 자.”

“큰 언니가 말했다.

“이건 동생을 고생시키는 거야, 한창 젊었을 때 쾌락을 헛되이 보내는 게 아니겠어?” <무슨 고생?>

둘째 언니가 말했다.

“확실하게 주먹으로 두어 대 쥐어박아. 그래도 안 일어날까!”

등씨가 말했다.

“두들겨 깨워도 핑계대고 어리숙한 체하고 하지 않으려 해.”

큰언니가 말했다.

“그럼 우린 뭣하러 데려왔냐구 묻는거야? 우리가 그를 아예 시골로 보내버릴까!”

둘째 언니가 말했다.

“그가 세우지 못하는데 우리가 두들긴다고 서겠니, 서방을 시골로 내려보낸다 해도 가지 않을 거야. 아예 의지가 될 만한 남잘 하나 불러들이지 그러니!”

등씨가 말했다.

“그 사람은 체면은 있어서 사내인 체하잖아. 어떻게 그짓을 하려고 하겠어?”

큰 언니가 말했다.

“사내 구실 하려고 하면 왜 밤에도 하지 않는 거니? 그가 터놓고 들이는 것을 꺼리면 몰래 불러들이면 되잖니.”

등씨가 말했다.

“어떻게 불러들이지? 언니, 어쩌지, 언니가 동생을 위해서 하나 붙여줘라!”

둘째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불러들일 수 있으면 내가 데리고 놀지 너한테 양보하겠니? 솔직히 너한테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니까 네 스스로 해봐!”

등씨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웃이 몇 집 안되고 젊은이라고 몇 있는 것이 파를 메다 팔거나 채소를 파는 이들로 별볼일 없었고, 집안에 물을 길어다 주는 백씨가 있긴 하지만 나이가 마흔이 가까워 정부로 삼을만 하지 못했다. <백씨에 대해 복선을 깔도다> 그래 어디서 사내를 구할까 하고 있는 차에 마침 금의위에서 경식을 숭문 세무서로 보내 공문서를 찾아오게 하였다. 경식이 성벽 아래를 지나다가 성벽 밑 불거져 나온 작은 벽 밑에서 큰일을 보았다. 마침 등씨가 문앞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불거져 나온 성벽에 한 사람이 보이더니 한 사람이 뛰어넘어가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눈처럼 희멀끔한 얼굴에 눈썹은 푸르고 수염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으며 잘 생긴 데다 젊은이였기에 마음에 쏙 들었다. <묘하도다> 그런데 서울 풍속은 새 것만을 좋아해서 돈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한겨울에 참신한 비단 옷을 맞춰서는 여름이 되면 전당잡히고 다시 무명으로 옷을 맞추었다. 겨울 되어서도 찾을 생각은 않고 다시 새 것을 맞추었다. 그 때문에 언제나 몸은 새옷을 걸치고 있다. 그는 검은색 비단 도포를 걷어올리니 안에 입은 것은 흰 비단 저고리에 흰 비단 바지로 화려하고 사랑스러웠다.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자 길쭉하고 커다란 남자의 물건이 드러났다. 부인은 보고 저도 모르게 실소를 금치 못하며, 얼른 손에 끼고 있던 가락지 두 개를 빼어 소매 속 붉은 비단 손수건에 싸서 경식의 머리 위로 “툭” 던져 경식의 융모자를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 경식이 말했다.

“눈이 멀었나! 왠 누런게 머리에 떨어지는 거야?”

고개를 들어보니 아리따운 부인이 그것도 입을 가리고 문가에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식이 보고 화가 눈 녹듯 스러졌다. <인지상정이라> 얼른 몸을 일으키며 허리띠를 매고 손수건을 주워 펼쳐보니 가락지 두 개였다. 경식이 말했다.

“아니! 이 여자가 날 좋아하잖아!”

다시 그 부인을 보니 아직 저편에 몸을 숨기고 경식을 바라보고 있다. 경식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소매 속에서 은도아(銀挑牙) 한 개를 꺼내 통째 흰 비단 손수건에 싸서 부인의 옆으로 던졌다. 그 부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받았다. 서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배 고픈 사람이 다른 사람이 술과 밥을 먹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 당장 입에 넣을 수 없는 것처럼.

이편의 경식은 관의 심부름을 오래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은 남겨두고 몸만 갈 수밖에 없었다. 저편의 등씨도 눈으로 배웅을 하였다. 영리한 경식을 사로잡아 혼이 몸에 붙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내내 수소문한 끝에 양가집 부인이며 남편은 호부 아전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양가집이라면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겠군.”

밤새 생각한 끝에 말했다.

“내가 내일 가락지를 보내는 척하면서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보자”

저편의 등씨는 등씨대로 그가 도아를 던지고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있음을 알았지만 어디 사는 사람인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저녁에 마음속으로는 경식을 떠올리고 몸으로는 동문을 어루만지며 한바탕 운우지정을 치루어 타는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였다. 아침에 동문을 내보내고 일찍부터 머리를 빗고 문앞에 기대어 바라보았다. 저멀리 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데 어제 그 젊은이 같았다. 그래 거기서 그를 바라보는데 그사람이 후다닥 뛰어들어 왔으므로, 등씨는 얼른 발 안으로 몸을 웅크리며 물었다.

“누구세요?”

발 안으로 한 사람이 반쯤 보이는데 아닌게 아니라 단정하게 차림이었다.

눈은 반강 추수에 흐르고
미간은 한 점 무봉에 펴 있다
귀밑머리는 몽롱하게 비취는데
어느새 향기는 날아온다
발은 다섯 손가락 비추고
신발은 빨갛게 드러나는데 <반신도를 누구나 이렇게 잘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신은 보이지 않아도
벌써 사람의 마음을 끄네.

그는 붉은 입술을 살포시 열며 말했다.

“어르신네 무슨 일이신지요?”

경식은 우스꽝스런 얼굴을 지어 보이며 발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어제 아주머니께서 제게 표식을 주셨기로 오늘 일부러 사례하러 왔습니다!”

발을 멈칫멈칫하며 안쪽으로 넘어 들어왔다. 등씨가 말했다.

“오빠! 조용히 해요, 바깥에 누가 보면 어떻해요!”

이는 경식에게 추파를 던지며 안에 아무도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경식이 말했다.

“그러면 제가 아주머니 대신 문을 걸고 오지요!” <두 사람 모두 영악하게 일을 처리하누나!>

등씨가 말했다.

“오빠! 그러지 말아요.”

경식은 벌써 그녀 대신 문을 닫고 다시 발 안으로 들어왔다. 등씨는 몸을 살짝 피했고 경식이 사납게 달려 들어와 와락 끌어안았고 입술을 가져갔다.

등씨가 말했다.

“자꾸 그러면 소리지를 거예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느새 경식은 혀끝을 그녀의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마악 손을 뻗어 그녀의 속곳을 벗겨 내리는 찰나 문을 미는 소리가 들렸다. 경식은 얼른 달아날 길을 찾았다.

등씨가 말했다.

“오빠 놀라지 마세요, 백씨가 물 길어 온 걸거예요, 잠시 방안에 들어가 계세요!”

하며 경식을 방안으로 데려갔다. 제법 괜찮은 방이었다. 천정은 격자를 했고 측면은 진흙벽인데 모두 면지로 새하얗게 발라놓았으며, 안에는 대나무 침대 하나, 탁자 하나가 놓여 있는데, 탁자 위에는 찻주전자와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를 방안에 밀어넣고 백씨를 보내러 갔다.

백씨가 말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지 눌려서 애꿎은 어깨만 아프네!” <다시 한번 백씨를 환기시키다>

등씨가 말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다시 눈좀 붙였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지 뭐예요.”

그러면서 덧붙여 말했다.

“백씨, 오늘은 물이 충분한데 어쩌죠, 내일 길어 오세요.”

돌려보내고 아까처럼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오빠, 그런 참새 같은 담력으로 여자를 따먹으려 했어?”

경식이 말했다.

“얼른 숨지 못하면 아주머니에게 누가 될까봐 그랬지.”

와락 껴안으며 그녀의 옷을 벗겼다. 등씨는 그가 옷을 벗기도록 내버려 두며 입을 열었다.

“문드러 죽을 우리 그인 꼭두새벽에 나가서는 밤늦게야 돌아와요, 친척들과도 별로 왕래가 없구요, 이웃들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참견을 안해요. 오빠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요. 그가 오더라도 부엌 앞에 빈 쌀통이 있고, 방안 침대 밑이 무척 넓으니까요. 우리 그이는 술꾼이라 멍청해서 날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은 어느새 옷을 벗고 나란히 캉 위에 올라가 마음껏 즐겼다.

한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한 사람은 땅을 굽어보네
한 사람은 가뿐히 옥같은 다리를 들고
한 사람은 버들처럼 가는 허리를 어루만지네
한 사람은 생글생글 웃으며 돌진하니
옥같은 순이 진흙을 뚫는 듯
한 사람은 파르르 떤다
쌍쌍의 원앙을 높이 드니
마치 금련이 물위를 스치는 듯
한 사람은 굳건한 의기에 의지하니
짓찧고 치달리는 듯
한 사람은 회포를 마음껏 펼치나니
강을 엎고 바다를 헤젓는 듯
싸움은 무르익어 붉은 태양 창을 따라 돌고
흥은 다하니 가벼운 구름 비를 뿌리네.

박재연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