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배진공이 제 짝을 찾아주다裴晋公義還原配 2

배진공이 제 짝을 찾아주다裴晋公義還原配

진주자사가 화를 내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보고서는 황태학은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진주자사의 관사에서 나왔다. 진주에서 머물며 딸내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하였지만 아무런 소식도 얻어들을 수가 없었다. 이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으니 그저 한숨을 쉬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진주자사는 돈 천금을 써서 화려한 복식과 장신구 보석 등을 구입하여 여섯 여아를 치장시키니 그녀들은 마치 선녀와도 같이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악기를 하나씩 맡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하였다. 진국공의 생일이 다가오자 그녀들을 진국공에 보내어 선물로 바칠 심산이 었다. 진주자사는 이를 위하여 치밀하게 준비하고 돈도 엄청 써서 어떻게든 진국공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다. 한데 막상 진국공의 집에 당도하여 보니 각처에서 보내온 미녀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이 여섯 여인들이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눈에 띌 방도가 없었다. 사실 뭔가를 바쳐서 점수를 따려는 자의 말로는 대체로 이러하지 않은가?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면 내 살점이라도 떼 주려고 하지,
가기를 구하고자 천금도 아까워하지 않는구나.
진국공이야 가기를 보고도 그저 심드렁,
진주자사, 만천현령은 부끄러운 줄 알라.

한편 여기서 이야기는 둘로 갈려, 당벽은 회계에서 임기를 마치고 이제 승진을 기대할 차례가 되었다. 황소아도 이제 나이가 찼을 것이니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 혼례를 치르고 그런 다음 서울로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짐을 꾸리고 만천현을 향해서 출발하였다. 고향에 도착한 다음 날 장인인 황태학을 찾아 만났다. 황태학은 당벽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도 남는지라 바로 당벽에게 황소아가 억지로 팔려간 자초지종을 낱낱이 말해주었다. 전후 사정을 다 듣고 난 당벽은 한참은 멍하게 있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보잘것없는 벼슬살이나 한다고 제 아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으니 이제 더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자네는 나이도 젊고 재주도 비상하니 더 좋은 인연을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네. 내 딸이 박복하여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니 자네는 이 일 때문에 너무 상심하여 앞길을 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네.”

당벽이 현령과 자사를 만나 꼭 따져 물을 것이라 하자 황태학은 이렇게 권유하였다.

“아이는 이미 떠나갔는데, 이제 와서 따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게다가 배진공은 지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는 자인데 그 사람 눈 밖에 나는 게 사위의 입장에서도 전혀 좋을 일이 아니라네.”

황태학은 자사로부터 받은 30만 전을 당벽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새로운 인연을 찾는 데 보태 쓰도록 하시오. 정혼할 때 예물로 받은 보석은 소아가 몸에 지니고 있어 지금 돌려줄 수가 없구려. 사위는 지금 한창 나이니 이런 작은 일에 좌절하여 앞날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라오.”

당벽은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하였다.

“저는 이제 나이가 서른밖에 되지 않았는데 저의 평생 인연을 잃고 말았습니다. 부부의 인연은 평생을 두고 맺는 것이고, 작은 이익이나 명예를 탐하는 것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라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당벽은 말을 마치고 대성통곡하였다. 황태학 역시 침통하여 당벽을 안고 우니 둘은 한참이나 울고 나서야 일어났다. 당벽이 어디 그 돈을 받으려 들겠는가, 당벽은 그저 빈손으로 황태학의 집을 나섰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황태학은 황급히 당벽의 집을 찾았다. 황태학은 당벽에게 어서 빨리 장안에 가서 다음 관직을 제수받고 그런 다음 더 좋은 인연을 찾으라고 강권하였다. 당벽은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하였으나 그래도 명색이 장인이라는 사람이 계속 권하니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냥 집에서 이렇게 답답하게 지내느니 차라리 장안에 가서 기분전환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

당벽은 길 떠날 날짜를 정하여 배를 준비하였다. 장인 황태학은 30만 전을 몰래 배에다 갖다 놓고는 당벽의 수행원들에게 당부하였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는 절대 알려주지 말라. 장안에 도착하면 돈 쓸 일도 많을 것이고 또 이 돈으로 다른 좋은 인연을 찾는 데 보태 쓰라고 말씀드려라.”

당벽은 나중에 배에서 돈을 발견하고는 한바탕 감상에 젖었다. 당벽이 수행원들에게 분부하였다.

“이 돈은 황씨 집안에서 딸을 팔고 받은 돈이니라. 한 푼도 손대지 말거라.”

며칠 지나지 않아 장안에 도착하였다. 당벽은 짐꾼을 사서 짐을 들리고 배진공 댁 근처에 숙소를 정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배진공 댁 앞을 지나게 될 터이니 소아의 소식을 탐문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하룻밤을 묵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이부吏部에 가서 그동안 관직을 수행하면서 작성한 고과표와 보고서를 전달하고 검사를 받았다. 숙소로 돌아와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배진공 댁 문 앞에 가서 정황을 살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이렇게 왔다 갔다 하였고 이렇게 한 달이나 지났지만 소아에게 말 한 마디라도 전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배진공 댁을 출입하는 관리들이야 그저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들락날락하였을 뿐이지 자신들이 영문도 모르는 일에 어이 감놔라 대추 놔라 끼어들 수 있었겠는가?

그녀가 팔려간 곳은 누구의 손도 미치지 못하는 바다처럼 넓고 깊은 재상댁,
그녀와 정혼한 당벽도 그녀에게 소식 한 번 전할 수 없다네.

그러던 어느 날 이부에서 인사를 알리는 방을 붙였다. 당벽은 호주녹사참군湖州錄事參軍에 임명되었다. 호주는 남쪽에 위치하여 있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곳이라서 당벽은 좋아라 하였다. 임명장을 수령하고서 짐을 꾸린 다음 당벽은 배를 빌려 장안을 떠났다. 당벽이 동진潼津 쯤에 다다랐을 때 떼강도를 만나고 말았다. 속담에도 ‘물건 간수를 제대로 못하면 도둑이 붙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벽은 장인 황태학에게서 받은 30만 전을 장안을 오가는 길 내내 가지고 다녔으니 자연히 오가는 사람들 눈에 띄었을 것이고 그걸 노리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여 그놈들이 떼를 지어 장안에서부터 당벽의 뒤를 밟아 이곳 동진까지 따라와 당벽이 빌린 배의 사공하고 내통하여 야심한 시각이 되자 일제히 손을 뻗친 것이었다. 그래도 당벽이 아직 죽을 팔자는 아니어서 뱃머리에 나가 있던 참이라 세 불리함을 깨닫고 앞뒤 가리지 않고 즉각 물로 뛰어들어 강둑까지 헤엄쳐가 목숨만은 보전할 수 있었다. 멀리서 강도떼들이 자기들끼리 소리를 지르며 한참을 배를 뒤진다고 법석을 떨더니 아예 그냥 배를 몰고서 가버리니 당벽은 수행원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배에 실어둔 짐들을 모두 잃어버리니 당벽은 그저 몸뚱이 하나 남았을 뿐이다.

지붕에 구멍이 났는데 비는 연이어 내리고,
갈 길은 먼데 맞바람까지 부네.

30만 전과 짐은 그렇다 쳐도 그의 인사자료와 임명장은 이번에 부임하게 되는 증명서나 다름없는 것인데 그게 사라져버렸으니 이제 관직 생활을 할 수 있을 지조차도 걱정이었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어떻게 옴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아 내 팔자여, 나는 어쩌면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고향에 돌아가려고 해도 면목이 없구나. 다시 장안으로 돌아가 이부를 찾아가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려고 해도 여비가 하나도 없구나. 이곳에는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으니 이건 완전히 거지신세로구나.”

차라리 강에 몸을 던져 죽어버리려 하였으나 사나이 한평생을 이렇게 억울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길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생각에 잠기기를 몇 차례 아무리 생각하여도 뾰족한 수가 없어 이렇게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노인네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서 여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는 어인 일로 그렇게 슬피 울고 계시오?”

당벽은 그 노인장에게 자신이 임지로 가다가 강도를 당한 일을 소상히 이야기하였다.

“아이쿠 이런 소인이 높으신 관직에 계신 어르신을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제 집이 여기서 멀지 않은데 우리 집으로 같이 가시지요.”

노인장은 당벽을 안내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다시 인사를 올렸다.

“이 늙은이는 성이 소蘇가입니다. 소인의 아들은 소봉화蘇鳳華라고 하는데 호주 무원현위武源縣尉를 맡고 있으니 바로 나리의 부하가 되겠습니다. 소인이 나리께서 장안에 다녀올 경비를 대어드릴 수 있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 노인장은 즉시 술과 음식을 내어오게 하더니 더불어 새 옷 한 벌도 마련하여 당벽에게 입으라 주었다. 그 노인장은 백금 20냥을 마련하여 당벽에게 경비로 하라고 건넸다. 당벽은 노인장에게 거듭거듭 감사하고는 혼자서 길을 떠났다. 장안에 도착하여 예전에 묵었던 그곳을 다시 숙소로 정하였다. 객사의 주인은 당벽이 임지로 가는 도중에 당한 일을 알고는 진심으로 걱정하여주었다. 당벽은 이부로 찾아가서 자신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하나 이부에서는 당벽의 사정이 비록 딱하기는 하여도 인사자료도 없고 임명장도 없으니 당벽의 말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가 없다하여 당벽이 수중의 은자를 다 동원하여 바치고 간청하였건만 닷새가 가도록 당벽에게 새로운 임명장을 발부하여주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숙소로 돌아오니 자기도 모르게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 때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오는데 한참 때를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의 그 사람은 깃털 장식이 달린 비단 모자를 쓰고 자색 옷을 입고 검정색 신발을 신고 있는 게 약간 낮은 직급의 관리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당벽을 보더니 마주보고서 인사를 올린 다음 당벽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나리는 어디 사람인지요, 여기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그런 거를 뭐 하러 물으시오? 내 사연을 이야기하려면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랄 것입니다.”

당벽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또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혹시 압니까? 저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뭔가 수가 생길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저는 성은 당이요, 이름은 벽이라고 하오. 진주 만천현이 내 고향이라오. 저는 호주녹사참군에 임명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 동진에서 그만 강도를 당하여 경비도 잃어버리고 인사 자료와 임명장마저도 잃어버려 그만 부임도 못하고 있소이다.”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난 것이야 그대의 잘못도 아닌데 그 사정을 이부에 가서 보고하고 다시 임명장을 발급받으시면 되지 않겠소?”

“그렇지 않아도 몇 차례나 가서 사정하였지만 해결이 되지 아니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재상 배진공이란 분은 의기가 넘치고 다른 사람의 곤란한 처지를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분이라는데 그분에게 한 번 찾아가보시지 그러시오.”

당벽은 그 말을 듣더니 더욱 설움이 복받쳐오는 듯,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배진공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마시오. 그는 내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은 사람이라오.”

“아니 그대는 어이하여 그런 말을 하시오?”

“저는 어린 시절 정혼한 여자가 있었지요. 하나 그녀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저도 남쪽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하느라고 혼례를 미루고 있었는데 자사와 현령이 억지로 그녀를 데려가 노래와 춤을 가르쳐서는 배진공에게 바쳐버렸답니다. 나는 그 일 때문에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하고 있소이다. 물론 그 일을 배진공이 직접 한 것은 아니나 배진공이 다른 사람들의 아부를 내치지 않고 받아들였던 까닭에 자사와 현령이 그런 짓을 한 것이니 배진공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오. 그런데 나더러 그런 배진공에게 찾아가 부탁하라는 말이오?”

“그래 그대와 정혼한 여인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대는 그녀에게 예물로 무엇을 주었소이까?”

“그녀의 성은 황이요, 이름은 소아입니다. 내가 예물로 준 푸른 옥 한 쌍을 그녀는 지금도 몸에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허허, 이런 내가 바로 그 배진공의 호위무사로 내실에도 드나드니 내가 그대를 위해 한 번 알아봐 주리다.”

“소아가 배진공 댁에 들어간 다음 그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는데 그대가 그녀에게 내 소식을 전해주고 이 내 마음을 알려주신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아마 좋은 소식이 있을 거요.”

그 노인장은 말을 마치더니 인사를 하고서 떠나갔다. 당벽은 그 노인장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가만히 되짚어 생각하면서 후회하였다.

“저 노인장은 배진공의 심복부하가 아닐까. 주위의 소식을 염탐하러 나온 것일지도 모르는데 소아의 일을 괜히 말해준 것은 아닐까. 내가 배진공을 원망하는 말을 하여서 외려 소아에게 누를 끼칠까 걱정이구나.”

걱정이 앞을 가려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소세를 마치고 배진공 댁으로 달려갔다. 배진공은 오늘 안채에 머물고 집무실에 나오지 않는다 하였으나 문서가 들락날락 여전히 분주하였는데, 당벽이 어제 만났던 자색 옷을 입은 노인장은 도시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배진공 댁 앞으로 달려갔으나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해 질 녘이 되어도 그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은 코빼기도 뵈지 않으니 그저 한숨만 지으며 처량한 심정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당벽이 숙소로 돌아와 등불에 불을 붙이기가 무섭게 하인 장색을 한 두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서는 물었다.

“어느 분이 당벽 참군이시오?”

깜짝 놀란 당벽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감히 나서지 못하는데 숙소의 쥔장이 나서서 되묻는다.

“그대들은 대체 뉘시오?”

“우리는 배진공 나리의 심부름꾼으로 배진공 나리의 명령을 받들고 당벽 참군을 모시러 왔소이다. 배진공 나리께서 당벽 참군에게 할 말이 있다 하오이다.”

숙소의 쥔장이 당벽을 가리키며 대답하였다.

“저분이 바로 당벽 참군이라오.”

당벽은 하는 수 없이 그 두 사람 앞에 몸을 내밀었다.

“나는 배진공 나리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배진공 나리께서 어인 일로 나를 찾으시는 게요? 게다가 지금은 외출복을 벗고 편한 복장인데 어찌 이런 모습으로 배진공을 만난단 말이요.”

“나리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니 부디 지체하지 마십시오.”

두 심부름꾼이 양쪽에서 당벽을 부축하여 쏜살같이 배진공 댁으로 달렸다. 당앞에 도착하여 당벽에게 이렇게 말한다.

“참군 나리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희가 먼저 배진공 나리께 나리가 당도하였음을 보고하겠나이다.”

말을 마치고 두 심부름꾼이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다시 안에서 나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공께서 휴가를 내고 안채에 계신다 하니 어서 안채로 들어가 만나보시지요.”

당벽이 심부름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길 모서리를 지날 때마다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어 마치 대낮같아 역시 재상댁다웠다. 두 심부름꾼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당벽을 안내하였다. 마침내 안채의 작은 방에 당도하니 비단으로 등갓을 씌운 등불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서 배진공은 평상복을 입고 서서 당벽을 맞이하기 위하여 두 손을 맞잡고 읍하며 서 있었다. 당벽은 황망히 바닥에 엎드려 식은땀을 흘리며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였다. 배진공은 어서 일어나라 명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 우리끼리 만난 사이인데, 뭐 하러 그렇게 엎드려 예를 차리시는가?”

배진공이 당벽에게 일어나 앉으라 하였으나 당벽은 감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당벽은 한 차례 더 사양하더니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앉아 배진공을 바라보니 바로 어제 숙소에서 만나 그 자색 옷 입은 노인장이었다. 당벽은 더욱 황송하여 식은땀이 더 났다. 감히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였다. 원래 배진공은 한가한 틈을 타서 장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를 즐겼다. 지난 밤 당벽이 묵던 숙소에 우연히 들렸다가 당벽을 만난 것이었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 황소아라는 여인을 조사하여 불러들여 보니 과연 미색이 출중하였다. 배진공이 황소아에게 여기에 오게 된 내력을 물으니 당벽이 말한 바와 정확히 들어맞았다. 당벽이 말한 그 푸른 옥 한 쌍도 자신의 팔뚝에 차고 있었다. 배진공은 그녀에게 연민의 정이 싹텄다.

“그대와 정혼한 자가 예 와있는데 한 번 만나볼 터인가?”

“제 팔자가 기구하여 이렇게 이별하여 각자 떨어져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 남편을 만나고 못 만나고는 온전히 나리의 소관인데, 제가 어찌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겠나이까?”

배진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물러나 있으라 하였다. 배진공은 조용히 집사를 불러 경비 천관을 준비시키고 아울러 아무런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관직 임명장을 꺼내어 그 이름 쓰는 난에다 당벽의 성과 이름을 적고 그걸 이부에 보내어 당벽의 인사 기록과 당벽이 새로 발령받은 호주참군의 임명장을 다시 새롭게 발급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다음 당벽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당황하고 긴장한 당벽이 이런 사연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배진공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제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도 마음이 짠하였소이다. 내가 사람들이 바치는 선물을 싹 거절하지 못하여 그대 부부의 백년가약의 기쁨을 그르쳤으니 그건 바로 내 죄라 할 것이오.”

당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바닥에 엎드려 아뢰었다.

“소인이 기구한 팔자로 힘든 일을 겪어 어제 나리를 뵙고 험한 말을 함부로 내뱉었으니 정말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그저 나리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만을 바라나이다.”

“오늘 같이 좋은 날 내가 주례를 맡아 두 사람의 혼례를 치러주고자 하오. 내가 경비 천관을 마련하여 이를 부조하며 더불어 나의 미안한 마음을 이 천관의 축의금으로 씻고자 하오. 혼례를 치른 다음에는 임지로 출발하도록 하시오.”

당벽은 황송하고 감사하여 임지로 다시 출발하는 일에 관해서는 감히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안채에서부터 풍각소리가 들려오더니 홍들이 두 줄 서로 마주보고 여자악사 무리가 앞에서 길잡이 역을 하고 혼례를 집례해줄 여인들과 보좌할 여인들이 꽃처럼 아름답고 벽옥처럼 우아하게 차린 황소아를 이끌고 나왔다. 당벽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혼례를 집례하는 여인들이 소리를 지른다.

“신랑 신부는 나와서 식을 거행하도록 하시오.”

혼례를 보조하는 여인들이 붉은색 양탄자를 펴니 그 위로 황소아와 당벽이 서로 마주보고 섰다. 다시 배진공을 향한 다음 네 번을 거듭 절하니 배진공도 자기 자리에서 답례를 한다. 가마가 대령하고 있다가 황소아를 태우고 당벽이 숙소로 쓰고 있는 객사로 출발하였다. 배진공이 당벽에게 어서 객사로 달려가서 혼례를 잘 진행하라고 일렀다. 당벽이 객사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수런대는 소리가 먼저 귀에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비단 상자와 동전 상자가 쭉 열 지어 놓여 있는데, 배진공댁의 두 심부름꾼이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당벽이 숙소로 돌아올 때를 맞춰 가지고 온 것이다. 또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는데, 배진공이 직접 챙겨준 것이다. 그 작은 상자를 열어보니 바로 호주사호참군湖州司戶參軍으로 임명하는 발령장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당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당벽은 그날 객사에서 신혼의 촛불을 밝혔다. 이날의 혼인의 기쁨은 그냥 정혼하였다가 순탄하게 혼인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운대가 맞지 아니하면 잘 차려놓은 밥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운이 맞으면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오.
이제 결혼문제, 임용문제 한꺼번에 다 해결되니,
가슴 쓰리던 일은 이제 다 지난 일.

당벽이 이제 혼인문제, 임용문제가 한꺼번에 다 깨끗하게 해결되고 게다가 천 관의 경비까지 마련되었으니 저 깊은 지옥의 심연에서 저 높은 천상의 세계로 올라간 것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의 힘든 처경을 불쌍히 여기는 배진공의 어진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어이 가능하였겠는가?

다음 날 당벽이 하직 인사를 하러 배진공 댁을 방문하였지만 배진공은 이미 문지기에게 번거롭게 다시 인사할 필요 없으니 들이지 말라고 분부해놓은 터였다. 당벽은 하는 수 없이 그냥 숙소로 돌아와 관대를 다시 챙기고 짐을 다시 꾸렸다. 아울러 장안에서 노복 몇 명을 사서 따르게한 다음 황소아와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가 장인 황태학을 뵈었다. 마른 나무에 다시 꽃이 피듯, 거문고의 끊어진 현이 다시 이어지듯 하였으니 다시 만난 기쁨이 그 얼마나 크랴. 며칠을 묵고 나서 부부는 같이 임지인 호주에 도착하였다. 부부는 배진공의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하여 침향목으로 배진공을 조각하고서 아침저녁으로 그 복을 빌어주었다. 한편 세월이 흘러 배진공의 가문이 더욱 번성하고 자손들이 널리 뻗어나가자 사람들은 모두 이게 다 배진공이 널리 음덕을 베푼 덕이라고들 하였다.

짝을 맺지도 못하고 임지에 부임하지도 못하는 그 쓰라린 심정,
선한 손길의 은혜 입어 위로받고 해결되었네.
은혜를 베푸는 자, 그 선한 자여,
그대의 자손들은 끝없이 복을 받을 거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