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하오陳慶浩 선생과의 대담

신병철(申秉澈 高麗大 中文科 講師) 방문/정리

[진행자의 말] 천칭하오(陳慶浩)선생과의 대담은 타이완(臺灣) 둥우대학(東吳大學)에서 개최한 ‘한국한문소설학술연토회(韓國漢文小說學術硏討會)’(1998년 6월12일~6월13일)의 마지막 날 밤늦게 선생님의 숙소에서 이루어졌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한국한문소설총간(韓國漢文小說叢刊)” 작업에 대한 질문에 비중을 두었다. 이 점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한국한문소설총간” 작업은 한국의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타이완(臺灣)의 둥우대학(東吳大學), 프랑스의 국립과학연구센터와 공동연구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칭하오 선생, 사진 ⓒ 조관희, 2002

신병철 : 선생님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짬을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틀 동안 바쁜 발표회 일정이 이제야 끝났군요. 오늘 대담은 요즘 준비 중이신 “한국한문소설총간”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한국한문소설총간”을 기획하게 된 동기부터 말씀해주시지요.

천칭하오 :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고대 아시아의 각국은 한자를 통하여 공통의 문화권을 형성하였습니다. 그 당시 한문화(漢文化)는 바로 아시아의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한자라는 공통적인 요소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한문소설을 정리, 비교하는 연구 작업을 통해, 현대의 새로운 차원에서 고전 문학 연구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다행히 한국의 장효현 교수와 최용철 교수 등과의 공동 연구로 인해 이 작업은 더욱 내실이 깊어질 것입니다.

천칭하오 선생, 사진 ⓒ 조관희, 2006

신병철 : 한국의 한문소설은 한국 내에서도 자료의 방대함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선본(善本)을 정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까요?

천칭하오 : 물론 한국의 한문소설은 일본과 월남에 비교하면 매우 방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고본소설총간(古本小說叢刊) 작업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노하우와 인적자원은 갖추었으며, 타이완 둥우(東吳)대학교 왕궈량(王國良) 교수 등과 월남의 학자들과 협력하여 베트남(越南) 한문소설을 수집, 교감하여 “월남한문소설총간(越南漢文小說叢刊)” 12권을 간행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츠쿠바 대학의 학자들과 협력하여 현재까지 전해지는 일본 한문소설 전체를 조사하고 정리, 교감하여 “일본한문소설총간(日本漢文小說叢刊)” 10권을 간행하는 작업을 착수하였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베트남, 일본 한문소설에 대한 작업으로 인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병철 : 베트남과 일본의 한문소설총간의 내용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습니까?

천칭하오 : “월남한문소설총간”은 베트남사회과학원(越南社會科學院) 한남연구소(漢喃硏究所)와 공동 협력하여 지금까지 제1집 7권, 제2집 5권으로 출판되어졌으며, 앞으로 제3집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한 “일본한문소설총간”은 츠쿠바 대학 연구진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연구의 일차적 성과는 1996년에 제1집 5권으로 출판되어졌습니다.

신병철 : 한국의 한문소설은 일본과 월남의 한문소설과는 다른 점이 많은데, 특히, 이본(異本) 문제는 어떻게 다룰 예정인지요?

천칭하오 : 한국의 한문소설은 대부분이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 작품에 대한 이본 역시 많이 전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려는 작업은 필사되어 있는 것을 활자화하려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본(異本) 문제는 정확한 연구와 교감을 통하여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특히, 이 문제는 한국 학자들과의 상호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신병철 : 선생님의 경우 한국한문소설 중에서 어떤 작품에 관심을 두고 계신지요?

천칭하오 :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이번에 발표한 『구운기』의 작자 문제입니다.

신병철 : 선생님이 이번 학회에서 발표하신 「『구운기』 및 기타에 대한 논의(論『九雲記』及其他)」에서 말씀하셨던 내용이군요.

천칭하오 : 그렇습니다. 한국의 학자들은 주변의 자료들을 가지고 중국인이 지은 소설이라고 주장하지만, 작품 자체만의 내용과 언어를 본다면 한국인이 지은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천칭하오 선생, 사진 ⓒ 조관희, 2002

신병철 : 미묘한 문제라 할 수 있군요.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어야지 해결될 문제 같군요. 또 다른 작품은?

천칭하오 :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명대(明代) 취유(瞿佑)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 일본의 『가비자(伽婢子)』, 베트남의 『전기만록(傳奇漫錄)』 등의 비교를 통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적 특질과, 개성적인 면모를 살펴 볼 수 있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신병철 : 선생님께서는 현재 프랑스 국립과학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신데, 프랑스에서의 중문학 연구는 어떻습니까?

천칭하오 : 현재 프랑스에서는 고전문학에 대한 연구보다는 중국 현대, 당대 문학 작품에 대한 번역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문학에서 대표적인 학자로는 앙드레 레비(André Lévy) 교수가 있습니다.

신병철 : 선생님께서 한국의 젊은 중문학자들에게 부탁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해주시지요?

천칭하오 : 먼저 한국의 고전문학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즉, 한국 고전문학의 특징과 중국고전문학과의 연관성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신병철 : 끝으로 선생님께서 만약 20대의 나이로 되돌아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면 어떤 부분을 하고 싶습니까?

천칭하오 : 한문학(漢文學) 전체에 관한 포괄적인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즉, 한국, 중국, 일본, 월남 등 지역성에서 벗어나 한자문화권의 전반적인 소산물 즉, 한시, 한문 산문, 한문 소설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신병철 : 대단한 각오이시군요. 아무쪼록 “한국한문소설총간” 작업이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한국의 중문학자들도 우리 고전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천칭하오 : 고맙습니다.

[참고] 천칭하오(陳慶浩; Chan Hing-ho, 1941~ ) 선생 소전(小傳)

『홍루몽(紅樓夢)』 연구가. 일찍이 1978년에 프랑스 빠리 7大學에서 <Etude des Commentaires de Zhi-yen-Zhai Sur les manuscrits du Shitou Ji>라는 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87년에는 서울을 방문하여 한국 고전소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간 바 있다. 지금은 프랑스 국립과학원(Centre National des Recherches Scientifiques)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新編石頭記脂硯齋評語輯校』(聯經出版事業公司, 1979; 증정본, 1986)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曹雪芹手訂一百卄回『紅樓夢稿』的商榷>(香港 『新亞書院學術年刊』 1968년 제10기), <紅樓夢脂評之硏究>(『紅樓夢硏究專刊』 1969년 제5~6집), <胡適之紅學批判>(『紅樓夢硏究專刊』 1970년 제8집), <八十回本『石頭記』成書初考>(『文學遺産』 1992년 제2기), <型世言: 一部佚失了四百多年的短篇小說集>(『中國文哲硏究通訊·2권 4기』 1992년 12월), <型世言的發現和硏究>(『中國時報·人間副刊』 1992년 12월 13일) 등이 있다(12 RUE DUMAS 93800 EPINAY SUR SEINE PARIS, FRANCE).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