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애가 목숨을 바쳐 우정을 지키다 羊角哀捨命全交
손바닥 뒤집듯이 얼굴을 바꾸는 세상인심,
세상만사 경박함 이젠 탓할 수조차 없구나.
관중과 포숙의 가난한 시절의 사귐,
세상 사람들은 그걸 헌신짝처럼 여긴다지
아주 먼 옛날 제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라는 자가 있었다. 관중은 자가 이오夷吾이며, 포숙은 자가 선자宣子였다. 두 사람은 가난한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나중에 포숙이 먼저 제환공 밑에서 출세하여 벼슬을 하게 되자 관중을 천거하여 관중이 외려 포숙보다 높은 자리인 재상에 올랐으나 두 사람은 시종여일 한 마음으로 정치를 펼쳤다. 관중은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전에 세 번 전쟁을 치러 세 번이나 연거푸 지고 도망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 하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세 번 벼슬자리에 나갔다가 세 번이나 그대로 쫓겨났을 때도 포숙은 나를 주변머리 없다고 탓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직 때를 못 만났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포숙은 나랑 대화하면서 한 번도 나를 답답하다고 탓하지 않았다. 그저 매사가 잘 어울리는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랑 포숙이랑 같이 장사를 할 때는 내가 이익을 좀 더 많이 취하더라도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로 몰아붙이지 않았으니 형편이 어려움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자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자는 포숙이로다.”
이러한 이유로 예로부터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로는 늘 관중과 포숙을 꼽곤 하였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두 사람도 정말 우연히 만났다가 의기투합하여 친구가 되고 각자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던짐으로써 만고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춘추시대 초나라 원왕元王은 유가와 도가를 아울러 존중하고 널리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 모아 천하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소문을 듣고서 몰려들었으니 그 수를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서강西羌 적석산積石山에 현자가 하나 살고 있었으니 성은 좌左요, 이름은 백도伯桃라.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독서에 힘써 세상을 구할만한 재주를 길렀으며, 널리 세상 사람들을 편안하게 할 만한 학업을 쌓았다. 어언 사십을 바라볼 나이지만 제후들이 서로 으르렁대고 싸우며 어진 정치를 펴는 자들이 너무 적으며 자신의 강함을 믿고 억지로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서는 여태껏 출사를 미루고 있었다. 나중에 좌백도는 초나라의 원왕이 인의를 숭상하며 널리 현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배낭 하나에다 책을 쑤셔 넣고는 고향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누고서 초나라를 향하여 달려갔다. 이러구러 옹雍이라고 하는 땅에 도착하여보니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이라 비바람이 그칠 줄을 몰랐다. 그 차가운 겨울의 모습을 「서강월」에 담아보자꾸나.
쏴아쏴아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얼굴 살갗을 파고들고,
부슬부슬 가랑비는 옷깃을 적시는구나.
쫙쫙 얼어붙고 눈마저 내리니 동장군의 기세가 이리도 대단하구나,
따듯한 그때가 어찌 이리도 그리울까.
산 빛깔은 늘 어둡고,
햇볕도 안개에 가려 흐릿하구나.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는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며,
어설프게 길을 나선 자들은 후회막급.
좌백도 역시 비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길을 걷노라니 옷이 온통 다 젖어버렸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우는지라 마을이라도 찾아 몸을 뉘일 곳을 찾는 게 상책일 듯 싶었다. 멀리 바라보니 대나무 숲속 깨진 창문 틈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좌백도는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그쪽을 향해 달려가 보니 키 작은 나무 담장이 초가집 한 칸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립문을 밀고 집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집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좌백도는 처마 아래에서 황망하게 예를 갖추고 말하였다.
“저는 서강 사람으로 좌백도라고 합니다. 초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가 예상치 못하고 이렇게 도중에 비바람을 만나 갇히는 신세가 되어 어디 묵을 데도 없는 상황입니다. 저를 하룻밤만 재워주신다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바로 길을 떠나겠나이다. 주인장께 부탁드리나이다.”
주인장은 좌백도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황급하게 답례를 하고 좌백도를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좌백도가 집안에 들어가 보니 책상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그 책상위엔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좌백도는 직감적으로 주인장 역시 선비임을 알아차리고는 다시 인사를 올리려 하니 주인장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뭐 그렇게 예의를 차리실 필요까지야. 아무튼 불에다 옷을 말리시면서 편하게 말씀이나 나누시지요.”
주인장은 대나무로 불을 피워 좌백도의 옷을 말리게 하였다. 더불어 술과 안주를 마련해와 좌백도에게 대접하는데 그 정성과 태도가 너무도 융숭하였다. 좌백도가 주인장에게 이름을 물었다.
“소생은 성은 양이요, 이름은 각애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혼자서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거를 좋아하여 그만 농사도 작파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멀리서 오신 고매한 선비를 만나게 되었으나 형편이 변변치 않아 뭐 대접할 것이 없으니 그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안개 끼고 비 오는 날 쉴 곳을 제공해주시고 더불어 마실 물과 한 끼 식사마저도 해결해주시니 그 은혜를 어찌 잊겠나이까?”
그날 밤 두 사람은 한 방에서 같이 자리를 잡고서 흉중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느라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 날, 날이 밝아 왔으나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다. 양각애는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걸 다 차려내 와서 좌백도를 대접하였다. 더불어 의형제를 맺으니 양각애보다 다섯 살이 많은 좌백도가 형이 되었다. 좌백도가 양각애 집에 머문 지 사흘째 나던 날 겨우 비가 그쳤다.
“아우는 한 나라의 임금을 보좌할 재주와 세상을 경영할 지조가 있으되 벼슬을 구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히기를 원하니 그게 참 안타깝소이다.”
“일부러 벼슬을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뿐이지요.”
“지금 초나라 왕이 세상의 어진 인재를 두루 구한다 하니 아우께서 한 번 초나라 왕을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소?”
“형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양각애는 바로 짐을 꾸리고 노자로 삼을 만한 것들을 준비하여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함께 초나라 쪽을 바라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틀을 채 가지 못하고 또 비를 만나 객점에 발이 묶였으나 얼마 되지 않는 노잣돈마저 다 떨어지고 쌀 한 포대만 달랑 남으니 두 사람이 너 한 번 나 한 번 서로 지고서 비를 무릅쓰고 길을 걸었다. 비는 그치지 아니하고 바람마저 몰아치더니 비는 눈으로 변하여 천지를 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이 어떠하였던고?
바람은 매서운데, 차가운 눈마저,
눈이 바람을 타고 얼음이 되어버리는구나.
풀어헤쳐진 하얀 솜처럼 어지러이 날리는 저 눈발,
하얀 새털이 풀려 하늘에 어지러이 날리는 듯.
하늘엔 이 모양 저 모양의 구름만 한 가득,
어디가 하늘이요, 어디가 길인가?
길이 눈에 숨고, 하늘이 구름에 숨었으니,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모두 사라지고 오직 흰색만이 천지에 가득하다.
절경에 취해 시상을 가다듬는 시인묵객이야 이 경치를 반길 테지만,
길 떠난 나그네는 시름만 깊도다.
두 사람의 발길은 기양岐陽을 지나 양산梁山 길에 접어들었다. 나무꾼에게 물으니 여기서부터 백여 리 동안은 인가도 하나 없고 그저 황량한 광야라 승냥이와 호랑이가 어슬렁거릴 뿐이니 억지로 길을 더 가지 말라 이른다. 좌백도가 양각애에게 물었다.
“아우님 생각은 어떠시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는데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계속 가보기로 하지요, 예서 그냥 말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룻길을 더 가고 밤에 무덤가에서 잠을 청하는데 옷은 얇고 날씨는 추우니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다음 날 날이 새고 보니 눈발이 더욱 거세져 산길은 한 자 정도나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질 지경이었다. 좌백도는 온몸이 얼어 도저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부터 백리 동안은 인가도 없으려니와 우리 식량도 이제 바닥이 나버렸고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상황이오. 우리 둘 중에 한 사람만 초나라를 향해간다면 그럭저럭 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둘 다 가겠다고 한다면 도중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기 딱 알맞은 상황이오. 억지로 길을 가다가 길바닥에서 죽고 말아 풀과 같이 썩어져 버린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아우에게 벗어줄 테니 아우께서 내 옷을 받아 입고, 내 몫의 식량까지 같이 들춰 매시고 힘내서 길을 떠나도록 하시오. 나는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으려니 예서 죽음을 기다리려오. 아우께선 초나라 왕을 만나게 되면 틀림없이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이니 그때 와서 나를 장사지내 주시구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과 저는 비록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지는 않았어도 그 의리와 우애만은 친형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아니한데 제가 어찌 저 혼자서만 길을 떠나 벼슬자리를 구하겠습니까?”
양각애는 좌백도를 부축하여 억지로 일으켜 세워 길을 떠났다. 십리도 채 못 갔을까 좌백도가 다시 말을 꺼냈다.
“눈보라가 이렇게 거세니 어찌 더 갈 수 있겠소? 길가에 쉴 곳이라도 찾아봅시다.”
바라보니 말라비틀어진 뽕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오는지라 그대로 그 나무 밑에 몸을 감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 밑으로 들어가려니 겨우 한 사람 몸밖에는 가려줄 수 없었다. 양각애는 좌백도를 안아서 뽕나무 밑에서 쉬도록 하였다. 좌백도는 부싯돌로 불을 붙여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만들어 추위를 피하자고 하였다. 양각애가 좌백도의 말을 따라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래도 눈에 젖지 않은 나뭇가지를 모아와 보니 좌백도는 온몸에 아무런 옷가지도 걸치지 않은 채 눈발에 그대로 앉아있고 그가 벗은 옷들은 한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양각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형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소. 아우는 일을 그르치지 마시고 내가 벗어놓은 옷을 마저 입고 식량을 마저 들춰 매고서 어서 길을 떠나도록 하시오. 나는 여기서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려오.”
양각애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우리 둘은 모든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로 하였는데 어찌 저만 홀로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둘 모두 여기서 죽어지면 내 뼈는 누가 거둬준단 말이오?”
“그러면 제 옷을 벗어 형님에게 드리리다. 형님이 제 옷을 입고 가십시오. 제가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여 골골하였으나 아우는 아직 젊고 건강하지 않소. 게다가 학문의 깊이 역시 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이니 초나라 왕을 만나면 틀림없이 높은 벼슬을 할 것이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죽는다 한들 무슨 원망이 있으리오. 아우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어서 속히 길을 떠나도록 하시오.”
“형님이 예서 죽음을 맞이하고 저 혼자서 벼슬을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같은 불의한 일은 저는 차마 하지 못하겠나이다.”
“내가 적석산에서 길을 떠나 아우를 만나 평생의 지기를 찾은 듯하여 너무도 기뻤소이다. 아우는 학문이 깊고 깊어 내가 아우에게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권했으나 아쉽게도 이렇게 도중에 눈보라에 길이 막혀 곤경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이 역시 우리의 운명인 듯하오. 아우 역시 여기서 죽음을 당하게 한다면 그건 나의 씻을 수 없는 죄가 되고 말 것이오.”
좌백도는 말을 마치더니 계곡 아래로 몸을 던져 스스로 죽음에 나아가고자 하였다. 양각애가 좌백도를 끌어안고서 좌백도의 옷으로 좌백도의 몸을 덮어 다시 뽕나무 아래로 안고 가려고 하니 좌백도가 완강하게 옷을 몸에서 밀쳐내버렸다. 양각애가 다시 좌백도에게 다가가 설득하려 하니 좌백도의 얼굴색이 이미 흙빛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사지는 굳어지며 입에서는 말이 새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손을 휘저으며 어서 길을 가라고 재촉하였다. 양각애는 생각에 잠겼다.
“아 내가 여기서 더 이상 어물거리다간 나 역시 황천길로 가겠구나. 그래 나마저 죽고 나면 누가 내 형님의 시신을 수습한단 말인가?”
양각애는 눈 속에서 좌백도에게 재배를 올리고 울음을 울었다.
“불초한 동생은 이렇게 길을 떠납니다. 부디 형님이 저 먼 곳에서라도 저를 바라보며 도와주셔서 제가 조금이라도 이름을 날리게 되면 필히 형님을 찾아 후히 장사지내드리겠나이다.”
좌백도는 그저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였다. 양각애는 좌백도가 건네준 양식과 옷을 챙기고 울음 울며 길을 떠났다. 좌백도는 결국 뽕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후대 사람의 시가 있어 이를 인용한다.
바람은 매서운데, 눈은 석 자나 쌓이고,
가야할 길은 천리나 남았다네.
먼 길을 그저 추위와 눈만이 짝을 하니,
어쩌나, 배낭엔 쌀마저 다 떨어져가는구나.
다 긁어모아 한 사람이라도 길을 가야하리,
둘이 다 길을 가려면 다 죽고말지라.
둘이 다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나라도 살면 훗날이라도 기약하지.
현명하도다, 좌백도의 선택이여,
목숨을 버려 큰일을 이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