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소옹邵雍 동지의 시冬至吟

동지의 시冬至吟/송宋 소옹邵雍

冬至子之半 동지는 자월의 절반 뒤 드니
天心無改移 하늘의 마음 변하지 않았네
一陽初動處 하나의 양 새로 생겨났지만
萬物未生時 만물 변화 아직 보이지 않네
玄酒味方淡 맑은 물은 그 맛이 담담하고
大音聲正希 위대한 음악은 소리가 없네
此言如不信 이 말을 만약 믿지 못한다면
更請問庖犧 다시 복희씨한테 물어보시라

소옹(邵雍, 1011~1077)의 이 시는 《성리대전》 등에는 <복괘시(復卦詩)>로 되어 있다. ‘복괘시’는 ‘동지음’과 그 의미가 완전히 일치한다. 동지가 드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하고 《주역》의 괘로는 복괘(復卦)이기 때문이다. 또 음(吟)은 바로 시를 말한다.

‘동지가 자의 반’이라는 말은 ‘자월의 반’이라는 말이다. 동지가 드는 11월을 자월이라 하니 그걸 줄여 자(子)라고 한 것은 알겠는데 반(半)이란 무엇인가? 이를 자시의 중간이라 해석한 사람들이 많다. 즉 자시는 11~1시를 말하니 그 중간인 자정 12를 말한 것으로 본 것이다. 동지가 자정을 기준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지는 자정에 드는 것이 아니다. 매년 역법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2019년은 12월 22일 13시 19분에 동지가 들었다. 이런 분들은 평소에 일력을 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년을 태양의 변화에 따라 24절기로 나누므로 한 달에 2개의 절기가 배정된다. 이때 그 달의 초에 오는 절기는 절기(節氣)라고 하고 한 달의 반인 보름 뒤에 오는 절기를 중기(中氣)라고 한다. 우리가 절기라고 하는 것은 이 절기와 중기를 합쳐 말한 것이다. 중기란 특별한 의미가 없고 그 달의 중간 이후에 온다고 해서 붙인 말일뿐이다. 가령 이번 동지 앞에 대설이 있는데 이를 절기라고 하고 동지는 중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지가 자의 반’이라는 말은 ‘동지가 자월의 중기에 해당한다’는 말이니, 결국 자월의 절반 뒤에 동지가 시작된다는 말로, 동지가 언제인지를 말한 것이다.

‘하늘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음력 10월은 곤괘(坤卦)로 상하 8괘가 모두 음효여서 이 세상이 금방이라도 음기로 가득찰 것 같지만 11월이 되어 맨 아래서 양효 한 개가 새로 생겨나 드디어 복괘로 변하니, 이를 통해 만물을 내고 살리는 하늘의 본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효 1개가 생겨났다고 해서 바로 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관상으로는 이때부터 오히려 겨울이 된다. 봄기운을 느끼려면 입춘까지 기다려야 한다. 양의 기운이 꿈틀했지만 아직 세상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역사를 논하는 사평(史評)에서 어떤 일의 시초와 유래를 중요하게 떠졌는데 현대의 역사에서도 어떤 일의 발단을 논하는 것은 다 이런 맥락이다. 검찰이 마지막 발악을 하며 난동을 부리나 검찰을 개혁하려는 기운은 이미 오래전에 생겨났고 지금은 거의 외면상으로 드러나기 직전인 것도 이런 역의 이치로 설명할 수 있다.

시인은 어떤 일이 생겨났지만 그 존재가 미미해 당장 잘 알지 못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말은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근원적인 것이 있다는 말이다. 보통 점장이들은 신에 빙의되거나 아니면 사기를 쳐서 미래를 예측하지만 소강절 같은 철학자는 이미 생겨났지만 아직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을 예측하기 때문에 그 원리상으로만 보면 맞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예기》와 노자의 말을 그 아래 인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현주는 맑은 물을 말한다. 상고 시대에는 술이 없었다. 때문에 맑은 술을 떠다 놓고 제사를 지냈다. 시골에서 정화수를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 할머니들이 기도하는 것은 그런 기원과 한 뿌리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순수성과 간절한 염원 같은 것을 많이 잊고 그날그날 사는 편이지만 예전에는 정화수 떠다 놓고 비는 것을 많이 보았다.

또 노자의 말에 극히 뛰어난 음악은 소리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큰 땅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에 이어 나온다. 아무리 큰 땅이라도 형체가 있으니 형체가 있으면 변화되는 지점이 있고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이루어지는 때가 있으니 다만 늦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음이라 해서 아무 소리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소리가 극히 미묘해 잘 분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가령 지구가 도는 소리나 우레가 멀리 치는 소리를 다 식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복희씨한테 물어보라는 말은 복희씨가 주역의 팔괘를 만든 사람이기 때문에 한 말로 주역을 좀 공부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유명하지 않아 내 말을 못 믿는다면 당신 스스로 주역을 공부해 보라는 말이다.

복괘는 양이 한 개만 생겨나 식물에 비유하면 매우 어린 싹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고인들은 그 노랗다 못해 하얗고 투명한 작은 촉이 자칫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무엇보다 안정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동지에는 성문도 닿고 장사꾼이나 행인들이 다니지 못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정월 초하루에 동네 어귀에 금기줄을 쳐 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한 해의 시작을 매우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한 해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자신이 품은 뜻을 키우기 위해서 아주 경건하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대한 고인들의 생각을 참고해 보면 좋을 듯하다.

元 黄公望 《快雪时晴图》

365일 한시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