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자 · 변방에 내리는 눈採桑子 · 塞上咏雪花/ 청清 납란성덕納蘭性德
非關癖愛輕模樣 가볍게 나는 자태가 너무도 좋아서가 아니라
冷處偏佳 찬 곳에서 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別有根芽 따로 근본적 이유가 있답니다
不是人間富貴花 세상의 부귀한 꽃보다 고결하기 때문이죠
謝娘別後誰能惜 사랑이 떠나간 뒤에 날 누가 아껴줄까요
飄泊天涯 먼 하늘가에서 정처 없이 떠돌면서
寒月悲笳 찬 달빛 아래 구슬픈 호가 들으며
萬里西風瀚海沙 만 리의 서풍 부는 모래사막에서 날리는 것을
채상자(採桑子)는 악부의 상화가(相和歌)에서 유래한 당나라 교방악의 하나이다. 쌍조(雙調) 상하 편 각 4구로 되어 있고 모두 44자이며, 첫 구를 제외하고 매 구에 평성 운자를 단다.
납란성덕(納蘭性德, 1655~1685)은 청나라 시대의 사인이다. 그는 주이준(朱彝尊), 진유숭(陳維崧)과 함께 청나라 사의 3 대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만주 정황기(正黃旗) 출신이다. 만주족은 본래 씨족별로 분산되어 강한 응집력이 없었는데 누르하치가 나와 주민들을 홍, 황, 남, 백의 색깔을 다시 정(正紅), 양홍(鑲紅) 이런 식으로 나누어 8개의 군사조직으로 재편하여 강한 군대가 되었다. 그는 이 중에 정황기에 편재된 지역에서 태어난 것이다. 또 본래 이름이 성덕(成德)인데 당시 태자의 이름과 같아 이렇게 고친 것이다. 납란성덕은 1676년에 일찍 진사에 급제하여 고관도 지내고 시문에 뛰어나 많은 시를 쓰고 작기 작품을 편집한 책도 발간하였다.
그는 1678년부터 1684년까지 매년 강희제를 시종하여 순행도 하고 사명을 받들어 지방에도 갔다. 1678년 10월에 역시 강희제를 따라 북쪽 변경에 갔는데 변경에 내리는 눈이 중원에 내리는 것과는 매우 달리 기세가 맹렬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앞 단은 시인이 왜 내리는 눈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밝히고 있고 뒤의 단은 눈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눈이 변방을 떠돌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거친 변방의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눈을 문학적으로 해명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마치 성당 시대의 변새시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가 다시 옷을 갈아입고 새로 등장한 느낌이다.
첫 구의 ‘비관(非關)’은 ‘~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는 말로 ‘냉처편가(冷處偏佳)’까지 의미가 이어진 유수구(流水句)이다. ‘근아(根芽)’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한다. 이유를 그냥 이유라고 하지 않고 이런 말을 쓴 것은 이유가 있다. 앞에서 말한 가볍게 날리는 모양이나 차가울수록 날리는 모양이 아름다운 것이 눈을 좋아라는 이유가 아니라는 말이 아닌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그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그 성품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글자에 이 시의 묘미가 있고 이 시인의 깊은 역량이 드러난다.
이 시에 나오는 사랑(謝娘)은 동진 시대의 재녀 사도온(謝道韞)을 말한다. 사안(謝安)이 집안의 조카들을 모아 놓고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눈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사안은 이것을 묘사해 보라 하니까 누군가가 소금을 공중에 뿌리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 비유도 사실 괜찮은 비유이다. 그런데 사도온이 곁에 있다가 “버들개지가 바람에 날리는 것만은 못합니다.” 이런 말을 했다. 이 고사를 줄여 사랑영설(謝娘詠雪)이라 한다. 《세설신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 여자가 바로 저명한 서법가 왕희지의 둘째 아들 왕응지(王凝之)의 부인이다. 사도온은 반고의 누이동생 반소(班昭), 역시 서법가이자 종이를 발명한 채옹의 딸 채염(蔡琰)과 함께 대표적인 재녀로 불린다. 당대의 설도와 송대의 이청조 등이 그 계보를 잇는다.
그런데 이 시를 보면 느끼겠지만 이 시에 묘사된 눈과 사랑(謝娘)의 이미지가 겹치고 있다. 시인이 눈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귀한 꽃과 달리 그 성품에 있다. 하늘거리는 동작이나 차가운 데서 더 빛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여인이 역시 그런 여인인데 이 여인이 죽고 난 다음에는 눈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눈은 정처 없이 변방을 떠돌면서 차가운 달밤에 구슬픈 뿔피리 소리를 들으며 사막에서 서풍에 날려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는 것이다.
하는 말이 꼭 가까운 사람을 이별한 사람의 말이다. 이 시인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이별하고 난 뒤에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것은 더 알아볼 문제이고 지금 묘사된 시만으로도 황량한 겨울 이리저리 표박하는 눈을 문락적으로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쓸쓸한 겨울 날리는 눈을 보며 읊어보기에 이만한 시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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