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유王維 송별 送別

송별 送別/당唐 왕유王維

下馬飲君酒 말에서 내려 술을 대접하며
問君何所之 그대에게 묻네 어디로 가오
君言不得意 그대 말하네 뜻을 얻지 못해
歸臥南山陲 남산 자락에 가 은거하려오
但去莫復問 그럼 가시오 더 물을 게 없소
白雲無盡時 흰 구름 다할 때가 없을 거요

‘임군주(飲君酒)’는 ‘그대에게 술을 대접한다.’는 의미이다. ‘음(飮)’이 ‘음식’이라는 명사나 ‘마시다’라는 자동사로 쓰일 때는 음이 ‘음’이지만, 누구에게 ‘마시게 하다.’라는 타동사로 쓰일 때는 음이 ‘임’이다. 가령 《시경》 <면만(綿蠻)>에 ‘임지사지(飮之食之)’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마시게 하고 먹게 한다.’ 즉 음식물을 대접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 ‘사(食)’가 또 나오는데 이 글자가 ‘먹다’는 의미로 쓰이면 음이 ‘식’이지만, ‘밥’이나 ‘먹게 하다’는 타동사로 쓰일 때는 음이 ‘사’가 된다.

‘귀와(歸臥)’는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한다는 말이다. ‘막부문(莫復問)’은 더 물을 내용이 없다는 말이다. 막(莫)은 통상 명령문에 많이 쓰여 물(勿)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 말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 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쓰여 무(無)와 같은 뜻이다. 이 말을 군(君)이 ‘세상에 대해 따지다.’는 의미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앞에 나온 동일한 ‘문(問)’ 자를 다르게 해석하는 점, 은거하는 사람에게 주제넘게 충고하여 마지막의 백운이 무진하다는 말과 어긋난다는 점에서 사리 상 맞지 않는다.

이 시는 왕유가 장안을 떠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앞 2구는 왕유의 행동과 말이고, 가운데 2구는 떠나는 사람의 변이며, 마지막 2구는 왕유의 당부이다.
상대방이 은거하기 위해 장안을 떠난다고 하니, ‘더 무슨 말을 하리오. 그대로 잘 가시오.’라고 한다. 만류는커녕 공감을 표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선문답 같은 한 마디 ‘백운은 다함이 없다오!’라는 화두를 가는 사람에게 던진다.

백운(白雲)이 이 세상엔 더 욕심이 없고 자연 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을 찾는 말이라면, 청운(靑雲)은 세상에 나아가 부귀공명을 누리려는 포부를 지닌 사람의 마음을 담은 말이다. 많은 사람이 우러러 보는 창공에 높이 뜬 청운은 여러 사람이 다투는 것이니 자연 다함이 있지만 산중에 있는 백운은 아무도 다투지 않으니 다함이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 시를 음미해 보면 여기 나오는 대화 상대와 자신은 모두 왕유가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 상대방이 왕유가 사는 종남산에 은거한다는 것부터 그렇지 않은가? 즉 대화체 형식으로 시를 지어 은거를 지향하는 자신의 철학과 다짐을 백운무진(白雲無盡)이라는 말로 함축한 것이 이 시의 본색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누구를 송별하였느니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이런 대화체 시문은 유서가 깊다. 굴원이 지은 <어부사(漁父辭)>가 대표적이다. 《시경》의 많은 시들도 상대를 상정하고 화자가 말하는 방식이다. 주자(朱子)가 쓴 서문들은 흔히 대화체로 되어 있다. 불교의 교리 역시 선문답 형식으로 풀이하여 제시한 경우가 많다. 이런 대화체는 글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높여 준다. 이 시 역시 대화체로 구성하여 백운무진(白雲無盡)의 의미를 눈앞에서 듣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고 있다.

그럼 백운이 다함이 없다는 말을 당시 이 시를 읽는 사람은 잘 알아들을까? 당연히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그것은 이 말을 왕유가 처음 만들어 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남조 때의 은자인 도홍경(陶弘景, 456~536)의 시와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과 이전에 교유가 있던 양나라 무제(武帝)가 초청하기 위해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자, “고개 위에는 흰 구름이 많습니다. 다만 혼자 스스로 즐길 뿐, 임금님께 가져다드릴 수가 없습니다.[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라고 답하며 벼슬을 사양한 적이 있다.

즉 백운을 ‘은거 생활을 하면서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는 즐거움’이라는 은유로 이미 써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황제가 부르는데 안 간 이유가 백운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하면 사람들이 당연히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지금 왕유가 말한 백운은 도홍경의 백운에 자신이 깨달은 백운이 더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성패와 백운의 의미는 이후 왕유가 보여준 삶과 시의 세계가 말해 주는 셈이니 백운은 사실 가벼운 말이 아닌 것이다,

明 陶成 <雲中送別圖>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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