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던 날 초각에서 바라보며雪中閣望/청淸 시윤장施潤章
江城草閣俯漁磯 강가의 성 초각에서 낚시터 굽어보니
雪滿千山失翠微 온 산에 가득한 눈 푸른 빛 다 잃었네
笑指白雲來樹杪 나뭇가지 끝 흰 구름 가리키며 웃었네
不知卻是片帆飛 눈 맞아 하얀 돛단배 떠가는 줄 모르고
여기서 말한 강성(江城)은 지금의 안휘성 선성(宣城)으로 이 시를 지은 시윤장(施潤章, 1618~1683)의 고향이다. 초각(草閣)은 당시 선성에 있었던 시인의 서재인 첩장산방(疊嶂山房)을 가리킨다. 이 시는 시인이 벼슬에서 물러나 10년간 고향에서 머물던 50대 중반 전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이 지은 <첩장산방>이란 시에 ‘강성초각’이란 말이 나오고, 초각의 초여름 풍경을 노래한 <초각즉사(草閣卽事)>를 참조하면, 초각은 강가에 지었으며 대나무 사립문을 달고 초각의 돌난간에서 바로 낚시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 묵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시인이 여기서 독서도 하고 낚시를 하던 곳으로 보인다. 초각은 초당이란 말과 같다. 시인이 지은 시에 나오는 첩장(疊嶂)이나 쌍계(雙溪)라는 말은 모두 선성 시 동쪽의 산과 강을 말하는 것으로 바로 이 초각이 있는 곳이다. 또 <첩장산방> 시에 서함약(徐咸若) 자사(刺史)의 옛 별장이라고 하였으니 성곽에서 멀지 않은 곳이 분명하며, 자신의 별관(別館)이라 하였으니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별채인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서재인 첩장산방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함박눈이 내린 걸 보고 강산 풍경을 바라보다가 온통 새하얗게 변해 버린 풍광에 찬탄한다. 낚시를 하던 곳은 어느새 푸른 빛은 하나도 없고 모두 눈에 뒤덮였다. 그곳은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버들이 늘어지던 곳이리라. 그러한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을 시인은 실(失)이란 글자로 표현하여 추억을 환기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니 나뭇가지 끝에 흰 구름이 천천히 지나간다. 그 모양이 너무도 아름다워 곁에 있던 사람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보고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것이 구름이 아니라 사실은 눈을 맞아 돛이 하얗게 변해버린 돛단배인 것을 알게 된다. 시인은 이 경이로운 풍경에 놀란다. 그 감동을 쓴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날 나뭇가지 사이로 천천히 미끄러져 가는 눈을 맞은 하얀 돛단배! 독서의 피로나 세상에 대한 근심을 완전히 잊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시윤장(施潤章, 1618~1683)은 선성(宣城) 출신의 청나라 초기의 관료이자 학자요, 시인이다. 선성 출신 시인으로는 매요신과 시윤장을 꼽을 수 있다. 1646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하였는데 그가 쓴 <서호의 부로들을 이별하며[别湖西父老]> 같은 시에 보면 부로들이 수 십 리에 걸쳐 늘어서 향을 피우고 울면서 전송했다고 하니 정사도 괜찮게 한 모양이다. 이때 벼슬을 그만두고 10년 정도 고향에서 쉬다가 다시 불려가 한림원 시독(翰林院侍讀)을 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문관에서 일하며 경연에 참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그는 《명사(明史)》를 찬수하는 일을 하였는데 학업이 크게 진보하여 사방에서 명사들이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명사》를 끝내지 못하고 죽었으니 향년이 66세이다.
365일 한시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