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적사를 찾아가서過香積寺/당唐 왕유王維
不知香積寺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고
數里入雲峰 구름 덮인 산 몇 리를 들어가네
古木無人徑 오래된 나무 오솔길엔 인적 없고
深山何處鍾 깊은 산에 종소리 어디서 나는지
泉聲咽危石 계곡물소리 바위틈에서 오열하고
日色冷青松 햇빛은 푸른 솔을 비추어 차갑네
薄暮空潭曲 저물녘에 텅 빈 연못에 도착하니
安禪制毒龍 선정에 들면 맘의 독룡 제압하리
이 시는 《당시삼백수》와 《천가시》 등에 수록되어 있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이다.
향적사는 장안 남쪽 30리 정도에 있는 사찰이라 하니 바로 종남산에 있는 것이며 이곳은 왕유의 망천(輞川)과 그리 멀리 않은 곳이다. 그러니 첫 구에서 향적사를 모른다 한 것은 완전히 모르는 것이 아니라 대강 소문만 듣고 와서 지금 막연하게 찾아가는 상황으로 보인다.
구름 덮인 깊은 산에 오솔길은 있으나 인적은 없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계곡에 메아리 쳐서 방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으나 종이 여러 번 울릴 것이므로 결국 방향을 짚어 찾아갈 것이다.
여기서 천(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샘’이 아니라 계곡물이다. 계곡물은 바위 여기저기에서 솟아나고 흐르기 때문에 샘이라 한 것이니 그 실체는 샘물이 아니라 계곡물이다. 이 물이 오열한다는 것은 여러 형태로 생긴 바위 사이를 불규칙하게 흐르면서 나는 소리를 말한 것이다. 슬퍼서 오열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잡음을 다 거두어 가듯이 시냇물 소리가 계곡을 울리고 있다는 말이다. 햇빛이 소나무를 차갑게 비춘다는 말은 해질 무렵이 되어 소나무 가지와 잎에 번쩍이는 저녁 광선이 차게 느껴진다는 말이니 이 또한 저녁 햇살을 받고 있는 소나무의 아주 청정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저물녘에 굽이진 담(潭)이 텅 비었다는 말은 자신이 저물녘이 되어 드디어 향적사 가까이에 있는 굽이진 담(潭)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안선(安禪)은 선정에 편안히 들어간다는 말이니 깊이 선정에 든다는 뜻이 된다. 독룡은 사람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망상이나 욕망으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나온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내가 사는 곳에 독룡이 한 마리 사는데 성질이 포악하고 급하여 나를 해친다고 한다.
여기서 선정에 들어 독룡을 제압한다는 말은 왕유가 지금 이 곳 연못에 와서 참선에 깊이 들었다는 말도 아니고, 절의 어떤 노 선사가 역시 참선에 들어 무념무상의 경지에 있는 모습을 왕유가 지금 본다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산길을 올라오느라 힘이 들어 좀 쉬면서 맑은 물이 가득한 담(潭)을 무연히 보고 있노라니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이 절로 드는데, 사람도 선정에 들어 잡념을 제거하면 저처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왕유가 그 연못을 감상한다는 말로 보인다.
이 시의 제목에 쓴 ‘과(過)’ 자는 다른 목적지로 가다가 우연히 향적사에 ‘들렀다’는 말이 아니라 향적사를 목표로 하고 ‘탐방’한 것을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시에는 향적사의 건물이나 전망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고 향적사를 찾아가는 과정을 주로 서술하고 마지막에 곡담(曲潭)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한 줄 붙였을 뿐이다.
이렇게 서술한 것은 왕유가 무슨 의장(意匠)을 가지고 교묘한 구성을 해서라기보다는 곡담을 볼 때 이미 날이 저물어 사찰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찰의 묘사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서술하였지만 마지막 구에서 불법이 무슨 특별한 공간이나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망상이나 욕심을 없애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서술하여 은연중 사원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정면으로 향적사를 묘사하지 않았지만 공(空)이나 선(禪), 독룡(毒龍) 같은 말로 이미 불법의 본질을 정면으로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의 구성이 오묘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는 시인이 특별히 안배(安排)한 것이 아니라 시인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점에서 이 시인의 역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서안의 향적사 사진을 보면 이 사찰이 왕유가 시를 쓴 그 사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불법도 향기가 쌓인 것처럼 향기는 나지만 자취가 없듯이 옛 사원도 세월이 지나 그 모습이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왕유가 묘사한 것도 본래 한 모습이지만 지금 보는 향적사가 그 때도 저와 같은 모습이었던가?
365일 한시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