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소설 개관

현재 한국 독서계의 외국소설 소개 현황을 보면, 이른바 ‘가깝고도 먼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2년 전, 출간 권수에 있어 국내소설을 능가할 만큼 일본소설이 크게 각광을 받아온 반면, 중국소설은 예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작가, 작품이 소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지침서>, <나, 제왕의 생애>의 쑤퉁을 제외하면 독서계의 호응을 받은 경우가 전무하다. 이미 국내에서 상당한 수의 독자를 확보한 위화의 <형제>조차 판매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간 중국소설의 번역, 출간은 그 수량과 다양성 면에서 괄목할 만하다. 쑤퉁은 위의 두 작품 외에도 <눈물>, <쌀>, <홍분> 등 대표작과 최근작이 거의 출간되었고, 중진 작가 모옌도 <홍가오량 가족>, <술의 나라>, <풍유비둔> 등 대표작 출간이 거의 완료되었다. 그리고 신사실주의 소설의 대표자로 꼽히는 류전윈과 팡팡이 각기 <핸드폰>과 <행위예술>로 소개되었으며 신역사주의 소설의 대표자인 예자오옌도 <화장실에 관하여>를 선보였다. 일종의 전위문학으로 평가되는 선봉소설 중에서도 한둥의 <독종들>, 주원의 <나는 달러가 좋아>가, 최근 유행하는 인터넷문학에서는 궈징밍의 <환성>, 한한의 <삼중문>이 출간되었다. 이밖에 홍잉, 둥시, 리얼, 류헝, 츠리 등 다수의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한국 독자들과 조우했다.

그런데 위의 작품들은 중국에서의 발표 시점 상 동일성을 갖고 있다. 즉, 공히 80년대 후반 이후 창작, 발표된 작품들이다. 왜 이런 동일성이 보이는 것일까? 국내 출판사들의 신간 선호 성향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문학사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즉,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80년대 후반은 이전의 신시기문학(혹은 신계몽문학)과 이후의 다원화문학을 가르는 전환점으로서 현지에서는 ‘후後신시기문학’(개혁개방 이후 80년대 후반까지를 신시기문학, 그 후 지금까지를 후신시기문학이라 칭한다)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원화문학 시기에 이르러서야 중국소설의 지평은 비로소 우리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국문학의 주된 흐름은 크게 7단계로 나눌 수 있다. 1917년 문학혁명에서부터 20년대 중반까지의 5.4 계몽문학, 1927년경부터 1936년경까지의 사회변혁문학, 1937년 이후의 항일전쟁문학과 노농병勞農兵혁명문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966년까지의 17년 사회주의문학, 문화혁명 10년간의 문혁문학, 1978년 개혁개방 이후의 신시기문학, 1989년 천안문사건 이후의 후신시기문학(다원화문학)이 그것이다. 1949년 이전 문학은 큰 시차를 고려하여, 그리고 1978년 이전 문학은 사회주의 일원화 시기의 당 선전문예로 판단해 논외로 치기로 하자. 중국 현대문학이 이데올로기 선전 매체로서의 지위에서 벗어나 다소나마 작가 고유의 개성과 상상력을 중시하기 시작한 건, 1978년 전후의 ‘상흔傷痕문학’부터이다. 이후 2, 3년 간격으로 ‘반성문학’, ‘개혁문학’, ‘뿌리찾기문학’이라는 일련의 소설사조들이 이어졌다.

위 소설사조들에 대한 중국문학사의 공식적 언명은 이렇다. 우선 ‘상흔문학’은 문화대혁명이 빚어낸 비극을 고발하고 사람들이 입은 상처를 폭로한 문학이다. 류신우의 <학급담임>과 루신화의 <상흔> 등이 대표작이다. 그리고 문혁 종결 후 다소 시간이 지나 상처의 폭로에서 상처의 근원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으니 ‘반성문학’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장셴의 <사랑에 잊혀진 구석>, 장셴량의 <녹화수> 등이 대표작이다. 이어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작가들은 현실의 개혁에 주목해 구체적인 개혁 현장을 소재로 창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개혁문학’이고 그 대표작은 쟝쯔룽의 <차오공장장 이야기>이다. 그 직후의 ‘뿌리찾기문학’은 새 시대의 정신적 원천이 될 전통문화를 찾고 소설의 모티브로 사용했는데 장청즈의 <흑준마>, 한사오궁의 <아빠, 아빠, 아빠>, 아청의 <어린이 왕>이 대표작이다.

위의 설명은 의문점과 시사점을 동시에 던져준다. 의문점은 어떻게 한 나라의 소설사조가 어떻게 “상처의 폭로 → 상처의 근원에 대한 반성(여기까지는 전 시대의 청산임) → 새 시대 개혁의 동참 → 새 시대의 정신적 바탕이 될 전통문화 발굴”이라는 인과적, 단선적 노선 위에서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더구나 7, 8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말이다. 실제로 당시 이 노선에서 벗어나는 작품들은 극히 드물었다. 다음으로 시사점은 곧 이 의문점을 풀어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위 소설사조들이 정치 우위 사회의 ‘계몽문학’이었다는 점이다. 정치가 여타 모든 분야를 압도하고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을 공히 지배했던 문화대혁명 때에 비하면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정치 지향의 관성은 80년대에도 여전했다. 작가들은 공산당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목표와 전략에 공감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작가적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루신화, <상흔>의 여주인공은 죽은 어머니를 향한 참회 어린 독백에서 “엄마, 사랑하는 엄마, 안심하세요. 이 딸은 영원히 엄마와 제 마음속의 상처를 누가 남긴 것인지 잊지 않겠어요. 화궈펑華國鋒 주석의 은덕을 기억하고, 화국봉 주석을 위시한 중앙당을 따라 당의 사업을 위해 제 일생을 다 바치겠어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중국문학의 노골적 계몽성이 상당 부분 탈색되어 비로소 세계문학과의 동시대성이 확보된 계기는 1980년대 후반의 천안문사건, 그리고 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전지구적 시장자본주의화였다. 정치권력에 대한 지식인들의 신뢰와 낙관주의가 좌절되었고, 문학작품도 하나의 상품으로서 시장의 규율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탈이데올로기적 순문학과, 상업적 대중문학이 각기 약진하게 되었으며 물량 면에서도 2000년 전국의 작가협회 소속 작가들만 무려 4만 명에 이르게 됨으로써 다원화문학의 기초가 확고해졌다.

莫言 사진 출처 Itfly

당시 순문학 진영에서는 ‘선봉소설’, ‘신역사소설’, ‘신사실주의소설’처럼 문학 자체의 규율에 관심을 기울이는 순문학적 성향의 소설사조들이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등장했다. 우선 선봉소설은 누보로망,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양의 각종 문학사조의 영향 아래 의미 있는 형식의 탐구와 실험에 노력을 쏟았다. 주로 50년대 말, 60년대 초 태생의 이 유파의 대표 작가들로는 <라싸강의 여신>으로 메타소설의 선구자가 된 마위엔, 전통 서사의 파괴로 소설의 진실성 추구에 회의를 제기한 <갈색의 새 떼>의 거페이, 냉정하게 비정상적 심리를 묘사해 ‘영도零度의 감정 서술’이라는 명성을 얻은 <어떤 현실>의 위화가 있고, 그밖에 <붉은 수수밭>의 모옌, <1934년의 도망>의 쑤퉁도 이 유파에 속한다. 다음, ‘신역사소설’은 기존의 거대서사를 해체하고 역사 속에 묻힌 이름 없는 개체들의 역사에 주목하는 한편,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가상의 역사를 창조해 현대적 주제를 표현한 유파이다. 신역사소설의 제재는 광범하고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쑤퉁의 <처첩성군>과 <나, 제왕의 생애>, 모옌의 <풍유비둔>, 위화의 <허삼관매혈기>, <인생> 등이 있다. 그리고 신역사소설과 더불어 자주 거론되는 것이 ‘신사실소설’인데, 이 유파의 창작 방법은 역시 ‘객관적 현실반영’이라는 리얼리즘적 특징을 띠고 있긴 하지만, 이전의 편협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색채를 벗고 삶의 본래 면모로의 환원과 현실에 대한 직시를 중시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 팡팡의 <풍경>, 츠리의 <번뇌인생> 등이 있다.

이밖에도 90년대 이후 중국 순문학에는 ‘신상태소설’, ‘신체험소설’, ‘신여성소설’, ‘신시민소설’, ‘신현실소설’ 등 갖가지 소설사조가 등장하여 각기 개성적인 창작을 시도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한둥과 주원의 ‘신상태소설’이다. 90년대 후반 활약한 이 유파는 이른바 ‘단열斷裂 사건’으로 가장 노골적인 ‘탈권력’의 양태를 보였다. 작가협회, 주요 문학상, 주요 문학잡지 및 비평가 등의 ‘문학권력’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설문지를 주요 작가들에게 돌리고 그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젊은 작가들의 존재를 전면에 부각시키고자 했다. 실제 창작에 있어서도 한둥의 <장애>, 주원의 <나는 달러가 좋아> 등에서 지식인들의 위선과 통제사회의 폭압성을 고발하여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신현실소설’은 급속한 시장경제와 경제성장의 반대급부로 생겨난 양극화현상 속에, 철저하게 소외된 다수의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들의 열악하고 비참한 모습과 사회비리, 환경파괴 등 부정적 현실을 반영하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리얼리즘 사조이다. 류싱룽의 <봉황거문고>, 옌롄커의 <세월>, 구이쯔의 <비에 젖은 강> 등이 대표작인데, 구이쯔의 작품 같은 경우는 도시로 이주한 공장노동자의 처참한 말로와 사회의 전반적인 부패상을 직설적으로 묘사하여 여전히 엄존하는 중국의 출판검열시스템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중국의 대중문학 현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1980년대 중반 왕숴의 <노는 것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물 위의 연가>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중국 독서계에서는 애정소설, 청춘소설, 르포소설, 경찰소설, 역사소설, 무협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대중소설들이 순문학 소설의 인기를 압도해 왔다. 이러한 대중소설의 영향력은 청소년층이 주 독자층으로 떠오르고 인터넷과 영상문화가 발달하면서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과 TV, 영화와의 상호작용이 원활한 대중소설의 특성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여 지금껏 순문학의 철옹성이었던 중국작가협회는 작년에 무협, 로맨스, 추리, 판타지 등 대중문학 창작을 지향하는 ‘80후 작가’(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작가들을 일컬음)들의 입회를 처음으로 허가했다. 이로 인해 이미 ‘백만 부 작가’의 반열에 오른 궈징밍, 한한, 장웨란 등 대중소설 작가의 위치는 더욱 더 확고해졌다. 이에 관해 일부 평론가들은 시장의 관심도, 판매량, 웹상의 클릭수, 영상화 가능성에 매달리는 대중소설의 위상이 커지면서 중국문학이 갈수록 경박해지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학의 낡은 본질 개념에만 치중한 나머지 ‘상업화’라는 전지구화시대 문학의 보편적 존재 조건을 외면할 수는 없다. 순문학적 가치의 호위병 역할을 해온 중국작가협회까지 대중소설 작가들을 포용하고 공식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한 지금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지금까지 1978년 이후 중국소설의 현황을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소설사조들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았다. 위의 고찰을 참고한다면 <세계의 문학> 이번 호에 실린 네 편의 중국소설들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류커, 비페이위, 징거, 주원잉, 이 네 명의 작가들은 모두 상술한 최근 중국소설 사조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류커는 찬쉬에, 쑨간루와 함께 선봉소설의 실험적 성격을 지금껏 견지해 온 드문 예이다. 쑤퉁, 위화 등 대부분의 초기 선봉소설 작가들이 이미 90년대 초반 대중적 서사의 길을 모색함으로써 ‘선봉’의 꼬리표를 뗀 이후에도 문체와 플롯 실험의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비페이위는 선봉소설과 신사실주의 소설 양쪽에 다 관계한, 최근 중국의 가장 유력한 작가이다. 이미 한국에 소개된 <위미>, <청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선보이는 <사랑하던 날들>에서도 그의 현실비판적 시선의 날카로움은 여전하다. 그의 신사실주의 소설의 제재는 도시문화에 오염되는 농촌의 실상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도시 문제로 옮겨진 상태이다. 다음, 주원잉은 고전적 인물과 배경을 패러디해 삶의 추상적 가치와 불확실성을 회의한 <덧없는 삶>을 게재했다. 이런 수법은 위화의 <고전의 사랑>,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에서 시도된 바 있지만 이 작품은 보다 상징적이고 페미니즘의 주제의식이 담겨 있어 새롭다. 마지막으로 <눈물>을 게재한 징거는 최근 중국소설계에서 무거운 주제의식을 표방하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유머러스한 소재들을 탁월한 재담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대표작인 <이의 존엄>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지난한 삶들의 역정을 경쾌한 서술에 담아 그 무게를 무화시킴으로써 ‘유쾌한 눈물’을 유도하는 솜씨를 보인다. 향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어야 할 실력 있는 작가들 중 하나이다.

최근에 독일 본 대학의 중문학 교수인 볼프강 쿠빈은 1949년 이후의 중국문학이 모두 ‘쓰레기’라면서 “20세기 중국문학은 1949년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세계문학에 속했지만, 1949년 이후에는 시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모두 세계문학에 속하지 않는다.”는 소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 후반 이후 전개된 중국소설들의 다원적 흐름과 관련해서는 그의 소견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최근 중국소설계는 수많은 실력파 작가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수작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어쩌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미 한국소설을 능가한 것이 아닌가 판단이 들 정도이다. 특히 역사와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문제의식과 서술의 힘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번 <세계의 문학>의 기획을 계기로 향후 더 많은 중국소설들이 한국에 소개되어 한국 문단에 신선한 자극과 자양분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