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각주인平等閣主人의 「신료재新聊齋․ 당생唐生」 : ‘소설계혁명’의 뒤틀린 자화상

양계초가 『신소설』 잡지를 창간하고 「소설과 사회문제 치리(治理)의 관계를 논함(論小說與群治之關系)」이라는 글을 통해 ‘신민新民’을 형성함에 있어 새로운 소설의 중요한 역할을 설파하자 많은 이들이 이에 호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계초의 논지를 보충하는 글을 써서 발표했고, 기왕에 소설을 쓰거나 번역하던 이들은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띤 소설을 짓기도 했지요. 어떤 소설가들은 ‘사회소설’이니 ‘과학소설’이니 하는 꼬리표를 자기 작품에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시대적 조류에 앞장서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답니다.

‘소설계혁명’을 양계초가 앞장서고 일군의 작가들이 호응한 일종의 문학운동으로 본다면 그것은 『신소설』이란 매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들의 지역적 기반입니다. 모든 필자들은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본명이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출신지역을 암시하는 필명을 통해 양계초와 동향인 광동 지역 출신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영남우의여사嶺南羽衣女士’, ‘남해로자동南海盧藉東’, ‘신광동무생新廣東武生’, ‘영동고장군嶺東故將軍’(黃遵憲), ‘아불산인我佛山人’(吳趼人), ‘영남장수嶺南將叟’, ‘광동신소무廣東新小武’와 같은 이들입니다. 필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 외에도, 『신소설』에 광동의 ‘희본戲本’이 연재되고 이 지역의 민간 서사 운문인 ‘월구粵謳’를 개량한 ‘신월구新粵謳’가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는 점, 황준헌이 가사체 운문을 게재하고 광동의 민요인 ‘산가山歌’를 바탕으로 새로운 운문 쓰기를 시도했던 점은 광동 지역/출신 문인들의 『신소설』에 대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그 외 대부분의 필자들은 당시 소설 관련 인력이 대부분 강남江南 출신으로 상해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정황으로 보아 강남-상해의 문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정확히 본명을 가늠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1903년부터 적보현狄葆賢(강소 율양溧陽 사람; 초경楚卿, 평자平子, 평등각주인平等閣主人 등의 필명 사용)이 간간이 투고했고, 1904년부터 주계생周桂生(상해 사람; 지신실주인知新室主人)이 투고하기 시작했으며, 1905년에 김천우金天羽가 평론 1편을 싣고 있는 정도가 확인됩니다.

양계초 스스로도 그랬거니와 소설 창작과는 별로 친연성이 없던 적지 않은 이들이 소설을 통해 담론 형성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얼해화 孽海花』를 쓰기 시작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증박曾樸에게 이어서 쓰도록 부탁한 김천우에게서 그 극명한 예를 발견할 수 있거니와, 여기서 이야기할 「신료재․당생」을 지은 ‘평등각주인平等閣主人’이 역시 그런 경우에 속하지요. 평등각주인은 유신파 언론인 적보현狄葆賢(1873~1921)의 필명입니다. 적보현은 1900년에 서태후 일파에 대항해 일어난 ‘자립군自立軍’의 기의에 참가했으며, 실패 후 일본으로 건너가 양계초와 함께 활동했습니다. 1904년에 『시보時報』를 창간하는 등 언론계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몇 편의 소설을 짓고 번역하기도 했지요. 아마도 너도나도 소설 한 편쯤은 지어 발표해야 선도적 문인 행세를 할 수 있었던 분위기였던 듯싶습니다. 그만큼 소설은 매력적인 계몽의 도구로 여겨졌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소설을 쓸 때에는 결코 본명을 드러내지 않고 필명으로 일관했던 점은, 이들이 처해있던 상황의 아이러니를 또한 여실히 보여줍니다.


19세기 말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신료재新聊齋․당생唐生」은 제목에서부터 살필 수 있는 바, 『요재지이聊齋誌異』 식의 짤막한 문언단편입니다. ‘당생唐生’은 당씨 성을 가진 주인공 남자를 가리키는 동시에 ‘중국인 남자’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중의적이지요. 여기서의 ‘당唐’은 차이나타운을 의미하는 ‘당인가唐人街’에서처럼 중국을 뜻합니다. 이런 식의 이름 부여는 이 소설이 만들어내는 의미망과 관련해서 적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이야기의 전개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은 1900년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당생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화교로 미국인 여인과 사랑하게 됩니다. 당생을 사랑하기에 그의 조국인 ‘지나’로의 여행을 꿈꾸는 여인은 구애에 있어 자못 적극적입니다. 두 사람이 한창 사랑을 속삭일 무렵, 의화단 사건에 이은 팔국연합군의 북경 공격 이후로 현지 화교의 위신이 추락하게 됩니다. 백인들 사이에서 반중국인 정서가 팽배하게 되고 당생은 동포들이 백인의 핍박을 받는 것을 목도하며 미국인과의 결합이 무리라고 생각, 점차 여인을 기피하게 됩니다. 결국 당생과 미국인 여인 사이의 백년가약은 무산되고 말지요. 당생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인은 자결하고, 당생은 여인의 유언을 행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냅니다.(소설계혁명【부록】신료재新聊齋․당생唐生)

양계초가 발행하던 『신소설』 제7호(1903)에 실린 이 이야기는 당시 수 없이 쏟아져 나왔던 연애담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외국인과의 연애’를 제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운데 제법 참신한 것이었을 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외국이고 여성 주인공이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또한 소설이 실린 잡지가 ‘새로운 소설’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애 혹은 여성에 관한 새로운 관념을 담고 있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구닥다리’ 연애담의 ‘국제판’일 다름입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기본 틀과 관계있지요. 이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 남성이 수절을 결심하는 대목에서 역할 혹은 각색의 ‘전도’가 감지될 뿐 전통적인 연애 비극의 이야기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남자의 행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입니다. 종국에 가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이었지요. 다른 인종간의 연애라는 제재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처한 특수한 조건 때문에 여성을 버리게 되고 여성은 자결(혹은 수절)하게 된다는 이야기 틀은 필연적으로 <여인은 결혼에 의해서 행복해진다>, <여인의 운명은 남성의 선택에 좌우된다>라는 전통적 관념과 관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필명에조차 ‘평등’을 달고 있고자 한 작자는 당시로서는 비교적 선진적인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던 그룹에 속해 있었다고 하겠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념의 선진성이 서사의 선진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왕도의 소설을 통해 우리가 익히 보았던 바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정작 특이한 점은 끝 부분에 붙어있는 다소 장황한 작자의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 부분은 작품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다소 특이한 다시-읽기를 요구합니다.

이 부분에서 작자는 ‘태평양객太平洋客’*의 논지를 인용하면서 서양 여인과의 결혼을 거절한 중국인 청년의 선택이 ‘나라를 지키고 종족을 보존한다(保國存種)’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다소 ‘의외’의 찬탄을 보냅니다. 당생이 중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처지 때문에 미국 여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야 사실이지만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뜯어 읽어봐도 그것을 ‘보국존종’의 의지로까지 확대해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 말이지요. 이 평어評語는 이야기 자체가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을, 해석의 가능성을 넘어서 있는 듯 보입니다.**

평등각주인은 계속해서 태평양객의 논지를 인용하여 하와이의 원주민이 백인과 통혼함으로써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설명하며, 20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남녀가 백인과 짝을 짓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음을 ‘보종保種’의 차원에서 개탄합니다. 저자가 반드시 중국인 남성과 서양인 여성 사이의 결합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 역의 경우도 부정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 평어가 마주하고 있는 이야기 속의 여성의 적극적인 구애가 불순함의 표상으로 읽히게 되는 것 또한 피칠 못할 귀결입니다. 여성이 불순함의 표상으로 읽히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여인의 욕망은 위험하다>라는 관념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본 이야기와 관련하여 “하물며 삼십 년 전 파견해 보낸 미국 유학생들이 각기 저 족속의 비천한 여인을 끌어안고서는 옴짝달싹 못하게 속박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고, 결국 조국을 경멸하고 조국을 적대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예가 한둘이 아님에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지요. 이쯤 되면 ‘중국의 사내’라는 의미의 ‘당생’이라는 남자주인공의 이름은 특별한 울림을 갖게 됩니다. 당생은 고전소설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난 다만 또 하나의 ‘재자才子’가 아니라 당唐―즉 중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사내로서의 ‘당생’인 셈입니다. ‘당唐’에 담긴 중국의 자긍심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바입니다.(당 나라가 한漢 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했고 문화적으로도 흥성했던 왕조라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시지요?) 그리고 미국인 여인 ‘의랑漪娘’은 중국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상징에 다름 아닌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평어의 조합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구미에 팽배해 있던 ‘황화’론***에 대한 단순한 대응일 뿐일까요?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일까요?

중국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미국 잡지 Puck의 표지(1900). 의화단이 괴물로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 제국주의는 자신을 ‘남성’(합리적, 이성적, 계몽하고 정복하는 존재)으로 표상하며 타자로서의 비-서구 지역을 ‘여성’(비합리적, 감성적, 계몽당하고 정복당하는 존재)으로 표상하지요. 이렇게 보았을 때 분명한 것은 이 이야기-평어의 조합이 그러한 표상 관계를 뒤집음으로써 ‘남성적’ 중국-주체의 구성을 희구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이야기-평어는 황화론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나 ‘과분瓜分’(당시 중국인들은 서구 열강이 중국을 ‘박을 쪼개듯’이 갈라버릴 것이라는 위기감을 이렇게 표현했지요) 혹은 멸종에 대한 위기의식의 소산만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소설을 통해 신민新民/국가를 구성하려고 한 소설계혁명의 나름대로의 적극적인 실천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이 문제적인 것은 첫째, 이야기 자체로 의미/해석의 장을 구성해내지 못하고 ‘평어’를 매개로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점; 둘째, 작자의 평어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해석의 장에서 ‘여성’은 전통적인 내용에 새로운 내용까지 짊어진 ‘부정’의 은유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료재․당생」은 양계초식으로 소설 쓰기가 부강한 국민국가의 형성에 기여하기를 요구했을 때 그러한 열망이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 개입하여 그것을 비틀고 또한 새로운 해석 공간을 강요하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예입니다.**** 과잉 의도는 서사 속에서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메타-서사를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는 청말 소설의 양식적 미숙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론이 소설 담론에 적극 개입하는 20세기 중국문학의 전개를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한편, ‘여성’이 국민/국가에 관한 서사 속에서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가에 있어서도 이 이야기-평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적 지점을 노출합니다. 「신료재․당생」이 ‘소설계혁명’의 뒤틀린 자화상인 것은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민정기)


【注】

* ‘太平洋客’은 康有爲의 문하생 歐榘甲. 『時務報』, 『淸義報』 등 유신파 간행물에 간여했으며, 1902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현지 화교 신문인 『文興報』의 기자로 일했고 후에 현지에서 『大同日報』를 창간했다.

** 해석의 무한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하면서도 텍스트(작품의 의도)가 적절한 해석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견해 참조(김광현 역, 『해석의 한계』, 열린 책들, 1995).

*** 황인종이 머지 않은 장래에 구미 문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설. 특히 당시 중국인 이민 노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미국 내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으며, 보다 확대되어 서구 세력이 적극적으로 아시아 지역을 개화시켜야 세계 질서를 문명의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 또 하나의 두드러진 예로 양계초가 『신소설』 창간호부터 몇 회에 걸쳐 연재했으나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신중국미래기新中國未來記」를 들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