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중국의 글쓰기 문화, 그 지형을 탐색하기에 앞서

여기에서 우리는 ‘근대’가 막 형성되고 있던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 중국의 ‘글쓰기 문화’의 ‘지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근대’가 한참 만들어지고 있던 착종된 시공 속에서 중국인들이 행했던 이런 저런 유형의 글쓰기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다양한 사유와 고민 및 전망을 되짚어 보자는 것이지요.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근대 중국의 글쓰기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몇 가지 점을 미리 밝히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각 장의 논의 속에서 관련 문제들이 직접 거론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가 근대 중국의 글쓰기를 다룰 때 가지고 있는 기본 전제들이므로 논의의 방향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는 ‘글쓰기 문화’와 그것의 ‘층위’ 문제입니다.

제가 굳이 ‘문학’이라는 말보다는 ‘글쓰기’․‘글쓰기 문화’라는 말을 들먹이는 이유에 대한 잠깐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글쓰기’라는 개념을 쓰는 것이 유용한 이유는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문학’이라는 용어를 썼을 경우 존재하는 한계를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소설․희곡 따위를 하위 장르로 두고 있는 ‘문학’이라는 개념/범주는 근대 서구적인 것이고 근대 중국에서 이러한 개념/범주는 서구의 영향 하에서 막 형성되고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접근했을 때 많은 글-텍스트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관심을 두는 바가 텍스트 자체의 내용이나 특징으로부터 나아가 글이 쓰이는 조건․동기․과정의 성격 그리고 그것의 사회문화적 기능 등에 있기 때문에 결국 ‘글쓰기’라는 말이 좀 더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쓰기’를 사회문화적 현상의 한 양상으로 보며, 문화로서의 ‘글쓰기’에 관심을 둔다는 이야기이므로 ‘글쓰기 문화’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글쓰기 문화’라는 개념을 도입했을 때의 또 다른 이점은 ‘글쓰기’ 혹은 ‘문학’에 부여된 권위를 해체하여 문화 현상의 한 양상으로 위치 지움으로써 비문자-텍스트들을 우리의 시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시 글-텍스트들에 대한 해석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글쓰기 문화’에 대한 사유는 ‘문학’ 연구가 ‘문화’ 연구로 확장하는 하나의 고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글쓰기의 ‘층위’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왜 근대 중국의 글쓰기(-문화)를 다루는데 유용한지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특정한 내용을 특정한 형식의 ‘글’로 표현하는 데에는 여러 계기들이 간여하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특정한 글쓰기는 특정한 ‘층위’들을 갖게 됩니다. 구체적인 글쓰기가 갖는 층위들은 우선 글을 쓰는 이의 구체적 의도 혹은 욕망․목적과 관련하여 형성되지만 이것은 오히려 표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글쓰기의 층위들은 글을 쓰는 주체가 놓여 있는 복잡한 처지와 그가 갖는 중층적인 내면과 관련이 있으며, 또한 특정한 부류의 글쓰기가 기반을 두고 있는 전통(문화)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나아가 특정한 글쓰기가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 수행하는 기능 역시 다양한 층위들을 형성하지요.

가령 하루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그에 대한 자신의 이성적․감성적 반응에 대해 ‘일기’라는 형식을 빌어서 ‘쓰는’ 행위는 자신의 개인사와 그에 대한 자신의 반성적 사고를 보존해 두려는 동기에서 비롯되는데, 이때 자신의 존재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것은 일기문이 갖는 주요한 ‘층위’가 됩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일기문 내부에는 실제로 여러 다른 층위들이 존재합니다. ‘고백’이라는 층위를 가질 수 있으며, ‘자기합리화’ 혹은 ‘변명’이라는 층위를 가질 수도 있지요.

글쓰기 문화의 ‘층위’에 대한 검토는 글쓰기의 조건과 동기, 과정과 기능 전반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장르론이 특정 장르의 특수한 동기, 언어 표현의 성격, 수행하는 기능에 대한 규정, 예를 들면 시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운율의 언어를 사용하며 쓰고 읽는 이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장르다라는 식의 규정을 근간으로 ‘문학’을 해석한다면, ‘층위’에 대한 접근은 장르론적 접근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인 글쓰기 행위의 보다 내밀한 측면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상황 속에서 형성된 근대 중국의 글쓰기 문화에 대해 논의하는 데에 ‘층위’들에 대한 세심한 고려는 요긴하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공간/지역의 문제입니다.

저는 근대 중국의 글쓰기 문화에 대한 논의에서 공간/지역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일반에 관한 담론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의 근대에 관한 논의들 역시 무엇보다도 ‘시간’(변화, 발전, 진보 등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에 두고 있지요. 여기에 ‘공간’이라는 축을 덧붙여 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중국에 ‘근대적’ 성격의 공간들은 어디에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것은 구체적인 글쓰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지역’의 문제 역시 대두됩니다. 이는 단지 중국이 지리적으로 광대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새로운 조건들이 중국 전역에 균등히 관철된 것이 아니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조건들과 마주하게 된 ‘전통적’ 조건들 역시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국내의 공간들에 대한 고려에서 더 나아가 서구․일본 등의 공간과 근대 중국의 글쓰기 문화가 어떻게 관계하는가 하는 점도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겠습니다.

셋째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성격과 그들의 심경心境(이 말은 한 사람의 사상과 그 이면에 있는 동기와 정서적 상태를 두루 포괄합니다)의 문제입니다.

중국에서 ‘근대’가 형성되고 있던 시기에 글쓰기 문화를 일군 주체의 역사적․사회적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는 이 시기의 글쓰기 주체를 ‘변화하는 조건 속에 놓인 사대부士大夫­문인文人’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글쓰기’ 행위를 하던 사람들은 사회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지배층이었던 사대부였지요.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문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큰 요인이었으며, 이 시기에 와서도 이와 같은 사실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고 봅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이들이 부분적으로 ‘부르주아적’ 성격을 띠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의 정치적 지향이 ‘개량적’이었다거나 ‘혁명적’이었다고 하는 것도 타당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면들은 글쓰기의 성격과도 당연히 관계가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조건 속의 사대부­문인’을 고려함으로써 근대 중국에서 새로운 글쓰기 주체가 성립되는 과정 그리고 ‘문학’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효과적인 검토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문인의 사상에 대한 검토에서 더 나아가 그의 복잡한 내면에 대해 보다 세심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 문인의 ‘심경’은 그 자체로 중층적이고 모순적일 수 있으며, 그의 ‘이성’이 주관하는 ‘사상’과 부합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루는 것과 같은 시대에 이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있지요. 글을 쓰는 이의 복잡한 내면의 풍경과 그가 행하는

글쓰기 사이의 상호관계에 관해, 모순이 있다면 있는 대로 드러내어 그 나름의 운동법칙을 관찰하는 것이 이 시기 문학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고 보다 온전한 ‘상像’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점들을 함께 염두에 두고 근대 중국의 글쓰기 문화, 그 지형 탐사에 함께 나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