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승람瀛涯勝覽-팔렘방 왕국舊港國

팔렘방 왕국舊港國

팔렘방은 바로 옛날에 삼보자 왕국(三佛齊, Samboja, Sri Vijaya)이라고 불렀던 곳으로서, 이 지역에서는 팔렘방(浡淋邦, Palembang)이라고 부른다. 자바 왕국의 관할을 받는 속국(屬國)이다. 동쪽으로는 자바 왕국(爪哇國)에, 서쪽으로는 말라카 왕국(滿剌加國)에 경계가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큰 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은 대해에 임해 있다. 각처에서 배가 들어오면 먼저 담항(淡港)에 도착하여 방카(彭家門, Banka) 해협으로 들어가서 해안에 배를 묶는데, 해안에는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이 많이 있다. 작은 배로 항구 안으로 들어가면 그 왕국에 도착하게 된다.

舊港國, 卽古名三佛齊國是也, 番名曰浡淋邦, 屬爪哇國所轄. 東接爪哇界, 西抵滿剌加國界, 南連大山, 北臨大海. 諸處船來, 先至淡港, 入彭家門裏, 繫船於岸, 岸上多磚塔. 用小船入港內, 則至其國.

이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중국의 광동이나 장주, 천주에서 도망쳐 이곳에 살게 된 이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무척 부유하고 땅은 무척 비옥하여 “한 철은 곡식을 뿌리고 세 철은 벼를 수확한다.”라는 속담이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 땅이 넓지 않아서 사람들은 대부분 수전(水戰)을 훈련하여 익히고 있다. 그곳은 물이 많고 땅이 적어서 우두머리의 가족은 모두 해안의 땅에 집을 짓고 살지만 나머지 서민들은 모두 뗏목 위에 집을 짓고 산다. 해안에 말뚝을 박고 거기에 뗏목을 묶으니 물이 불면 뗏목도 떠올라서 잠기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살고 싶으면 말뚝을 뽑고 집까지 한꺼번에 옮겨 가니 이사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 항구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 조수가 은밀히 불어난다. 이 나라의 풍속과 혼례, 장례 의식 및 언어, 음식, 의복 등의 일도 모두 자바 왕국과 같다.

國人多廣東漳泉人逃居此地, 人甚富饒. 地土甚肥, 諺云, 一季種穀, 三季收稻, 正此地也. 地方不廣, 人多操習水戰. 其處水多地少, 頭目之家皆在岸地造屋而居, 其餘民庶皆在木筏上蓋屋居之. 用樁纜拴繫在岸, 水長則筏浮, 不能淹沒. 或欲於別處居者, 則起樁連屋移去, 不勞搬徙. 其港中朝暮二次暗長潮水. 國人風俗婚姻死喪之禮, 以至語言及飮食衣服等事, 亦皆與爪哇國同.

옛날 홍무(洪武) 연간에 광동 사람 진조의(陳祖義) 등이 일가족 모두 이곳으로 도망쳐 와서 살면서 두목이 되었는데 무척 거들먹거리며 행패를 부려서,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와 선박들은 번번이 재물을 겁탈 당했다. 영락 5년(1407)에 조정에서 태감 정화 등을 파견하여 서양대종보선(西洋大䑸寶船)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때 역시 광동 사람인 시진경(施進卿)이 진조의의 흉악한 횡포 등 정황을 보고하자 태감 정화에 의해 일당이 생포되어 조정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했다. 그리고 시진경에게 관대(冠帶)를 하사하고 팔렘방으로 돌아가 대두목으로서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본인이 죽고 나자 지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아서 딸인 시이저(施二姐)가 왕이 되었는데, 일체의 상벌과 관리들의 승진 및 강등 조치는 모두 그가 정한 제도를 따랐다.

昔洪武年間, 廣東人陳祖義等全家逃於此處, 充爲頭目, 甚是豪橫, 凡有經過客人船隻, 輒便刼奪財物. 永樂五年, 朝廷差太監鄭和等統領西洋大䑸寶船到此處. 有施進卿, 亦廣東人也, 來報陳祖義兇橫等情. 被太監鄭和生擒陳祖義等, 回朝伏誅, 就賜施進卿冠帶, 歸舊港爲大頭目, 以主其地. 本人死, 位不傳子, 是其女施二姐爲王, 一切賞罰黜陟皆從其制.

토산품으로는 코뿔새(鶴頂鳥, buceros)와 황속향(黃速香), 강진향(降眞香), 침향(沉香), 금은향(金銀香), 황랍(黃蠟) 따위가 있다. 금은향은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나지 않는다. 그 향은 은 세공사가 은그릇에 새겨 넣을 때 사용하는 검은 아교와 비슷한데 가운데에 백랍(白臘) 같은 덩어리 하나가 들어 있다. 상품은 흰색이 많고 검은색이 적으며, 저급품은 검은색이 많고 흰색이 적다. 그것을 태우면 강렬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서양 번국들과 촐라(鎖俚) 사람들은 이 향을 무척 좋아한다. 코뿔새는 크기가 오리만 한데 깃컬은 검고 목이 길며 부리가 뾰족하다. 그 두개골은 두께가 한 치가 넘으며 겉은 분홍색인데 안쪽은 황랍과 같은 색이어서 무척 예쁘고 사랑스럽다. 허리에 차는 칼의 손잡이나 칼집, 가락지 따위를 만드는 데에 적합하다.

土產鶴頂鳥黃速香降眞香沉香金銀香黃蠟之類. 金銀香中國與他國皆不出, 其香如銀匠鈒銀器黑膠相似, 中有一塊似白臘一般在內. 好者白多黑少, 低者黑多白少, 燒其香氣味甚烈, 爲觸人鼻. 西番幷鎖俚人甚愛此香. 鶴頂鳥大如鴨, 毛黑, 長頸, 嘴尖. 其腦蓋骨厚寸餘, 外紅色, 裏如黃蠟之色, 嬌甚可愛, 謂之鶴頂. 堪作腰刀靶鞘擠機之類.

또 화식조(火鷄, casoar)가 나는데 크기는 선학(仙鶴)만큼 되는데 동그란 몸뚱이에 가는 목은 학보다 길다. 머리에는 부드럽고 붉은 볏이 마치 붉은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양으로 달려 있으며, 목 중간에도 두 개가 달려 있다. 주둥이는 뾰족하고 온 몸의 털은 양털처럼 성글고 길며 푸른색이다. 다리는 길고 쇠처럼 검은색인데 발톱이 무척 날카로워서 사람의 배를 찢어 창자가 나와 즉사하게 만들 수도 있다. 불에 타서 숯이 된 곡식을 즐겨 먹기 때문에 ‘화식조’라고 부른다. 몽둥이로 때려도 죽일 수 없다.

또 산에서는 맥(神鹿, tapir)이라고 하는 신령한 짐승이 나는데 크기는 큰 돼지만 하고 키는 석 자쯤 된다. 몸뚱이의 앞쪽 절반은 검은색이고 뒤쪽은 흰색인데, 알록달록한 털은 짧고 깔끔하여 무척 사랑스럽다. 주둥이는 돼지주둥이를 닮았지만 고르지 않고, 네 발굽도 돼지 발굽처럼 생겼지만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초목만 먹고 비린 고기는 먹지 않는다.

이 지역에도 자바 왕국처럼 소와 양, 돼지, 개, 닭, 오리, 채소, 과일 따위가 모두 있다. 이곳 사람들은 도박을 좋아해서 파구(把龜)와 바둑[奕棋], 닭싸움 따위는 모두 돈을 거는 것이다.

저자에서 교역할 때에는 역시 중국의 동전을 쓰고 전이나 비단 따위를 함께 쓴다.

국왕은 매번 토산품을 조정에 공물로 바치는데,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다.

又出一等火雞, 大如仙鶴, 圓身簇頸, 比鶴頸更長, 頭上有軟紅冠, 似紅帽子之狀. 又有二片生於頸中. 嘴尖, 渾身毛如羊毛稀長, 靑色. 脚長鐵黑, 爪甚利害, 亦能爪破人腹, 腸出卽死. 好吃麩炭, 遂名火雞. 用棍打碎莫能死. 又山產一等神獸, 名曰神鹿, 大如巨猪, 高三尺許, 前半截黑, 後一段白, 花毛純短可愛. 嘴如猪嘴不平, 四蹄亦如猪蹄, 卻有三跲, 止食草木, 不食葷腥. 其牛羊猪犬雞鴨, 幷蔬菜瓜果之類, 與爪哇一般皆有. 彼人多好博戲, 如把龜奕棋鬬雞之類, 皆賭錢物. 市中交易亦使中國銅錢幷用布帛之類. 國王亦每以方物進貢朝廷, 逮今未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