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가을날 강가의 정자에서 河亭晴望 <九月八日>/당唐백거이白居易
風轉雲頭斂 바람이 바뀌어 구름이 걷히고
煙銷水面開 안개가 스러져 수면이 보이네
晴虹橋影出 맑은 무지개와 다리 나타나고
秋雁櫓聲來 가을 기러기와 노 소리 들리네
郡靜官初罷 고을 안정돼 관직 갓 그만두고
鄉遙信未回 시골 멀어 편지 돌아오지 않네
明朝是重九 내일 아침은 구월 중양절인데
誰勸菊花杯 누가 나에게 국화주를 권할는지
이 시는 826년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55세 때에 소주 자사로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이해 5월 말에 백거이는 눈병이 나고 폐가 안 좋아 100일 휴가를 받았는데 휴가가 끝나서도 직무를 볼 수 없어 9월 초에 파직되었다. 다음 해 봄까지 유력(遊歷)하면서 낙양으로 돌아가 다시 비서감(祕書監)에서 일하게 된다. 이 시 제목에 소주(小註)로 <9월 8일>이라 적은 것은 그가 소주 자사에서 언제 파직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전 4구는 가을의 정경을 묘사하였고 후 4구는 그 정경을 대하는 시인의 정감을 서술하여 전경후정(前景後情)의 구도를 취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서경 묘사나 서정 서술 모두 앞 2구를 바탕으로 그 다음 2구를 쌓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과 강의 원경을 그린 다음 무지개와 다리, 그리고 기러기와 노 젓는 소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나,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그 소식을 전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 중양절을 앞두고 향수가 더 진해지는 내용 역시 그렇다. 마지막 2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구를 사용하였는데 그 결미의 산구(散句)에 시인의 생각을 집중하여 앞에 묘사하고 서술한 것이 모이도록 하였다.
이번 18호 태풍 ‘미탁’은 상당한 피해를 남기고 갔다. 곧 서북풍이 불어 추워진다고 한다. 이 시에도 보면 첫 구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그동안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이 다 자취를 감춘 것을 묘사하였다. 아울러 여름에 물가에 끼었던 안개도 이제 걷혀 수면이 드러났다고 하였다. 가을이 온 것이다.
맑아진 하늘과 강에는 무지개와 다리의 모습이 나타나고, 기러기가 오는 소리와 노를 젓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의 하늘과 물가에서, 보이고 들리는 시각과 청각의 감각을 각각 하나씩 선택하여 묘사하고 있다.
눈병이 나 병가를 쓴 시인은 고을의 정무가 안정되어 비교적 한가한 틈을 타서 관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또 이러한 사연을 낙양의 집으로 편지를 보내도 길이 멀어서 아직 답장도 오지 않고 있다. 여기서 갑자기 편지가 나온 것은 왜일까? 9월 9일 중양절은 가족들과 모여 국화주도 마시고 높은 산에도 올라가는 등고(登高)의 풍속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못 가서 안부를 물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객지에 혼자 있는 처지라 누가 자신에게 국화주를 권할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중양절을 앞두고 물가 정자에 나와 맑은 가을의 산수를 바라보며 향수에 젖어 있는 시인이 자연히 떠오른다. 다음 주 월요일 10월 7일이 올해의 중양절이다. 올해 날씨로 보면 남쪽에 이른 국화가 필 것도 같다.
365일 한시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