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 양겸지가 배를 타고서 협객승을 만나다楊謙之客舫遇俠僧 3

양겸지가 배를 타고서 협객승을 만나다 3

모두들 아침밥을 먹자마자 배를 강물위로 띄웠다. 배를 저어 가야하면 저어가고 배를 멈추어야하면 멈추면서 이렇게 안장현에 도착하였다. 안장현의 아전과 하인배들이 모두 나와 양겸지 일행을 맞이하였다.

안장현에는 현령 한 자리와 전사典史 한 자리가 있었다. 바로 그 서전사徐典史도 현령으로 부임하는 양겸지를 마중하러 왔다가 인사를 나누고 현으로 먼저 돌아갔다. 이제 안장현의 인부들이 마중 나와서 양겸지 일행이 가져온 짐을 졌으며, 4인교에다 이씨 부인을 태우고, 다시 작은 2인교에 말 몇 필이 있어 거기에다가는 하녀와 수행원들을 각각 태우고는 현으로 모셨다. 양겸지 역시 몸을 일으켜 출발하니 가는 길에 남만의 음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근 각처의 사람들이 새로운 현령이 부임하였음을 알고 구경하러 나왔다. 양겸지는 일단 현청에 도착한 다음뒤쪽의 사저로 들어가 이씨 여인과 하인배들을 안돈시킨 다음 사저에서 나와 서전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눈 다음에 현청에서 거행되는 환영 술자리에 참석하였다.

술자리에서 양겸지가 서전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곳이 처음인지라 이곳의 풍속과 사정에 밝지 못하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바라오.”

서전사가 대답하였다.

“불민한 제가 현령 나리를 보좌하게 되었사옵니다. 제대로 감당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서전사는 아울러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은 마룡馬龍과 닿아 있사옵고, 그 마룡에 선위사宣尉司로 근무하시는 설공薛公이 있습니다. 그분은 당왕조 설인귀薛仁貴(614-683)의 후예로 나라 안에 으뜸갈 만한 부자입니다. 남만의 여러 족속들도 오직 그 사람 말만 듣습니다. 우리 안장현이 설공의 직할은 아니나 안장현에 부임하는 현령은 본현의 사당에 향불을 사른 다음에 설공을 찾아가 인사를 하면 설공이 답례로 안장현을 방문해주어 서로 술자리를 번갈아가지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원컨대 현령께서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양겸지가 그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잘 알겠소이다.”

그런 다음 양겸지가 서전사에게 다시 물었다.

“마룡이 예서 얼마나 먼가?”

서전사가 대답하였다.

“한 40여 리쯤 떨어져있습니다.”

서전사는 아울러 안장현 안팎의 이러저러한 사정을 양겸지에게 두루 설명하여 주었다. 술자리가 파하자 양겸지와 서전사는 각자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양겸지는 이씨 여인에게 선위사 설공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설공은 비록 나이가 어려도 꾀가 많습니다. 나리께서 그와 교제를 하시되 삼가시고 또 조심하신다면 외려 그자가 나리에게 재물까지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나리께서 이곳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도 그자는 여전히 이곳을 호령할 것입니다. 그를 너무 무서워할 필요도 없으니 그자의 영향력은 이 지역에만 미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를 함부로 대하셔도 아니 됩니다.”

이씨 여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사흘 안에 빨간 옷을 입은 술사가 아주 무례히 찾아와 나리를 만나자고 할 것이니 절대 그 일 때문에 동요하지 마시고 그저 무시하십시오.”

양겸지는 이씨 여인의 말을 가슴속 깊은 곳에 새겨두었다. 사흘이 지나서 양겸지는 성황묘에 나가 향을 사르며 자신의 부임을 고하였다. 그런 다음 바로관아로 들어갔다. 소속 관원들이 모두 양겸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때 계단 아래에 사각형 모자를 쓰고 목깃이 동그랗게 된 빨간 옷을 입은 그 지방사람 하나가 양겸지를 찾아와 무릎도 꿇지 아니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어서 일어나시오. 노인장, 인사를 드리오이다.”

양겸지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 어느 현에서 오신 어르신이시오? 그래 우리 현청하고는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것이오?”

그 노인장은 양겸지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입으로 또 이렇게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어서 일어나시오. 노인장, 인사를 드리오이다.”

양겸지는 그 노인장을 내버려두고 신경 쓰지 않고자 하였으나 이런 식으로 두세 차례 연거푸 모욕을 당하자 참 이거 부하 관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만저만 체면 깎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씨 부인이 절대 응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이 떠올라 꾹꾹 눌러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물불 안 가리게 되었으니 이씨 여인이 신신당부한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하인을 불렀다.

“이 노인네를 당장 끌고 가서 흠씬 두들겨 패라.”

양겸지의 말을 들은 두 하인이 달려와 그 노인네를 끌고 가서 몽둥이를 내려치려고 하자 그노인네는 허리를 꼿꼿이 펴니 두 하인이 그 노인네를 바닥에 엎어치지 못하였다. 그 노인네가 소리를 질렀다.

“나를 때리지 못할걸!”

양겸지가 어서 곤장을 치라 하니 하인들이 더 달려와 노인네를 들어 눕히고는 억지로 곤장을십여 대 내리쳤다. 이 때 관아의 관원들이 모두 달려와 그 노인네를 용서해달라고 빌자 양겸지는 역정을 내며 말하였다.

“쫓아내버려라!”

그 노인네는 쫓겨나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뭘 그리 화를 내시오!”

뜻 깊은 취임 첫날에 재수 없는 노인장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으니 양겸지는 기분이너무도 찜찜하였다. 양겸지는 억지로라도 일을 좀 보려다가 그냥 문서를 던져버리고는 현청에서 빠져나와 안채로 들어갔다. 이씨 여인이 양겸지를 맞이하면서 말했다.

“제가 나리께 빨간 옷 입고 찾아오는 노인장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그예 그 노인장에게 화를 내셨군요.”

“그대 말대로 나는 몸도 꿈적하지 않고 집무실에 앉은 채로 관원들을 시켜 그 노인장에게 몽둥이로 10대만 내려치라 하였을 뿐이오.”

“그 노인장은 자신의 술법을 한 번 다퉈보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만약 나리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더라면 그 노인장은 밤에 요괴로 변하여 나리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그때 만약 나리께서 두려워하며 살려달라고 하면 이 안장현의 모든 관리와 하인들은 그 노인장의 부하가 되고 맙니다. 그럼 나리와 제가 어찌 이 안장현의 관리와 하인들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 노인장이 몽둥이로 맞고 돌아갔다고 하니 요괴로 변하여 나리를 놀라게 하는 대신 밤에 찾아와 나리의 생명을 노릴 것입니다.”

“그럼 어떡하면 좋단 말이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리께서는 마음 푹 놓으십시오. 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그래, 나는 그대만 믿소이다.”

날이 저물어 저녁밥을 먹고 나서 식탁을 한쪽으로 치웠다. 이씨 여인은 바닥에 하얀 횟가루를 먼저 바르고 네 귀퉁이에 각각 부적을 하나씩 그린 다음 한가운데에 부적 하나를 더 그렸다. 그런 다음 이씨 여인은 양겸지에게 한가운데 부적 위에 앉으라 하였다.

“밤에 요물이 나타나 나리를 괴롭히려 들 것입니다. 절대 움직이지 마시고 부적 위에 단정하게 앉아있기만하십시오.”

이씨 여인도 단장을 마치고 상자에서 3,4촌쯤 되는 황금색 큰 침 하나를 꺼내고 향내 나는 초와 빨간 부적을 신전에 바치고는 하얀 횟가루를 바른 바닥의 바깥쪽에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2경쯤이 되었을까 비바람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귓전에 가까워졌다. 방문 처마 밑에 다다랐을까 마치 비단 천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찻쟁반 정도의 크기일까 흐릿하게 보이는 그 요물이 양겸지를 향하여 부딪쳐왔다. 곧장 하얀 횟가루를 칠한 곳까지 날아왔다가 멈칫하더니 횟가루를 칠한 사각형을 빙빙 돌기만 하고 그 사각형 안으로 들어오진 못하였다. 양겸지는 놀라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씨 여인은 주문을 외우면서 부적을 태워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이씨 여인이 외운 주문이 영험이 있었던지 그 요물은 처음처럼 그렇게 빨리 날지를 못하였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빠른 순간, 이씨 여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그 요물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멈춰라!”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이씨 여인은 오른 손을 들어 그 요물을 내려치니 그 요물은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이씨 여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굽혀 그 요물을 손으로 잡아 올려 바라보았다. 그 요물은 마치 박쥐 모양으로 몸 전체에 흑백 문양이 있고 선홍빛 큰 주둥이가 있어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양겸지는 한참 동안이나 얼이 빠져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이씨 여인이 양겸지에게 말했다.

“이 요물이 노인장으로 변하여 나리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이 요물을 죽여 버리면 그 노인네도 따라서 사라질 것입니다만 그의 자손들이 많아 필시 원수를 갚으려 들 것이니 일단 살려두고자 합니다.”

이씨 여인은 그 박쥐의 두 날개를 한쪽으로 모아 황금색 못으로 횟가루를 칠한 바닥에 못 박으니 그 요물은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였다. 이씨 여인은 바구니로 그 요물을 덮어놓아 고양이나 쥐가 그 요물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다. 이씨 여인과 양겸지는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양겸지는 일어나 현청에 올랐다. 현청에 오르니 20여 명의 노인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찾아와 양겸지 앞에 무릎을 꿇고서 아뢰었다.

“소인들은 방노인의 친척이옵니다. 방노인이 주제를 모르고 지난 밤에 양현령 나리를 괴롭히려 하다가 나리에게 붙잡혔습니다. 바라옵건대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시옵소서. 용서해주신다면 저희들은 방노인과 함께 나리를 찾아뵙고 나리말씀만을 따르겠나이다.”

양겸지가 입을 열어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능력이 없었다면 이 안장현의 현령을 맡지도 않았을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나는 그 요물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로다. 다만 그 요물이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두고 볼 것이니라.”

노인들이 입을 열어 아뢰었다.

“사실대로 아뢰옵나이다. 이 현은 방노인과 몇 명의 노인이 좌지우지한 것이지 관리들이 좌지우지한 게 아닙니다. 이제 나리의 법력을 깨달았으니 다시는 나리에게 불경한 짓을 하지 않겠나이다. 방노인을 풀어주시면 이 안장현의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리께 귀의할 것입니다.”

양겸지가 대답하였다.

“알았으니 자리에서 일어나라. 내게 다 생각이 있느니라.”

노인들은 예예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양겸지는 현청에서 물러나 안채로 돌아와노인들이 찾아와 자신에게 방노인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던 일을 이씨 여인에게 말해주었다. 이씨여인이 대답하였다.

“내일 그 노인들이 다시 찾아와 방노인을 풀어달라고 간청할 것이니 그 때 풀어주시면 될 것입니다.”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양겸지는 현청으로 나갔다. 양겸지가 현청에 나오자 노인들이다시 찾아와 더욱 애절하게 방노인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였다. 양겸지가 그 노인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의 얼굴을 봐서 이번에는 방노인을 풀어주노라. 다음에 또 다시 나에게 무례한 짓을 하면 그 때는절대 용서하지 않겠노라.”

노인들이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돌아갔다. 양겸지가 현청에서 물러나 안채로 돌아오니 이씨 여인이 말했다.

“이젠 방노인을 풀어주어도 좋습니다.”

밤이 되자 이씨 여인은 횟가루를 칠해 놓은 곳 안으로 들어가 황금색 바늘을 뽑으니 그 요물이 날아갔다. 그 요물이 자기 집으로 날아가니 방노인은 침상에서 일어나 여러 노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