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겸지가 배를 타고서 협객승을 만나다 1
칼 한 자루와 비파 한 대로 천하를 떠도네,
즐겁게 노래하며 풍류를 즐기네.
저 장부를 알아주는 이 없다 말하지 마소,
밝은 달빛 뱃전에서 협객승을 만나네.
양익楊益은 자가 겸지謙之며, 절강성 영가永嘉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기개가 넘치고 호탕하였으며 쪼잔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을 잘 지어 귀주 안장현의 현령이 되었다. 안장현은 영표嶺表에 닿아있고, 남으로는 사천과 통한다. 안장현은 오랑캐들이 많이 섞여 사는 곳이라. 사람들이 독약이나 전투를 좋아하고 글과 예의를 알지 못하며 귀신을 믿고 섬기기를 좋아하며 요술을 숭상한다. 안장현은 또 금은보화와 진귀한 보석이 많이 난다. 송대의 제도에 따르면 신하가 임지로 떠날 때는 입궐하여 황제를 알현하여야 하며 이 때 신하들은 시와 문장을 지어 바치게 되어 있었으니 이 시와 문장을 통하여 자신들이 그 임무를 맡을 만한지를 평가받았던 것이다. 건염建炎 2년(1128) 정묘丁卯년 3월에 양겸지는 황제를 알현하고 임지로 떠나게 되었다. 고종황제가 그에게 하문하였다.
“경은 무슨 관직을 맡게 되었는가?”
“소신은 귀주 안장현 현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 경은 일찍이 안장현의 풍광과 풍습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에 양겸지는 시를 한 수 지어 바쳤다. 그 시에 이르기를:
동풍에 오랑캐의 독기가 피어오르는,
만 리를 넘어 아스라이 먼 저곳.
말마저도 달라 아는 사람이라곤 찾을 수도 없으나,
멀리서 들려오는 새 우짖는 소리만큼은 친숙하도다.
야자나무 이어진 숲속에선 갈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코끼리 노는 남쪽 지방에선 편지 한 통 부치기도 어려워라.
조정에 보탬이 되지 못하여 부끄러웠더니,
그곳을 교화시켜 큰 공을 세우리라.
고종황제는 양겸지가 지어 바친 시를 듣고선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측은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경을 그렇게 험하고 먼 곳으로 보내는 마음이 편치가 않구려. 우선 임지로 가있으시오. 머지않아 짐이 경을 다시 불러들이리다.”
양겸지는 눈물을 훔치며 하직인사를 올리고 궁궐에서 나왔다가 진무사鎭撫使 곽중위郭仲威를우연히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곽중위가 말했다.
“그대가 안장현에 부임하게 되셨다는데, 이를 어떡한단 말이오?”
“오랑캐 고을의 독기에 전염병에나 걸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이지요. 가고 싶지 않으나 가지 않을 수 없는길이고 가면 꼭 죽을 것만 같은 길이니 그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곳의 사정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나랑 같이 나의 은인인 진무사 주망周望을 찾아가봅시다. 주망은 연주連州에서 귀양살이하다가 돌아왔다가 이제 다시 연주로 떠난다고 하오.”
두 사람은 주망을 찾아갔다. 양겸지는 주망에게 재배를 올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소생이 변방인 안장현으로 부임하게 되었소이다. 혹시 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이라도 있을까 해서 왔소이다.”
주망은 황급히 답례를 하고 대답하였다.
“안장현은 오랑캐들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사람들이 요술을 잘 부리고 독으로 사람을 해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잘 다스려 자기편으로 만들면 그들의 재물이 다 자기 것이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만사를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역의 아전들이 무례한 짓을 범할 수도 있으니 부인을 데려가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양겸지는 두 줄기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하였다. “도대체 이를 어쩐단 말이요?”
주망은 양겸지가 걱정하는 걸 보고는 마음이 짠하였다.
“나 역시 연주로 귀양살이하러 가는 몸이니 광동 경계까지는 나랑 같이 갑시다. 광동까지 같이 가는 경비는 내가 부담할 터니 걱정할 필요 없소이다.”
양겸지는 곽중위랑 함께 주망의 집에서 나왔다. 보름 정도가 지나 양겸지는 주망과 함께 출발하였다. 이 때 곽중위가 이들 두 사람을 위하여 이별의 술자리를 마련해주고 돌아갔다. 양겸지와 주망은 진강에 도착하여 큰 배 한 척을 빌렸다. 양겸지와 주망은 배 가운데 넓은 선실을 차지하였다. 뱃사람이 돈을 벌 욕심으로 양겸지와 주망이 사용하고 남는 선실에 사람들을 태우니 그 수가 3,40명이라. 그렇게 배에 탄 손님들 가운데 떠돌이 중이 하나 있었으니 호광湖廣 무당산武當山에 수도하러 간다고 하였다. 하남성河南省 복우산伏牛山에서 왔다고 하는 그중은 약간 거칠어 보이기도 하고 조심성도 없어서 선실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그 중이 사람들에게 차를 타 달라 밥을 해달라고 하였으니!
“아니 출가한 사람이면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할 것인데 어째 우리한테 이거 해 달라 저거해 달라 하누!”
“이런 소인배들하고는! 내가 너희들을 꺼려하지 아니하고 일을 시키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아야지.”
그 중은 같이 선실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인배네, 돼먹지 않았네 하면서 욕을 해댔다.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서 그 중을 욕하는 사람도, 때리려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욕하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욕하지 말라!” 소리치니 그 욕하던 사람들이 전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신을 때리려 드는 사람을 가리키면서“때리지 말라!” 소리치니 그 때리려 들던 사람들은 전혀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게 마치 손이 마비되어버린 듯하였다. 욕하고 때리려 들던 사람들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꼼짝도 못하게 되는 것을 보고서 선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중을 욕하거나 때리려고 했던 사람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하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이걸 어쩐다니, 요괴가 나타났어.”
다른 선실에 있던 사람들도 이 소리를 듣고 모두 달려왔다. 이런 소란에 양겸지와 주망도 그중이 타고 있던 선실 입구로 다가와 바라보았다. 과연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그 중에게 물어보고자 하는 순간, 그 중이 양겸지와 주망이 관직에 있는 사람임을 알아보고 일어나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소승은 복우산에서 도를 닦던 자로 무당산에 가고자 하여 이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한데 여러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고 모욕하니 원컨대 나리들께서 좀 해결해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을 욕하고 때리려 드는 자들이 당연히 잘못한 거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들의 입을 막고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또 자비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 중은 그 말을 듣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두 나리께서 그들을 용서해주라 하시니 소승이 어찌 더 따지겠나이까.”
그 중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입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말을 해도 좋으니라.”
그러자 그 동안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바로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다음 손을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들의 손을 만져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움직여도 좋으니라.”
그러자 그 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들이 바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코미디를 한편 본 양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주망이 양겸지에게 속삭였다.
“저 분이 대단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소이다. 저런 분은 일부러라도 찾을 법한데 이렇게 만났으니 저 분을 선실로 모시고 가서 조언을 청해보지 않으시려오?”
양겸지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맞는 말씀이시오. 마침 나는 아내를 대동하지 않아 선실을 나 혼자 쓰고 있으니 내가 그 스님을 같이 모시고 있도록 하지요.”
양겸지는 바로 그 중에게 이렇게 권했다.
“스님, 다른 손님들하고 티격태격하느니 차라리 제 선실로 오셔서 저랑 같이 지내시지요. 스님의 드실 차와 공양은 제가 챙겨드리지요.”
“아이쿠, 소승이 이렇게 나리를 번거롭게 해드리다니!”
그 중은 바로 양겸지의 선실로 옮겨왔다. 그 중이 양겸지의 선실로 옮겨온 지 3,4일 동안 서로 불경이야기도 나누고 세상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중은 모든 것에 두루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양겸지는 이 번 여행길의 고충을 거듭 이야기하여 그 중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아울러 양겸지는 지금 안장현의 현령으로 부임하러가는 길이라는 것도 설명하였다. 그 중은 양겸지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안장현으로 부임하시려면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가셔야 할 겁니다.”
양겸지는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모두 그 중에게 소상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 중이 이렇게 말했다.
“소승은 속성이 이李가이며, 본디 고향은 사천四川 아주雅州입니다. 저의 친척 가운데 몇 집은 위청현威淸縣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으며, 소승의 형제자매 몇도 그 곳에 살고 있습니다. 소승이 그곳에 돌아가면 법술을 부릴 줄 아는 자를 찾아서 나리를 안전하게 모시도록 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다고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소승이 무당산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나리를 따라 광리廣裏로 가겠나이다.”
양겸지는 거듭거듭 감사하며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그 중에게 세세히 고했다. 그 중은 양겸지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자신을 대하고 또 사람이 성실하고 꾸밈이 없는 것을 보고서 더욱 양겸지를 존중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 중은 양겸지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신의 봇짐에서 순금 열 낭과 은자 5,60냥을 꺼내어 양겸지에게 여비에 보태라고 주었다. 양겸지는 몇 번이나 사양하였지만 그 중이 한사코 받으라 하니 그제야 겨우 못 이기는 체하고 받았다. 홀연히 보름 정도가 지나고 광동 경주瓊州 지방에 이르렀다. 주망이 양겸지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여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연주로 가야하오. 여기서 더 그대를 보살펴야 할 것이나 자비로우신 스님이 계시니 그분에게 모든 걸 맡기고 나는 떠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자 나는 이제 이렇게 떠나가외다. 하늘이 기회를 허락하면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주망은 재삼재사 그 중에게 당부하였다.
“이제 모든 일을 스님께 맡깁니다.”
“굳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소승이 다 알아서 할 것입니다.”
주망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양겸지 그리고 그 중과 이별주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나절 술자리를 가지고 난 다음 주망은 따로 작은 배 하나를 세내어 떠나갔다.
양겸지와 그 중은 며칠 더 배를 타고서 편교현偏橋縣에 도착하였다. 그 중이 양겸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우리 가족들이 사는 곳입니다. 배를 부두에 정박시켜 놓고 소승이 먼저 뭍으로 올라가서 나리를 모실만한 사람을 찾아보고 바로 돌아올 터이니 나리는 여기 가만히 계십시오.”
그 중은 짐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서 배에서 내렸다. 이렇게 7,8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양겸지는 무척이나 초조해졌다. 하지만 그 중이 정말로 믿음직스러워보였던지라 절대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하루하루 손꼽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